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란....?

(책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 중)

by 써머

‘자기란 무엇인가 혹은 맛있게 굴튀김 먹는 법’


저자의 에세이 ‘굴튀김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이 글을 읽다 보면, 난생 처음 들어본 이 굴튀김 맛을 보고 싶어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한 젊은 독자는 하루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입사 시험에서 ‘자기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원고 4매 이내로 작성하란 문제가 나와 대략 난감하였다. 만약 작가님은 어떻게 글을 쓰겠느냐 라는 것이 요지다. 하루키의 답은 이렇다. 원고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 거라는 독자의 뜻에 공감한다. 단, 굴튀김에 대하여 라는 글을 써보는 건 어떻겠느냐. 그 글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글이 될 것이다.

‘이야기’ 라는 장르는 늘 인간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야기의 본질은 허구인데, 인간은 다양한 삶을 체험할 수 없고, 오로지 이야기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과 자기와의 상대적 비교를 통해서 인간은 자기 존재를 깨닫게 된다. 단, 이야기란 하루키가 말하듯 역사적인 즉효성은 없지만, 계속성과 도의성을 갖는다. 나는 이것을 은근한 매력이라 표현하겠다.

소설가는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사람이다.
소설가가 할 일은 결론을 준비하기보다는 그저 정성껏 계속해서 가설을 쌓아가는 것이다.
가설을 결정하는 주체는 독자이지 작가가 아니다. 이야기는 바람과 같다. 흔들리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눈에 보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나는 사비나에게 특히 주목하였는데, 그녀는 예술이라는 소재를 이야기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추구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탐구가 바로 예술의 소명이라 하겠다.

하루키가 소설가에게는 자기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은 무의미하다 말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나는 이 소설가의 여정이 험난함을 느꼈다. 나는 지금 소설가로서의 하루키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해질녘 단골 맥주집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그린다. 오늘 하루 좋은 소설을 써보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글이 잘 써지지 않았나 보다. 이런 상실감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야기를 쓰는 일은 늘 선명하지 않는 일이다. 작가의 글은 오로지 독자와 만났을 때만이 의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야기란 바람과 같고, 흔들리는 것이 있어야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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