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써머

백미러로 뒷자리에 앉은 아빠를 쳐다보았다. 10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동안 우리 둘다 이 없었다.


어제 저녁 아빠가 왠일로 을 걸어왔다. 아침 8시까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야 하는데 태워주라는 것이었다. 언제나처럼 요청형이 아니라 명령조 투. 나는 알았다는 대신 7시 20분쯤 나서자고 답했다.

오늘 아침 아빠는 예상대로 늦게 일어났다. 나는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는데 같이 늑장을 부렸다. 약속된 7시 20분이 지나도 서로 보채는 이가 없었다. 나는 5분정도 거리 차를 가지러 나가면서 '나 나가!'라는 세 글자만 남겼다. 아빠는 다급하게 '푸주옥 앞'에서 보자고 말했다. 대답없이 문을 나서면서 나는 속으로 또 명령조인 아빠 를 원망했다.


그때부터 아니 어제 저녁부터였을 것이다. 제대로 답하지 않는 딸에게 길게 을 하지 않는 습관. 그 습관은 오로지 아빠의 몫이라고만 여겼던 것이다.


차를 끌고 만나기로 한 식당 앞에 도착했지만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군. 속으로만 을 삼키며 아빠에게 전화했지만 내내 신호음만 들렸다. 비상등 깜빡이를 켜고 집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멀리서 잰걸음으로 다가오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는 여전히 내 차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난 6년동안 단한번도 먼저 알아보는 일이 없었다. 차창문을 활짝 연채로 내가 그에게 준 시선이 없었다면 한참동안 헤맸을 것이다.


잠시 후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냈다. 골목길에서 차를 돌려 큰길로 나가려는데, '아, 잠깐 배변봉투!' 하는 거였다. 나는 지금 가야 된다며 소리를 질렀다. '잠깐만 있어 보라게!' 늘 조용히 하던 아빠 역시 목소리가 올라갔다. '이 아방은 진짜!' 씩씩대면서 차를 오른쪽 공터로 돌렸다. 공터에서 반대 방향으로 차를 돌리며 여기서 기다릴지 집앞으로 차를 몰지 잠시 망설였다. 아빠에게 소리를 지른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직 나는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골목으로 다시 들어가자 눈에 초점을 잃은채 달려오는 아빠가 보였다. 아빠는 또 알아보지 못한 채 내 차 옆을 지나치려 했다.

"타라고!"

목에서 나온 쇳소리. 이후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수록 더 이 안나왔다. 아빠는 없이 창문 밖만 쳐다 보았다.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이번엔 아빠가 아니라 나에 대한 감정이었다. 아빠는 무슨 기분일까. 이 사라지니 아빠의 감정을 읽기 시작했다. 아빠는 내게 미안해 하고 있었다.

"내려!"

닫혀 있던 내 입이 열렸다.

아빠의 입도 열렸다.

"태워주서 고맙다."


남은 출근 길 차 안에서 할머니의 장례일을 떠올렸다. 할머니를 산소에 묻은 날, 아빠는 그 산소 위에 올라가 벙실벙실 웃었다. 노란 수의를 펄럭거리며 웃는 아빠는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이틀 전에는 나에게 전화로 "희주야, 할머니 종명하셨다."라고 할 때는 분명히 울먹거리셨는데 그 모습이 진한 잔상으로 남았다. 얼마전 읽은 앨런 피즈가 쓴 바디랭귀지에 대한 책을 떠올렸다. 원숭이는 기쁠 때 웃는 것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을 만났을 때 그 감정을 숨기기 위해 웃는다고. 그날 아빠는 할머니에게 '안녕히 잘 계세요, 어머니'라거나, '어머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을 걸었을지 모르겠다.


오해로 남는

상처만 주는


그리고 없이 전해지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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