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리뷰- 우리들의 블루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에서 주인공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도 서귀포시 해안마을 푸릉리의 사람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준다. 푸릉리는 가상 마을이지만, 제주도라는 배경은 드라마의 주제에 깊이 관여한다. 섬이라는 고립된 환경은 '한 다리 건너면 친인척' 이라는 괸당 문화를 만들어냈다. 처음 보는 어르신을 친근하게 삼춘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옴니버스이라는 형식에 걸맞게 다양한 인물들의 각자의 애절한 사연으로 갖고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나는 그 중, 고등학교 동창인 호식, 인권, 은희의 모습이 가장 미로웠다. 그들은 일찍 부모님을 잃었다는 것과 셋 다 시장 상인으로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호식, 인권은 홀아비가 되었고 동갑인 딸과 아들을 하나씩 두었다. 이제 고3인 자식을 잘 길러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것이 그들의 삶의 의지다. 그 희망이 가난을 견디게 한다. 미혼이지만 은희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고등학생 때 이미 소녀 가장으로 동생들의 생계, 학업과 결혼까지 책임져 온 그녀이다. 하지만 동생들은 철이 없는지라 사십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동생들 뒷바라지 중이다. 친구 사이지만 서로의 대소사를 살뜰히 챙기고 힘든 일이 생기면 걱정해 준다. 춘희나 옥동 동네 어른들을 챙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식이 없이 혼자 외롭게 사는 그들을 꼭 어머니라고 부른다. 마치 정말로 가족인 것처럼.
이들의 가족애가 빛을 발하는 것은 은희, 인권, 호식이 동석을 불러 훈계하는 장면이다. 셋은 옥동이 암에 걸린 걸 보고 어멍을 챙기라고 동석을 불러 훈계한다. 동석이 화를 내며 일어서자, 셋은 크게 낙담한다. 인권이 남긴 대사,
그래, 관두자. 남일이다!
그 당연한 말을 의미심장하게 내뱉지만,
이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함이었다.
옥동, 춘희, 은희, 호식이 인권네 밥집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밥을 먹는다.
동석은 부러 그들을 찾아와 옥동에게 말을 건다.
함께 먹는다
는 행위는 참으로 큰 의미일 수 있다.
함께 먹는 것, 먹는 것을 챙겨주는 행위는 가족들의 일이고 관계의 척도가 된다. 옥동은 동석에게 커피를 건네 주었고, 동석은 함께 밥을 먹기 위해 찾아온다. 옥동과 동석의 화해 자리에 호식, 은희, 춘희, 인권까지 함께한 것은 모두와의 화해를 이룬다는 의미이다. 동석은 옥동에게 "제사 언제?"라는 말을 건네고, 춘희, 호식, 인권, 은희는 모두 함께 나서 그 화해를 받아들인다. 둘 사이의 제사는 밥상 머리에 앉은 모든 이들의 일이다. 동석은 모두의 밥값을 함께 계산하고 나간다.
옥동이 죽기 전 한 일은 목포에 가서 옛 식구들에게 밥을 챙겨준 일이다. 남편을 위한 제삿상은 물론 종우, 종철이에게 고사리며 무말랭이, 제사 음식을 선물한다. 목포로 떠나기 전에 옥동이 그토록 원한 일은 동석과 함께 밥을 먹는 일이었는데 그 일은 제주로 돌아오기 전에야 이룬다. 동석이 그토록 좋아하는 된장찌개는 아니었지만 옥동이 좋아했던 짜장을 함께 먹는다. 둘 사이의 완전한 화해가 이루어진 순간이다.
하지만, 나면서부터 배 곯는 운명으로 살아온 옥동에게는 삼시세끼 챙겨주는 일이 자식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리고, 그녀는 동석이가 좋아하던 된장찌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동석에게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것을 해준 것이다.
우리들의 로맨스아닌,
우리들의 블루스인데,
온갖 가슴아픈 사연들만 간직한 이들의 이야기인데
우리가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위로를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 & 우리
가 이유일 것이다.
가장 와 닿았던 장면
동석이는 양육권 분쟁 소송날 선아와 함께 서울에 온다. 선아가 혼자 비행기 타고 간다고 해도 굳이! 함께 배로 가자고. . 아이 문제로 신경이 곤두선 선아를 위해 끝까지 옆에 있어준다. 결국, 소송권 분쟁에서 지고 정신을 추스르지 못하는 선아 옆에서 동석이가 한 말.
"슬퍼하지 말란 말이 아니야. 슬퍼만 하지 말라구. 슬퍼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러다가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어쩌단 웃기도, 행복도 하고"
누군가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애달픈 사연 하나쯤은 있다. 내 인생에서는 내가 주인공이고, 내 주변 사람에게는 내가 다시 주변인물이 된다. 각자가 주인공인 에피소드 속에서 다시 조연인 우리.
그런데 그 조연이 있기에 우리의 슬픔은 참을 만한 것이 된다.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힘을 낼 수 있다. 내 삶의 애환을 받아들이게 된다.
슬픔이 없는 유토피아적인 삶을 꿈꾸는 대신, 힘들 때 옆에 있어 줄 그 사람이 있으면 된다. 드라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그리는 장르라 했다.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제목은 아이러니하게, 우리에게 따뜻함을 전한다. 옥동이 생을 마감하고 동석이 오열하는 장면에서 함께 눈물을 쏟아내면서도 우리는 희로애락의 삶 속에서 결국은 행복하자고 다짐하게 된다.
절망에 빠졌을 때
누군가가 그 말을 해 준다면 그리고 옆에 있어 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