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 시간

by 써머

나에게 있어 하루 중, 가장 치열한 시간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이다.

'몇 시야? 일어나자. 어서. 오늘 하루를 보람차게 보내야지.'

나의 의지는 박약하기 짝이 없어 다시 잠이 들기 십상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다시 정신의 문이 아주 조금 열린다.

'앗! 잠깐 눈만 감은 것 같은데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잖아. 오늘도 일찍 일어나기는 또 실패군.'

이렇게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기를 몇번쯤 반복하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출근을 하지 않는 요즘 기상 시각은 주로 9시 전후다.


방학이 이만큼 소중한 때가 없었다. 일분 일초가 아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정신은 게으름을 이겨내지 못한다. 궁여지책으로 카페에 모닝세트 먹으러 가기를 정해 보았다. 스스로의 힘이 약하니 환경으로 통제해 보겠단 심산이다. 지난 주에는 커피빈을 다녀왔고 오늘은 집앞 투썸으로 목표를 삼았다. 카페에 도착하니 오전 9시가 되기 조금 전이다. 아침 일찍이라 한산한 카페안을 상상했지만 이미 한 팀이 보인다. 테이블 위에는 비어 있는 음료잔이 가득하고, 한창 웃고 떠드는 폼이 가게 입성한 지는 한참이나 지나 보인다.


"저기 모닝세트 되나요?"

이미 인터넷으로 확인을 했지만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지 않았다. 나의 물음에 동그란 얼굴의 여직원이 엷은 미소를 짓는다. 안심하고 결제하려는 찰나, 직원이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한다. 네, 얼마든지요. 한국에서는 손님도 직원도 동작 굼뜬 나를 채근하기 마련인데, 오히려 신선했다. 단 하나 걸리는 건 내 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남자 손님이 신경쓰일 뿐이었지만, 나보다야 직원분이 더 신경쓰일테니 쓸데없는 걱정은 넣어두자.


여직원이 주방에 들어가더니 좀더 어른으로 보이는 남자 직원을 데리고 나온다.

"이거 아무것도 안 건드렸지?"

기껏해야 30초? 한국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기다림이란 고작 그 정도의 시간이지 않을까 한 나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남자 직원은 몇번쯤 단말기를 건드려보더니, 나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혹시 드시고 가시나요?"

"네."

"지금 기계가 안되서 메뉴 먼저 드릴게요."

네, 얼마든지요. 순간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소지섭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돌아서자, 뒤에 있던 남자 손님이 말을 건다.

"저기 화장실 비밀번호가..."

아, 그가 초조하게 기다린 건 주문이 아니라, 방광의 자유였던 거구나. 어쩐지 남자의 얼굴이 낯익다. 그래, 1박 1일의 유호진 피디 닮은 꼴이다.


언제든 그가 부르면 바로 결제할 수 있도록 지갑과 휴대폰을 준비 모드로 만들어 둔다. 나는 지속적으로 소지섭을 닮은 남자 직원의 동태를 살핀다. 몇 분이 지나서 메뉴를 받을 때까지, 단말기는 기능을 복구하지 못했다. 괜히 무식하게 전취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이쯤되니 나도 어서 빨리 결제를 하고 싶어진다. 여자 직원은 태평하고 남자 직원은 마음이 급한 듯 하다. 단말기의 앞뒤를 왔다갔다하며 분주하다. 덩달아 그의 앞태와 뒤태를 소상하게 살핀다. 하늘거리는 하늘색 셔츠가 내 눈에 꽂힌다.

"결제해 드릴게요."

손으로는 마스크를 발로는 슬리퍼를 찾는다. 조금의 지체 없이 거의 동시에 손과 발이 움직인다.

"죄송해요. 기계가 작동을 잘 안해서요."

소지섭을 닮은 이유는 그의 눈이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비해 연륜이 느껴지는 착한 눈이다. 별말씀을요. 그게 왜 죄송할 일인가요. 나는 괜히 쑥스러워, 성급히 손사레를 치고 괜히 다른 말을 해 버린다.

"그런데, 여기 아로마노트랑 블랙 그라운드는 어떻게 달라요?"

"고소한 맛이랑, 산미있고..."

그의 대답이 건조하게 느껴져 나는 말을 더 꺼낸다.

"그럼 라떼는 뭐가 더 맛있어요?"

"아로마노트가 훨씬 맛있어요."

훨씬 이라는 말 속에서 나는 그의 웃음을 찾았다. 그래도 석연치 않았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떠오르며 그가 죄송하다는 말을 했을 때, 좀더 배려하는 말을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별말씀을요. 그게 왜 죄송해요."

그랬다면 그는 착한 눈으로 웃어 보였을 지도 모르는데.


아침 8시에 문을 여는 카페이니 그는 오전 7시쯤에는 가게에 도착했을 것이고, 기계를 예열하고 매장을 정렬하고 음악을 선별하겠지. 비어 있는 물통에 물을 채우고, 가게 안에 이상은 없는지 점검도 하면서 바쁜 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내가 잠과 싸운 그 한 시간 동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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