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의 원조, 'TV손자병법'
직장인들의 애환과 사회 생활의 모습을 보여준 추억의 드라마 TV손자병법
어느 아침 서울특별시, 눈부신 햇살에 어느 철로에서 지하철이 역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수많은 직장인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장면, 그 오프닝과 함께 가수 전영록 씨가 부르는 노래가사. 아직도 모르신가? 그러면, 좀 더 쉬운 힌트. 오현경, 서인석, 장용 등 우리가 아는 중견배우들이 젊은 시절에 나왔던 드라마? 아직도 모르신가? 그러면 미생이라는 드라마의 원조. 이쯤이면 다 정답을 알았을 것이다. 정답은 드라마 'TV손자병법'이다.
필자가 점심을 먹으면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추억의 드라마라는 채널에서 'TV손자병법' 동영상을 올려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주 꼬꼬마 시절, 한글 겨우 뗀 필자가 어렴풋이 봤었는데, 다시 보니 기억나는 것도 있고, 생소한 회차도 있었다. 이 드라마를 보고 추억이 생각나서 써보고자 한다.
아마, 이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현재, 중장년층 혹은 70대 노년층일 수 있다. 아니면 필자처럼 30~40대 사이인 사람들도 이 드라마에 대한 내용은 알 것이다. 직장인들의 애환과 직장에서의 삶,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과 현실을 아주 정확하게 대변할 수 있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앞에서 언급한 미생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처럼 TV손자병법은 사회인으로서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해야 할 지에 대한 당시의 교과서이자 거울이었다.
이 드라마가 미니시리즈나 사극처럼 차례대로 내용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주별로 에피소드가 달라서 참신한 내용도 있었고, 당시에는 현실적이었지만, 현재 우리가 보기에는 약간의 환타지적 요소가 있는 등 시대의 흐름 변화도 확인할 수 있는 드라마 중 하나였다. 그래서 지금 이 드라마를 시청한다면 누구에게는 추억이겠지만, 누구에게는 아주 유치할 수 있고, 비현실적으로 보여서 거부감도 생길 수 있는 드라마이다. 하지만 그런 진지함이 없이 이 드라마를 시청하면 오락거리로써는 적격이라고 말하고 싶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만년 과장인 쪼잔하면서도 위기가 발생하면 초인적인 실무를 발휘해 해결하는 이장수(오현경 분/여배우와 동명이인이신 중년 배우), 그리고 서브 주인공이었던 부드러움과 능력의 소유자 유비(서인석 분), 그리고 약간의 얍삽함 속에 전산 시스템을 기가 막히게 다루는 조조(장용 분)가 펼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당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이름이 모두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이라서 손자병법인데 왜 삼국지 인물들을 넣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스러웠지만, 재미가 있으면 최고였으니... 그건 별다른 문제는 아니었다.
드라마 내용은 직장 안, 그리고 바깥, 그리고 사장 같은 높으신 분들과의 이야기, 명절 특집, 해외 출장(중국 특집)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 드라마 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정말 특이했던 점은 우선, 당시 모든 것이 아날로그였다. 지금이야 개개인마다 컴퓨터가 있고, 개개인마다 스마트폰이 있고, 개개인마다 자신만의 디지털화된 장비와 인프라가 있지만, 당시는 모든 것이 수동이었다. 차트도 직접 쓰고, 계산기로 두들기고, 장부를 적어 보관하는 등 정말, 당시 직장인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짐작했었다. 전화를 하려면 공중전화를 해야 했고, 휴대폰이 없었으니 약속이나 기타 모임에 늦거나 변수가 발생하면 확인하기가 불가능한 정말 답답한 상황도 드라마로 보여주었으니, 슈퍼 스피드화된 지금 사회에서 격세지감이 확연히 나타났다.
다음으로는 직장인들의 문화였다. 아직도 노동 인권이나 성차별, 기타 부정적인 문제가 나타나고 있지만 당시 드라마를 보면 아. 정말 우리나라 직장 문화가 보수적이었고, 약간의 이상향적인 요소는 전혀 없는 군대주의적 요소가 골고루 나타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간간히 도와주고, 정을 나타내면서 인간다운 직장 문화도 비치는 것을 보면, 과거나 현재나 사람 사는 것은 똑같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신입사원이 입사를 해서 일을 막 시작했을 때, 진보적인 의식으로 행동하고 주장을 해서 주변 선배 직장인과 과장을 놀라게 한 장면이 있었다. 그걸 보고 느낀 건, 정말 그 진보적 의식이 현재 이루어지게 되었고, 현재의 진보적 사상이 훗날 미래의 직장 문화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직장도 시간이 흐르면 변화가 된다는 것을 드라마가 대변하고 있었다.
TV손자병법과 미생의 차이는 확연했다. 전자는 보수적이고, 경제가 막 부흥기였던 상황에서 너도나도 수익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집중한 뭐라 할까 목표 하나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비추고 있지만, 미생은 차갑고, 너무 현실적이고, 계급주의적 직장 문화에 따른 주인공의 느낌을 적재적소 하게 나타냈다. 물론, 이성민 씨가 담당한 부드럽고 냉철한 상사가 역할을 잘 이끌었지만, 아무래도 미생은 너무나 우리에게는 가혹하게 비치는 드라마로 보여줬다. 반면, TV 손자병법은 보수적이고 뭔가 꽉 막히면서도 가혹한 것보다는 하나의 꿈을 이루기 위한 '정'.. 이 '정'이 가장 돋보였던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가 1987년에 시작해 1993년에 끝났으니, 6년 정도 방송된 꽤 잘 만든 드라마이다. 직장이라는 곳이 매일매일 일하는 좁은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끼리 부대끼고, 밖에서는 거래처와 기타 사람들 간의 상호성 상황 등 여러 요소에서 보여줄 것이 정말 많았다. 그러니, 오랜 시간 동안 방송할 수 있었고, 그만큼 시청률도 좋았다고 한다.
약 30년이 흘러간 이 시점에서 유튜브 채널에 이 드라마를 보여주고 있는데, 댓글은 대부분 이러하다.
'아, 나의 청춘. 저 시기로 되돌아가고 싶다.' / '눈물 나네, 휴대폰이 없어서 거래처 약속 펑크 나면 굉장히 난감했는데....' / '와, 우리가 직장 다닌 것과 완전 차이 난다.'
'우리 아버지들 존경합니다. 난 저렇게 일 못할 거 같네.' / '그립네요, 다시 드라마 보여줘서 감사합니다.'
댓글들이 부정적인 내용보다는 긍정적 내용이 월등히 많았고, 당시에는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그것이 세월이 흘러 추억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자부심도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 분도 있었다. 그만큼 이 드라마가 보여준 것이 직장인의 삶을 보면서 우리가 대처할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오래전에 끝이 나서 이제는 추억의 드라마이자 전설의 드라마로 남게 된 'TV 손자병법'. 물론, 후속 시리즈도 나왔지만, 인기는 그렇게 없었다. 6년 동안에 방송된 이 드라마를 우리가 추억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회사 생활은 결국, 인간과 인간이 뭉쳐서 만든 조직이라는 테두리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해야 할 지에 대한 정답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일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이겨내는 정신, 각박한 삶 속에서도 할 수 있다는 그 마음을 이 드라마는 보여줬고, 이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귀중한 공식이라고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