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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동안남 Mar 17. 2023

9편 : 시트콤 순풍산부인과를 보면서 추억에 잠겨보다.

순풍산부인과는 최고였고, 전설적인 시트콤이었다.

엘리베이터에 나비넥타이 끼인 사연, 그건 말로 못해. 지하철 문에 핸드백 끼고 달린 사연, 황당해 말로 못해. 한숨 자고 나니 불빛 하나 없는 종점..이라는 인트로 음악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레전드급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순풍산부인과였다.


순풍산부인과. 1998년 IMF가 일어나고, 우리나라가 극심한 경제불황으로 온 국민이 시름에 잠겼을 때, SBS에서 시작한 가히 신화적인 시트콤이었다. 아, 갑자기 이 시트콤을 쓰게 된 이유가 유튜브 영상에서 누가 인트로 음악을 악보로 보여주고 그것을 사운드로 표현하는 영상을 보아서 영감이 떠올라 써보는 것이다. 이 시트콤이 끝난 지도 20년이 지났음에도 모든 사람들이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시트콤은 오지명 박사가 운영하는 순풍산부인과라는 병원에서 벌어지는 생활 밀착형 드라마와 코미디의 결합체이다. 주인공 오지명, 부인 선우용녀, 구두쇠 사위이자 방귀대장 박영규, 큰 딸 박미선, 김소연, 이태란, 막내딸 송혜교, 그리고 손녀딸 박미달(김성은) 등이 이끌고 있다. 그리고 작가로 일하는 권오중, 그리고 의사 역할의 김찬우(추후 이창훈으로 교체), 김의찬(김성민)이 출연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소심한 남자 간호사 표인봉, 터프한 여간호사 김간호사(장정희), 엉뚱하지만 김간호사의 혼을 빼앗는 허간호사(허영란) 등 모든 인물들이 뭔가 독특하면서도 공감 가는 연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여러 아역들과 연기자들이 나와서 매회마다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당시, 90년대에는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했다. 물론 LA아리랑이나 오박사네 사람들이라는 시트콤도 있긴 했지만, 대중적으로 크게는 이미지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순풍산부인과라는 시트콤은 가히 혁명이었다. 혁명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바뀐 게 아니라, 우리들이 공감하고 즐거워하고 행복하고 이해할 수 있는 뭐라 할까? 아. 나도 저럴 수 있지. 나도 저런 상황이면 저렇게 할 거야 같은 느낌을 주게 만드는 밀착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공감이 우리 대중에서 순풍산부인과를 아직까지도 최고의 시트콤으로 각인시켰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출연했지만, 가장 큰 혁명적 인물은 2명이었다. 바로 오지명 씨와 박영규 씨였다. 배우 오지명 씨는 터프하고, 강한 캐릭터로 많은 드라마와 액션영화에 출연했었다. 이미지가 강했던 그분이 이 드라마에서 보여준 연기는 우리 대중에게 무서운 분에서 친근하고 재밌는 분으로 각인될 수 있도록 바꿔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가 연기를 하면서 보여준 제스처와 어눌한 대사가 각종 예능인들과 일반인에게 각인되어 성대모사와 장기자랑에 활용되는 등 인지도 영향력도 막강해졌다.


박영규 씨가 보여준 박영규라는 캐릭터는 사위라는 우리가 갖고 있던 이미지를 확 바꾸었다. 사위라면 장인과 장모에게 사랑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서 박영규 씨가 보여준 사위는 모든 것을 바꾸었다. 자신만 생각하고, 돈 앞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방귀를 잘 뀌고, 천연덕스럽고 능청스럽게 행동하는 뭐라 할까.. 굉장히 사위답지 않은 코믹 캐릭터를 보여줬다. 물론,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 회차도 있긴 했지만, 대다수 회차에서는 상대방에게 미움받기 딱 좋은 캐릭터였다. 이러한 뭔가 모자란 사위 연기를 박영규 씨가 맡았으니, 우리는 정말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젠틀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많이 담당했는데, 이 시트콤으로 그는 대중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모든 연령층에게 사랑받는 연기자가 되었다. 물론, 그의 말투와 목소리는 아직까지도 성대모사 0순위 중 하나이다. 가장 멋진 대사... '아이고 배야, 장인어른 왜 그러세요?'....


오지명 씨와 박영규 씨가 워낙 독보적인 캐릭터로 연기를 해서 다른 배우들이 묻힐 것 같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모든 배우들이 정말 연기를 잘했다. 그래서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레전드로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왜, 아직까지도 인기가 높고, 공감하고 있는 것일까?


항상 아날로그와 추억에 대한 글을 쓰고,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다 보면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현실에 대한 팍팍함과 어려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그만큼 현실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행복이라는 2글자가 빈곤하다 못해, 사라지다 보니 모든 것이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재 드라마와 소설, 영화보다 과거에 우리가 보았던 모든 예술 장르에 더욱 눈물을 흘리고, 공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순풍산부인과도 아직까지 케이블 방송과 유튜브 채널에서 인기리에 시청되는 것은 그 빈곤함을 채우고자 하는 인간의 마지막 욕구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그리움과 추억 속에 순풍산부인과는 어이없게도 용두사미로 마무리된다. 소재 고갈과 캐릭터 미흡, 교체에 따른 기타 변수로 인해 점점 시청률이 낮아졌고, 결국 허무하게 끝난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트콤을 정말 재미있게 봤고, 항상 추억하고 있다. 영원한 드라마는 없지만, 그 마음속에 남은 영원함은 항상 우리에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순풍산부인과를 시청했던 아이들은 이제 30대가 넘었고, 청년들은 중년이 되었으며, 장년들은 노년기에 가까워졌다. 인생무상. 세월이 정말 흘러감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시트콤을 보며 추억하며, 당시의 우리가 뭘 했는지도 생각하는 등 잠시 동안의 행복에 빠져들기도 한다. 당시의 행복을 잠시 추억하며, 짧게 순풍산부인과에 대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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