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안데르센
저 깊은 바닷 속에 왕국이 있는 것을 아니? 인간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깊은 바닷 속으로 들어가면 인어들이 살고 있는 왕국이 나온단다. 내가 들려줄 이야기는 가장 먼저 눈물을 보인 인어공주의 이야기야.
바다 왕국에는 쌍둥이 인어공주가 있었어. 도도와 선해. 첫째 도도는 매우 아름다웠어. 흰 얼굴, 에머랄드 빛 눈망울, 허리 위에는 윤기있는 푸른 빛 머리칼이 넘실거렸어. 도도의 지느러미 꼬리에는 진주 보석을 달아 장식했지. 그녀가 헤엄치면 눈부시게 빛났어. 다들 도도를 사랑했어. 이웃 나라의 왕자들도 모두 그녀를 보고 싶어했고, 그녀가 열 다섯 살인 성인이 되면 청혼할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둘째 선해는 머리칼과 눈동자는 검은색이었고 왠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지. 쌍둥이 인어공주는 눈코입이 닮았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매우 달랐어. 모두들 선해보다 도도를 예쁘다고 생각했어. 대신에 선해는 누구보다 착했고, 영특하기도 했지. 하지만, 사람들은 예쁜 도도를 더 좋아했고, 특히나 할머니는 도도만을 편애했어.
쌍둥이 인어공주에게는 엄마가 없었어. 쌍둥이를 낳다가 돌아가셨거든. 대신에 할머니가 두 공주를 보살펴 주셨어. 할머니는 매우 자신감이 넘치는 분이셨어. 할머니의 머리칼도 도도처럼 푸르고 길었지. 그리고 자신의 몸을 치장하는 걸 좋아했어. 두 쌍둥이는 할머니에게서 항상 이런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왔단다.
“여자란 반드시 예뻐야 한단다. 여자가 유일하게 배워야 할 일은 자신의 몸을 가꾸고 아름답게 치장하는 일이란다. 아름다움은 너의 가장 강한 무기가 될 거야.”
할머니는 또한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어.
“바다 마녀가 사는 곳은 절대 가면 안 된다. 마녀는 아주 흉악하고 무시무시한 존재란다. 마녀가 사는 곳은 소용돌이와 온갖 죽은 생물로 덮여 있는 아주 끔찍한 곳이란다.”
쌍둥이 인어 공주가 열 다섯 살이 되자, 할머니가 두 인어 공주를 불러 말했어.
“너희들이 이제 성인이 되었구나. 바깥 세상을 구경하고 오도록 해라.”
도도와 선해는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바다 위로 올라갔어. 한창 태양이 바다 밑으로 숨으며 붉은 빛을 내뿜고 있었어. 쌍둥이 인어공주는 처음 보는 붉은 노을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 보다 어디선가 들리는 음악 소리에 이끌렸어. 바다 위에 돛이 세 개가 달린 커다란 배 한 척이 있었어.
“인간의 배인가봐!”
호기심이 많은 선해가 먼저 배 가까이에 다가갔어. 화려하게 꾸민 사람들이 술과 음식을 먹으며 춤을 추고 있었어. 선해는 인간들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 중 젊은 왕자의 모습에 넋이 나갔지. 선해는 흥분된 마음으로 언니 도도를 찾아갔어.
“언니! 사람들은 정말 아름다워!”
처음에는 별 흥미 없어 보이던 도도도 선해를 따라 사람들을 구경하러 갔어. 도도의 눈에도 젊은 왕자가 가장 멋져 보였어. 그리고, 젊은 왕자의 주변에 수 많은 여인들이 있었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바로 나야. 저 왕자가 나를 본다면 분명 사랑에 빠질 거야. 그렇지?”
“으응.”
선해는 대답을 얼버무렸어.
“어때? 저 남자, 내가 한번 내가 꼬셔볼까?”
도도는 선실 창문에서 보이는 바다 위로 힘차게 뛰어오르기 시작했어. 하지만 사람들은 파티에 정신이 팔려 있어 도도를 보지 못했어. 도도가 바닷 속으로 들어가 배 밑바닥을 흔들었어. 선실의 사람들이 놀라서 자빠지기도 하고 우왕좌왕 뛰어나왔고, 몇몇 사람들은 구명용 작은 보트를 띄워 탈출하기도 했지. 젊은 왕자도 그 중 한 사람이었어. 도도는 자신의 미모가 돋보이길 원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어. 푸른 머리칼은 달빛에 비쳐 빛나겠지만 은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꼬리를 꼭 보여 주어야 했어. 바다 위로 도도의 몸이 높이 뛰어 올랐다가 물 속에서 얼굴이 천천히 올라왔어.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어.
“괴물이 나타났다. 바다 괴물이다!”
