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와이퍼는 얄짤 없어서!

(심리여행에세이#4-관계맺음에 대하여)

by 써머


비 오는 날 외출이 긴장되는 건 운전을 시작한 이래 생긴 징후이다. 아직 3개월 차 초보운전 딱지쟁이인 나는, 비오는 날이면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사이드 미러는 빗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도로 차선이 흐릿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전면유리에 맺히는 빗방울에 비할 바가 아니다.


빗방울의 들이닥침은 리듬이 없다. 언제는 우두두 쉴 틈 없이 들이치다가, 똑-똑- 기세가 금세 누그러지기도 한다. 그에 비해 와이퍼의 움직임은 얄짤 없이 규칙적이다. 1단은 7-8초쯤에 한 번씩 유유자적한 리듬이고, 2단은 쩍쩍쩍쩍- 1초에 한 번씩은 왕복한다. 그 중간쯤은 없냐라며 핀잔줄 수도 없다. 자동차란 내 한 몸 편히 실어주는 감사한 녀석이지만, 녀석의 융통성은 제로에 가까우니 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1단은 너무 가끔이고 2단은 너무 자주다.’ 비의 양은 적은데 그에 비해 와이퍼가 과하게 움직인다면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빗방울이 유리를 덮어 흐릿한 상을 만들어 버리는데, 한참 후에야 와이퍼가 지나간다면 위험하다.


그저 천방지축 변덕쟁이 빗방울이 야속하지만 어쩌랴, 나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기로 한다. 이 정도 비라면 운전 경력자들은 1단? 2단? 몇 단에 맞춰서 와이퍼를 작동시킬까? 그네들을 따라한다면 나도 적당한 선을 찾을 수 있겠지. 나는 지나가는 다른 차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최 와이퍼의 움직임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와이퍼가 움직이는 장면을 목격하는 확률은 10분의 1쯤 되려나. 대부분의 자동차는 와이퍼가 멈춰있는 채다. 역시 운전 경력자들은 나 같은 초짜와는 다르구나. 이 정도 비쯤이야 가볍게 넘기고 와이퍼는 작동하지 않은 채로 여유롭게 운전을 하나 보다 싶었다.



짧은 생각이었다. 인간은 주변 대상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위대해 질 것이다. 와이퍼가 움직이는 시간은 찰나이고, 나는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나도 그들도 서로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들을 주의깊게 살필 수 있는 순간은 아주 짧았고 그때 와이퍼가 움직이느냐 아니냐에 따라 나는 그들을 판단해 버리고 만다.



그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나는 그것을 사랑의 시작이라 부르겠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수많은 타인을 만난다. 그리고 현대인은 정말이지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낯선 타인과의 새로운 만남에 설레어한다. 그 이유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다. ‘사랑하다’와 ‘생각하다’는 원래 한 뜻이었다고 한다. ‘사랑’이란 말의 어원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하나의 가설은 ‘생각하여 헤아리다’라는 뜻의 ‘사량’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논리를 따른다면 ‘사랑은 생각하는 분량만큼’이 된다.


사랑하고자 하는 대상과 오랜 역사를 갖는 것. 그리고 생각하고 헤아리는 것이 사랑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꽤 유명한 이야기이다. 지구에 도착한 어린왕자는 여우를 만나 ‘길들인다’라는 말에 대해 알게 된다. 길들인다는 것은 그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길들여졌다면, 그에게 단 하나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사랑의 진행이라 부르겠다. 사랑한다면 사랑받는다면 나는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둘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대상을 상실한다면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여우는 존재가 특별해진 것은 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를 생각한다’, ‘함께 시간을 보낸다’ 로 해석할 수 있겠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 책임이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역시 당부의 말 또한 남긴다. 길들인 것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감정이 소진되었다고 사랑을 끝내선 안된다. 관계에 대한 노력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랑이 지속되지 못하고 소비되는 현상을 종종 보게 된다. 어떤 누군가를 만나고, 그와 관계맺음을 시작한다. 그와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과잉되었던 감정은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흔히들 이를 두고 사랑이 식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혹자는 과한 열정으로 시작하는 사랑을 경계하기도 하는데, 이런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책임은 사랑을 지속시키는 힘이요, 사랑의 완성이다.



자동차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외롭지만 우리가 쉬이 관계맺음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무수히 지나가는 자동차들 중, 내가 제대로 알아본 자동차는 많지 않다. 나도 그들도 그만큼 빨리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너무 바쁘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깊은 관심과 시간을 줄 여유가 없다. 또,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을 시간을 들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특별해진 대상을 언제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