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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동안남 Mar 01. 2023

13편 : 3월 1일, 삼일절의 진정한 의미는 뭘까?

'대한 독립 만세', 3월 1일, 삼일절. 과연 진정한 독립의 의미란?

2023년 03월 01일은 수요일이다. 1919년 03월 01일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순간이었다. 무려 104년 전, 그날. 우리나라 아니 일제강점기로 인해 대한민국이라는 국명조차도 없던 그 비참하고 안타까운 현실. 1910년 경술국치라는 그 치욕을 겪고, 우리는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 세상에 평화를 위해, 아니 우리 스스로가 희망을 얻기 위해 전국에서 만세를 불렀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그 순간은 영원히 기억되는 날이었다. 그날은 바로 삼일절..


삼일절. 1919년 03월 01일 기미년에 일어난 역사적 기념일, 삼일절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삼일절을 통해 과거 우리가 겪어온 격동의 순간을 벗어나 21세기의 강국으로서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적어보겠다.


1910년 뜨거운 여름이었던 8월,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를 통해 나라를 빼앗긴다. 그 이후, 우리나라의 모든 것은 사라졌다. 일본 제국주의가 추구하는 모든 시스템에 의해 우리나라는 꼼짝하지 못하는 아주 절망적인 상황. 그 고통 속에서 우리 백성들과 지식인, 그리고 왕가들은 살아야 했다. 하지만, w.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라는 그 정신이 우리의 독립이라는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종 황제의 의문의 죽음까지 더해지면서 당시 우리 국민들은 일제에 대한 분노가 더욱 커져갔다.


이러한 영향이 있은 뒤, 1919년, 03월 01일 33인의 협심하여 만들어 낸 독립선언서. 정말 부끄럽게도 친일파 최남선이 그 명문을 남겼다. 하지만, 당시에는 애국주의자였으니, 얼마나 인간은 속물주의에 찌드는 지를 필자는 유년 시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여하튼, 그렇게 33인의 단결로 대한 독립 만세는 시작되었다.


대한 독립 만세, 이 6글자의 파장은 엄청났다. 서울(당시, 경성)에서 시작한 이 6글자의 우렁찬 외침은 전국으로 퍼졌다. 아이부터 시작해 기생, 양반, 지식인, 농민, 노동자 등등 모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6글자를 외치며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과 함께, 우리도 살아있다는 혼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그 와중에 여러 위인들도 동참했으니, 이러한 활동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정신을 현재까지도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삼일절 하면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하는 분은 바로 '유관순 열사', 그 위인은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와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시작했다. 그것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당시 나이, 20살도 안된 어린 소녀. 그 소녀의 외침에 천안은 물론 전국의 모든 만세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이 만세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평화적 외침이 무력으로 변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의 외침은 일제의 만행으로 인해 비참하고 처참하게 그분의 삶을 빼앗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우렁차게 아니 목숨을 다하면서까지 감옥에서까지 만세를 불렀던 유관순 열사. 과연 진정 열사의 모습으로서 우리 국민에게 큰 자랑으로서 아니 큰 등불로서 현재까지 비추고 있다.


유관순 열사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면서 두려움을 느낀 일제는 무자비한 만행을 시작했다. 우리의 만세가 우렁차다 못해, 위협적으로 보인 것이었을까? 그들은 무참한 보복을 가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제암리 학살 사건'. 이 사건 하나가 일제의 다음 통치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이 사건을 간략하게 쓰면, 당시 수원의 제암리라는 곳에서 일제가 주민들을 교회에 모두 가두고, 총살로 아기부터 노인까지 모조리 살인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불로 태워서 증거를 없애려고 했었다. 정말 잔악무도한 일제의 보복성 만행이었다. 그러나 외신들은 그 사건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았다. 그 사건으로 인해 국제 여론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잔혹한 통치에 비난을 퍼붓는다. 결국, 일제는 그 사건에 대한 용서? 아니 하늘도 분노할 망나니 같은 행동에 유감?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대처로 마무리한다.


3월 1일에 대한 독립 만세 6글자로 평화로 시작해 잔악무도한 비참한 사건까지 이어지면서 이 운동은 전 세계 식민 지배하에 고통을 받는 여러 국가에 큰 영향을 주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중국 5.4 운동이었다. 그만큼 3.1 운동의 영향력은 컸다. 총과 칼이 아닌 우리의 손과 뜨거운 마음, 그리고 우렁찬 목소리로 세상의 평화를 외쳤으니 어찌 보면 세계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3월 1일에 목청껏 외친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일까? 일제는 무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다. 대학을 만들고, 한글을 사용하고, 신문을 발간해 줬으며, 교육도 누구든지 받고, 칼도 없는 소위 공포 정치에서 벗어난다는 겉치레적 발상. 그러나 그 내면에는 우리의 정신을 이간질하고, 모든 것을 검열해서 더더욱 탄압을 가했고, 오히려 하등 교육을 보급해서 우리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으며, 친일파라는 소위 꼬드김식 만행도 저질렀으니, 정말 답답한 상황이 더욱 지속되었다.


그 외침이 평화롭게 마무리가 되는 시기? 는 무려 26년 뒤인, 1945년 8월 15일이었다. 뜨거운 여름,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항복했고, 진정한 독립인 줄 알았던 우리의 일순간 기쁨은 북쪽은 소련, 남쪽은 미국이라는 양갈래 체제로 나뉘어 새로운 갈등에 들어갔다. 결국, 약소국의 신세가 민족의 분열을 일으키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 후, 우리는 동족상잔이 6.25 전쟁을 겪고, 파탄이 난 상황에서 독재와 경제 개발이라는 양면의 거울 속에 성장하며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업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경제발전과 경제위기의 모든 것을 겪고, 21세기에 접어들어 우리도 선진국과 맞먹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물가 상승, 그리고 이념 갈등, 세대 갈등과 여러 문화적 문제로 아직까지 우리가 염원하는 단합까지는 요원한 상태이다.


오늘은 기념비적인 3월 1일 삼일절이다. 무려 100년이 더 된 오래전, 당시 우리 국민이 원했던 것은 딱 하나. 독립이었다. 주권을 되찾고, 사람답게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그 마음으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을 것이다. 그 후, 100년이 지난 우리는 그들의 외침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외침이 없었다면, 우리는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 수준까지 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과연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 그 생각마저 없고, 단순히 삼일절을 빨간 날로 생각해 여행 다니고, 노는 날로만 생각하면 어느 누가 진정한 독립국의 국민으로서 인정하겠는가? 우리 모두 삼일절의 의의를 생각하며 독립을 위해 희생한 당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생각하며 삶을 펼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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