구명보트는 물론이고, 배의 선실에 있던 사람까지 모두 다 도도를 본 듯 했어. 심하게 놀란 사람은 보트에서 물속으로 자빠지기도 했지.
“저렇게 끔찍한 괴물은 난생 처음이야!”
사람들만큼 도도도 깜짝 놀랐어. 도도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황급히 물 속으로 사라졌어.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선해도 얼른 언니를 따라갔어.
왕국으로 돌아온 도도가 할머니의 품에 안기며 말했어.
“할머니, 인간들은 저를 예쁘다고 여기지 않아요.”
“도도야, 인간들이란 그렇게 아둔한 존재란다. 그렇게나 아름다운 네 지느러미 꼬리를 그들은 몰라본단다. 대신에 다리라고 부르는 흉측한 것을 달고 다니는 주제에 말이야. 걱정하지 마라. 곧 구혼자들이 몰려들테니. 누가 뭐래도 넌 이 왕국 최고의 미녀야.”
다음 날, 선해는 혼자서 바다 위로 올라가 보았지만, 바다 위는 고요했고 사람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어. 왕자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선해의 눈망울이 흐려졌어. 선해는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를 찾아야만 했어.
‘그래, 바다 마녀를 찾아가자. 마녀는 틀림없이 인간 세상에 가는 방법을 알고 있을 거야.’
선해는 어딘선가 마녀가 오래 전에는 인간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을 떠올렸어. 그 길로 곧장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로 들어섰어. 으르렁거리는 소용돌이에 이르자 덜컵 겁이 났어. 그 소용돌이는 물레방아 바퀴처럼 빙그르르 돌면서 바다 밑바닥에 닿는 것은 뭐든 낚아챘기에 조심해야 했어.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 그런데 이게 웬걸, 소용돌이를 지나자마자 평화로운 분위기의 하얀 모래밭이 펼쳐진 거야. 모래밭에는 아름다운 꽃들과 바다풀까지 심어져 있었어. 마녀가 사는 집은 작고 허름했지만 정성스럽게 가꾸고 보살핀 흔적이 보였어.
선해는 떨리는 마음으로 마녀의 집에 들어섰어. 마녀의 모습은 사악함이나 무시무시함과는 거리가 멀었어. 그리고 흰 머리칼의 인어는 처음 본거야. 아니, 본래는 검정색이었지만 군데군데 점점 희게 변하는 모습이었어. 마녀의 눈은 칠흑 같은 검은색이었지만 선해를 바라볼 때 왠지 슬퍼 보였단다.
“당신이 선해 공주님이군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가 오는걸 알고 계셨나요?”
“혼자 살다 보니 물고기나 공기 방울이 전해주는 소식에 늘 귀를 기울이고 있죠. 소용돌이를 지나시면서 몸이 상하실까 걱정했답니다.”
선해는 마녀의 공손한 태도에 깜짝 놀라면서 고마움을 표했어.
“혹시 제가 온 이유도 알고 계신가요?”
선해의 물음에 마녀는 깊은 한숨을 쉬었어.
“정말로 그걸 원하시는 건가요? 한번 인간이 되면 되돌릴 수 없어요. 분명 기쁨도 존재하겠죠. 인간 세상은 다양한 걸 누릴 수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아픔도 클 거에요. 다시는 가족과 만나지 못하는 그 슬픔을 견딜 수 있겠어요?”
어쩐지 마녀가 울고 있는 것 같다고 선해는 생각했어. 하지만, 바닷 속에서는 울어도 눈물이 보이지 않는 법이지. 그래서 인어는 슬퍼할 수만 있지 울 수는 없는 존재란다.
“할머니는 저를 사랑하지 않아요. 도도 언니는 곧 이웃 나라 왕자와 결혼을 할 거고요. 아빠는, 아빠는 제가 행복하길 원하실 거에요. 언젠가는 저도 이 나라를 떠나야 하잖아요. 인간 세상은 정말 흥미로워요. 거기서 많은 일을 할 수 있겠죠?”
“알겠어요.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하셔서 기쁩니다. 제가 꼭 공주님을 도와드릴게요. 그것이 제가 여기 있는 이유니까요.”
선해를 지긋이 바라보던 마녀의 눈빛에 힘차 보였어. 잠시 후, 마녀는 선해에게 인간이 되는 약을 지어 주었어.
“언제든 힘들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꼭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저는 늘 공주님 편이랍니다.”
선해가 돌아왔을 때, 성은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었어. 도도가 선해의 두 손을 잡고 말했어.
“선해야, 오늘 아홉 명의 남자가 나에게 청혼했어. 그 중 가장 멋지고 화려한 남자를 골랐어. 드디어 내 꿈을 이루었어. 걱정 마, 너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훌륭한 남자와 결혼하게 될 거야.”
