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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동안남 Apr 12. 2023

10편 : 전자오락실은 80~90년대의 핫플레이스였다.

80~90년대 최고의 유흥 거리였지만, 이제는 추억의 명소가 되다.

필자가 산책을 하다가 과거에 있었던 이곳이 사라지고 미용실로 바뀌어 영업하는 것을 보고,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적어본다.


'시험을 망쳤어, 오 집에 가기 싫었어, 열받아서 어디 어디로 갔어.......'


한 때, 최고의 밴드로 인기를 끌었던 한스밴드의 노래 가사 중 일부를 써봤다. 어디 어디는 노래 제목이기도 한다. 다들 아셨을 것이다. 오락실.....


오락실, 지금은 PC방과 스마트폰, 그리고 각종 오락거리의 발달로 많이 사라졌지만, 그것이 없기 전에는 학창 시절 최고의 명소였다.


명소? 관광지도 아니고, 왜 필자가 명소라는 단어를 적었을까? 그만큼 당시에는 청소년들이 놀거리가 많이 없었다. 물론, 오락실을 건전하게 이용하면 나름대로 좋았지만, 등교하지 않고 하루 종일 오락실에 들락날락거리는 학생들 소위 불량배라고 불리는 나쁜 부류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다 보니 부정적인 요소도 많은 양면의 거울 중 하나였다.


오락실이 이런 양면의 거울도 있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추억의 명소가 되었다. 필자는 오락실에 대한 추억을 적어보면서 지금은 오락실에 대한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도 남겨보겠다.


필자보다 나이가 더 있는 분들은 50원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갤러그, 기타 하이퍼 올림픽 등 흔히 현재 고전게임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게임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산을 투자해서 유흥을 즐겼다. 소위 필살기, 전략 방안 등을 연구하고(당시에는 공략집이나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서로서로 게임을 통해 배웠다.) 그 과정을 통해 게임을 완료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가 잘 아는 손석희 앵커도 갤러그를 아주 잘했다고 하니, 남녀노소 당시 오락실은 가장 추억거리 중 하나였다.


큰 게임 기계에 돈을 투입하고, 자신의 기술과 손가락 감각으로 열심히 조종하고 눌러가며 게임을 하면, 으레 자신감이 폭발했다. 그렇게 자신은 고수가 되어 혼자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락실 주인 입장에서는 공공의 적이었다. 수익 창출을 위해 오랜 시간 한 사람이 게임을 하면 안 되기에... 오죽하면 주인집 아저씨가 고수에게 돈을 되돌려줘서 집에 가라고 했을 정도니....


그런 고수 플레이 속에 초보 게이머들은 제대로 공략하지도 못하고, 일찍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오락실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었다. 게임에 강한 사람, 집념이 강한 사람, 손가락 컨트롤이 뛰어난 사람 등등 수많은 게임으로 구성된 오락실에서 자신만의 장기가 있어야 정복할 수 있는 꿈의 무대였다. 필자는 초보여서 게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동전만 낭비했던 기억이 아주 생생하다. 가끔씩 방문했는데, 주로 했던 게임은 축구와 야구 게임이 전부였다.


80~90년대의 오락실의 스타일이 위에서 적은 대로 흘러갔다면, 그 후 최강의 아이템이 나온다. DDR와 펌프.. 이 2가지는 우리나라 오락실 시장의 혁명을 일으킨다.


이 2가지로 전국의 모든 댄서들이 탄생했고, 남녀노소 이 게임을 위해 발놀림을 연마하는 연습까지 했다. 그 와중에도 고수는 항상 나왔고, 이것이 발전되어 전국 대회까지 개최되는 등 새로운 오락실 바람을 불렀다. 그 당시의 열풍이 대단했기에 어찌 보면 오락실의 퀄리티도 상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해도 뜨면 저물어가는 법, 오락실의 위용도 점점 사그라지게 되었다. 바로 PC방의 등장이었다. 엄청난 고가의 컴퓨터는 당시 가정집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값싸고, 즐길 수 있는 PC방으로 몰리기 시작한다. 지금은 '롤'이라는 게임이 폭발적 인기이지만, 당시에는 스타크래프트, 피파 시리즈, 레인 보우 식스 등 혁명적인 게임들이 등장해 우리들이 소유한 이황 선생님의 지폐를 지불하게 된다. 그 폭발적인 인기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까지 등장했고, 게임 산업의 발전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의 게임 시장으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이런 상황으로 오락실의 위용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한 여파로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의 오락실은 거의 80퍼센트 가까이 사라졌다. 그래도 명맥이 끊어지지 않은 오락실도 몇 군데 있었다. 그 이유는 다른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바로 코인노래방.....


기존 오락실의 게임에 코인노래방이라는 혁명적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기존의 노래방을 이용하기 어려운 청소년 계층과 비용 절약을 위한 일반인까지, 오락실 안에 있는 코인노래방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 코인노래방의 인기는 대폭발적이었다. 당연히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증가했고, 여기서 수많은 연습을 통해 미래에 가수가 된 분들도 있다 하니, 저물어 가던 오락실을 코인노래방이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코인노래방은 따로 독립을 해서 아예 가게로 바뀌어 영업하는 곳이 많아졌다.


코인노래방도 따로 벗어나 영업을 하게 되었고, 이제 오락실은 어떤 운명을 맞이했을까? 여전히 대도시 중심가에는 오락실이 존재하면서 손님들의 유흥을 반겨주고 있다.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오락실의 명맥은 끊어지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일까? 바로, 추억과 호기심일 것이다.


어른이 된 어떤 사람이 코인을 넣어 격투기 게임을 하고, 스포츠 게임을 하고, 기타 추억의 게임을 하면서 학창 시절을 떠올릴 것이고, 연인들은 재미를 느낄 것이며, 학생들은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해 하는 게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옛 게임을 하며 흥미를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이 그 이유일 지도 모른다. 그만큼 오락실은 살아갈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방증이다. 그만큼 오락실은 가치가 큰 명소일 지도 모른다.


과거에 오락실은 금기시되었던 명소 아닌 명소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스마트폰과 온라인 게임에 중독되어 심각한 지경까지 왔다. 그래서 오락실에 대한 낭만과 추억이 더더욱 진하게 느낄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적당하게 즐긴다면 멋진 명소인 오락실.... 이제는 과거처럼 활활 타오르는 인기 명소는 아니지만, 아직까지도 우리의 마음속에 호기심과 학창 시절의 여운을 떠올리며 영원히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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