넷플릭스보다 위대했던 토요 명화와 주말의 명화
토요 명화와 주말의 명화의 오프닝을 들으며 추억에 젖어보다.
리모트 컨트롤 즉 리모컨 없이 나의 오른손 혹은 왼손으로 TV 채널을 드르륵 돌려야 했던 시절. 그때가 90년대였다. 그 TV는 부모님이 결혼하시고 살림살이에 쓰신 TV였고, 그것은 2000년대 중반에 고장이 나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오래된 TV를 통해 봤던 주말의 밤을 책임진 방송이 있었으니 바로 주말의 명화와 토요명화였다.
KBS2와 MBC에서 방송했던 토요명화와 주말의 명화 훗날, SBS에서도 그와 비슷한 영화 프로그램을 방송했지만, 필자는 서울에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SBS는 볼 수가 없었다. 그 추억을 생각하며 꼬꼬마 시절, 토요일 밤을 책임진 이 두 프로그램을 써보려고 한다.
각 프로그램의 인트로 음악이 시작되면, 진짜 영화를 본다는 그 기쁨과 설렘이 가득했다. 물론, 그날 신문 편성표에 영화 주제와 줄거리가 기사로 나왔기에 정보는 알 수 있었지만, 필자가 영화를 유일하게 그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또한,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시간 대이니 늦잠을 자도 되었으니, 당시 필자뿐 아니라 꼬꼬마들에게는 얼마나 큰 기쁨이었겠는가?
인트로 음악이 지나가면 나오는 각종 광고 목록들, 하... 정말 많고도 많았다. 아날로그 시절, 유일한 2개의 채널에서 방송하다 보니 당연히 시청률은 최고였고, 광고는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 따라서 광고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그 지겨움을 견뎌야 했다. 어찌하다 중간에 졸다가 깨어나면 아침 햇살이 가득한 일요일 아침을 맞게 된다. 물론, 디즈니 만화동산이라는 희망적 만화가 우리를 기다렸지만, 그 토요명화와 주말의 명화를 못 봤던 생각에 아쉬움은 배가 되었다.
필자뿐 아니라 당시 꼬꼬마 시절의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고, 참아가며 끝까지 버텨 드디어 영화를 보게 된다. 우리는 간식거리를 옆에 두고, 추운 겨울에는 담요나 이불을 덮어쓰고, 더운 여름에는 모기약을 옆에 두고 선풍기나 부채를 두며 봤었다. 가족끼리 봤던 기억도 있고, 혼자서 봤던 기억도 있고, 여하튼 영화를 TV로 보는 것 자체가 아주 좋았다.
입에는 간식거리를 물으며 성우들의 멋진 더빙 연기와 각종 배경 음악. 그리고 멋진 배우들의 연기와 시대 배경 등등은 아날로그 시절 우리들에게 엄청난 예술적 선물이었다. 지금이야 인프라 발달과 각종 채널들이 우후죽순 쏟아져서 희소성이 없는데, 당시는 그걸 놓치게 되면 1주일을 정말 날리는 것이니 정말 가치가 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영화를 영화관이 아닌 유일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 2개 프로그램이었으니....
필자가 기억하기에는 토요명화는 주로 액션 장르와 홍콩영화, SF 요소를 가미한 영화를 보여줬고, 주말의 명화는 고전적이고 클래식하며 약간의 여운이 남는 영화를 보여준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필자가 봤던 시기에는 동시 방송이었기에 한쪽이 재미가 없으면 번갈아가면서 봤었다. 만약, 지금이야 그렇게 방송한다면 동시에 접속해서 볼 수 있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그 점은 참 아쉽기도 하다.
토요명화와 주말의 명화를 번갈아보면, 필자는 영화 관람객이 되어 영화에 대한 우수함과 예술성, 그리고 여러 가지를 깨닫기도 했다. 꼬꼬마 시절에 무슨 깨달음이 있었겠냐라는 소리가 나오겠지만, 그만큼 필자에게 방송되는 영화들은 뇌리와 마음속에 영원히 저장되어 있다.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본 영화와 TV로 방송된 같은 영화를 통해 편집 방향을 확인했고, 아.. 방송 심의에 대한 기준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공영 방송의 뭐라 할까? 제약... 그 제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제약이 있어도 끝까지 멋진 장면과 연기를 보는 것이야말로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비교 분석 아닌 분석을 하며 자정이 지나고 어느덧 영화가 끝나면, 자동으로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이것이 당시 패턴이었다.
당시, 필자가 본 영화 목록을 꺼내보면 슈퍼맨 시리즈. 스타워즈. 홍콩 영화. 주홍 글씨. 양들의 침묵. ET. 다이하드 시리즈 등이었다. 그 밖에도 고전적인 영화도 본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또한, 그 모두를 쓰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핵심만 나열하니 좀 아쉽긴 하다. 이 글을 읽는 필자와 비슷한 또래 분들도 아마 공감할 것이다.
* 훗날, 필자는 어른이 되어, 참 클래식하고 고전적인 영화를 많이 보게 된다. 쿼바디스, 십계, 벤허 이런 종교적인 영화와 콰이강의 다리 같은 전설적인 영화 등등... 물론 이건 인터넷과 케이블 채널에서 봤었다. 왜, 이런 영화들이 가치가 있는 지를 어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니.. 참 나의 인생은 파란만장 속 마음은 종이 조각에 불과했다.
이렇게 2개의 영화 프로그램은 시대가 흐르고, 인터넷이 보급되고, 케이블 채널이 늘어나고, 넷플릭스 같은 미디어가 보급되면서 점점 시청률은 낮아지고, 광고 수는 적어졌으며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시대의 흐름 속에 자본주의의 종속이라는 현실을 피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최근 유튜브 채널에 어떤 유투버가 토요명화와 주말의 명화 오프닝을 영상으로 업로드한 것을 봤다. 하... 순간 눈물이 났다. 그 음악을 듣고, 유년 시절에 영화를 보며 세상을 보고, 예술을 바라봤고, 감정을 키웠고, 연기를 통해 미래의 인생을 봤던 내가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음악을 들으니 슬펐다. 너무 슬퍼서 길을 걷다가 멈추었다. 정신을 차리고, 음악을 모두 들은 뒤, 댓글은 더더욱 난리였다.
'눈물이 난다. / 슬프다. / 그립다. / 부모님과 함께 보던 그 영화들.. 이젠 내가 어른이 되어 부모님이 안 계시니 슬프다.' 등등, 모두들 과거 시대의 그리움과 눈물의 댓글 잔치였다. 필자도 마음속에서 슬프고 눈물이 났으니 다들 오죽하겠는가? 그만큼 이 영화 프로그램들은 우리 뇌리 속에 확실히 각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넷플릭스나 각종 케이블 채널 등등 모든 영화를 편리하고 언제든지 볼 수 있지만 그만큼 반복적이고, 희소성 없음에 마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는 토요명화와 주말의 명화를 보면서 자라온 세대. 우리는 그 희소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 간직으로 각박하고 힘든 현실이라도 그 감정과 추억을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