선해는 그날 밤, 모두가 잠든 사이 조용히 성을 빠져나왔어. 가족들에게 할 말을 써둔 편지를 남기고 대신에 마녀가 준 약을 들고 나왔어. 아버지의 침실 앞에서 잠시 인사를 드릴 때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곧 힘차게 바다 위로 솟아 올랐어. 막 동이 틀 무렵이었어. 선해는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을 넋을 잃고 바라 보았어. 헤엄쳐서 땅에 다다르고 선해는 마녀의 약을 먹고 정신을 잃었어.
선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며칠이 지나고서였어. 바닷가를 지나던 착한 어부가 선해를 발견하고 자기의 집으로 데려간 거야. 그 집에는 어부의 아내와 자식, 그리고 노모가 살고 있었어. 어부의 가족들은 선해를 잘 보살펴 주었고, 선해는 그들 덕분에 인간들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무척 친절하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인간들은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 어부는 매일같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아내는 집안일을 했지. 노모는 아이를 보살펴 주고 여러 가지 집안일을 하셨어. 노모는 선해에게도 무척 친절하게 대해 주었는데, 선해는 특히 노모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좋아했어. 옛날에는 이렇게 살았다. 성 안에 사는 사람들, 다른 나라 등등 호기심 많은 선해에게는 모든 이야기가 재미고 공부였어. 인간 세상은 흥미와 즐거움을 가득했어. 노모의 이야기에는 바다 왕국에 대한 것도 있었는데, 공주가 바다의 왕자와 사랑에 빠져 바다로 떠났다는 이야기였어.
어부의 집에서 생활한 지 몇 개월이 흘러, 선해는 이제 자신이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어. 인간 세상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거든. 어부의 가족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길을 떠났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성 안이었어. 성 안은 활기가 넘쳤고 갖가지 물건들, 아름다운 건물들을 구경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정도였어. 광장에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어. 곧 우렁찬 음악 소리와 함께 군대의 행렬이 등장했어.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 모습을 바라보다 선해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어. 배에서 본 바로 그 젊은 왕자였던 거야. 왕자도 어쩐지 선해를 알아본 듯 했어. 선해의 칠흑같은 검은 눈과 머리칼은 인간 세상에서 눈에 띄었거든. 왕자는 선해를 마음에 들어 해서 성안으로 초대했어. 성안은 호기심을 가득 안고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지. 성안은 화려함으로 가득했고 매일 파티가 열렸어. 그래서 바다 왕국과 크게 다를 바는 없는 곳이었어.
선해가 성밖으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어느 날, 왕자가 개인 사무실에 그녀를 초대했어. 벽면에는 수많은 초상화들이 가득한 방이었어.
“당신은 신비로운 매력이 있어요. 수많은 여자를 알고 있지만 당신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당신을 본 순간, 전부터 알고 있는 친숙한 느낌이 들었어요. 당신은 정말 특별해요. 나와 결혼해 주겠어요?”
왕자의 청혼은 뜻밖이었기에 선해는 망설였어. 성안에서 어떤 생활을 할지 선해는 알 수 있을 것 같았어. 하지만, 성밖의 세상은 선해에게 물음표라는 생각이 들었어.
“존경하는 왕자님, 저는 당신의 청혼을 받아드릴 수 없어요. 저는 바깥 세상을 더 공부하고 싶어요.”
왕자는 아쉬워했지만 그의 눈은 흔들림이 없어요.
“당신을 기다릴게요. 당신이 바깥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온다면 다시 청혼하겠습니다.”
선해는 순간 왕자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정말 다정하신 분이군요. 하지만 저를 기다리는 건 당신에게 가혹한 일이 될 거에요. 저는 바로 성밖으로 떠나겠습니다. 그동안의 호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선해는 진심으로 왕자에게 고마워했고 막 방을 나서려는 순간, 벽면에 걸린 한 초상화와 눈이 마주쳤어. 그리고 머릿속을 스치는 한 얼굴이 있었어.
“그런데 혹시 이 초상화의 주인은 누구신가요? 분명 지체높은 분이시겠죠?”
“저와는 먼 친척쯤 되는 분이에요. 그러고보니 검은 머리칼과 눈동자, 두 분이 서로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선해님을 보고 친숙하다고 느낀 게 혹시 이 초상화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이 분은 바다를 아주 좋아하셨다고 해요. 좋은 기록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왕실을 떠나셨어요. 사람들은 이분이 바다의 인어가 되었다고들 하더군요.”
선해는 그 길로 성을 나와 바닷가로 향했어.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잔잔한 파도를 일으켰어. 작은 파도는 선해가 앉은 바위로 다가와 물보라가 되어 흩어졌어.
‘공기 방울아, 저 깊은 바다 속 그 분께 내 소식을 전해주렴. 잘 지내고 있다고. 당신을 그리워한다고. 바닷물 속에서 나는 엄마의 눈물을 보지 못했구나.’
선해의 두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