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이 사라졌다
(심리여행에세이#3- 소멸하는 것은 아름답다)
며칠 전, 웬일인지 우편함에 우편물이 꽂혀 있는 것이 보였다.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자동차세 고지서가 오는 일 외에 이제는 우편물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물지 않은가. 의아한 마음으로 꺼내어 보니 동서식품에서 보내온 삶의 향기라는 잡지였다. 작년에 동서문학상에 소설 부문에 응모한 일이 있고 그래서 삶의 향기 잡지를 처음 받았는데, 거기서도 독자투고 코너가 있길래 아마 몇 달 전 거기에 응모를 한 일이 있어 그 답으로 다시 잡지를 보내 준 모양이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지난번 호에서는 특히 커피와 음악이라는 연재 칼럼이 재미있었다. 이번 호의 칼럼들은 띄엄띄엄 읽기는 했지만, 새롭게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맨 뒷장에 엽서가 붙어 있었다. 독자 퀴즈 정답을 보내거나 구독신청을 위한 엽서였다.
오호라! 이거 꽤 재미있는걸.
엽서라니 구시대적 유물이라고만 취급했는데, 이 전통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군. 옛것을 지키겠다는 우직함인 건지 궁금했다. 길게 고민하지 않은 채, 엽서에다 내 집주소를 적고 절취선을 따라 반듯하게 엽서를 잘라냈다. 엽서는 반으로 접고 풀칠하여 내 개인정보를 보호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우편요금은 선납이란 표시도 찾았다. 이렇게까지 독자 중심주의를 실천하다니 그들의 친절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할 일은 우체통의 좁은 입에 이 종이를 먹이는 것뿐이다. 몇 년 전, 더블린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시내의 가장 큰 거리인 오코넬 스트리트의 한가운데 우체국이 우뚝 솟아 있었다. 나는 종종 한국에 있는 남자 친구에게 엽서를 보내곤 했는데, 그곳은 전통방식을 따라 창구에서 우표를 구매하고, 풀로 엽서에 붙이고 우체통에 넣어야 했다. 우체통에 엽서를 넣는 일은 로맨틱했다. 나는 우체통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아름다운 순간을 기념했다. 5년 전의 나는 단발머리에 한참이나 앳된 모습이었는데 미소까지 지으니 참 예뻤다.
갑자기 고민이 되었다. 요새 우체통이 어디 있기는 한가? 우체통을 찾아볼 생각을 한 지가 20년 가까이 된 듯하다. 이 엽서를 보내려면 우체국까지 찾아가야 하겠구나. 더블린에서야 이방인이니 틈만 나면 시내로 나가 관광을 해야 했으니 무조건 우체국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우체국을 찾아가는 상상을 하니 별로 반갑지 않았다. 더블린에서는 낭만적이었던 일이 한국에서도 그냥 일이 되었다. 한국의 우체국은 작고 분주하다. 신속함을 추구하는 곳이다. 우체국에는 우체통도 보이지 않는다. 번호표를 뽑고 차가운 전자저울에 엽서를 올려놓으면 창구 직원이 부르는 요금을 지급한다. 그에 비하면 더블린의 우체국은 아름다움과 전통을 추구한다.
우체통은 사라졌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 되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
&
네가 나에게 왔고 너는 사라졌다.
너는 나에게 그 무언가가 되었다.
굳이 어린 왕자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분명히 소멸하는 것을 사랑한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거의 모두 사라진다. 젊음은 영원하지 않고 그만큼 아름답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그래서 가치롭다. 그렇다. 소멸하는 대상은 소중한 것이 되고 아름다움을 갖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라질 대상이 아름답다. 이미 소멸된 것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반대로 늘 당신의 눈앞에 존재할 대상에 대해서 당신은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추억이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거나 우리가 소유하지 않았던 대상은 전혀 애틋하지 않다.
인간의 삶 역시 한시적이지만 인류는 오랫동안 불멸을 갈망해 왔다. 소멸하는 대상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숙명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