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토요일 어제 하루종일 안보이던 아버지가 저녁에 들어오며 하신 말
"속이 안 좋으니 내일 아침에는 죽 좀 끓여줘."
엄마는 이런저런 군소리를 하면서도 제 손으로 죽을 끓이셨다. 누룽지 끓인 물에 부추도 썰어놓고 계란도 풀어 휘 저어 금세 한 냄비가 완성됐다.
아빠는 약간 찡그린 얼굴이면서도 참 맛나게 드신다.
#2
서른 중반즈음, 허리를 다쳐 누워 있는 아버지가 말했다. 아는 한의원이 있으니 가서 침을 맞자신다. 며칠동안 이미 다녀본 지라 별 기대감이 없었지만 마지못해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자신보다 스무살쯤 어려보이는 여 한의사 앞에서 아빠는 말수가 많아지셨다. 우리 아이가 다쳤는데, 일부러 데려왔으니 잘 좀 봐달라. 아빠가 그렇게 크게 웃는걸 참 오랜만에 보았다.
한의원을 나오자 아버지가 밥을 먹자 하셨다. 여기서 침을 맞고 추어탕을 먹으러 가는 것이 아버지의 단골 코스란다. 한의사 앞에서 만큼은 아니지만 아버지는 연신 방실대셨다.
#3
국민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방과후 다니던 주산학원으로 아버지가 찾아 오셨다. 그날은 동생도, 언니도 없이 오로지 나만 학원에 있는 날이었다. 아버지가 그걸 알고 찾아오신 듯 했다. 너는 몸이 약하니 몸보신을 해야 한다고 몸에 좋은 걸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학원에서 채 50m쯤 떨어진 곳이었나 보다. 허름한 식당에 아빠가 멈춰 섰다. 밥이 말아진채 나오는 약간 빨간 국물의 국밥. 난생 처음 받아본 음식이었다. 이름을 물으니 아빠는 생글거리는 얼굴로 고기탕이라고 하신다. 분명히 다른 이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아빠의 성의를 생각하며 몇 숟갈 떴지만 더이상은 손에 가지 않았다. 아빠는 내가 남긴 국밥을 먹느라 거의 두 그릇을 드셨다.
아빠는 언제나처럼 밥을 참 열심히 드신다.
항상 밥을 잘 먹는 나는 역시 아빠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