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강한 힘이 만나면

(영화 리뷰: 킬링 디어)

by 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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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에는 늘 힘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이루는 더 큰 집단, 조직, 사회, 국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힘의 크기나 종류는 다양해지고 거대해 진다.


<킬링 디어>를 보고 나서 내 머릿속에 남은 글자는 힘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파일이 잘못 재생되었나 싶었다. 웅장하고 무시한 음악은 계속 재생이 되고 화면은 한참이나 깜깜했다. 요르고스 감독의 전작인 <더랍스터>의 신랄한 냉소를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암울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시작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파일이 잘못 재생되었나 싶었다. 웅장하고 무시한 음악은 계속 재생이 되고 화면은 한참이나 깜깜했다. 요르고스 감독의 전작인 <더랍스터>의 신랄한 냉소를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암울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시작이다. 이어지는 압도적인 비주얼. 동물의 한 부위인지 벌떡거리는 고깃덩어리가 화면에 가득찬다. 저런 박동이라면 분명 심장일텐데 심장이 저렇게 비계로 덮여 있다니. 이런 생각을 할 찰나에 큼지막하게 타이틀이 보여진다. 특히 SACRED DEER에 크고 굵게 강조 표시가 되어 있다.


제목은 이야기의 시작을 담당하고 있었다. 스티븐 (콜린 퍼렐)은 심장 전문의로서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예쁜 아내와 두 아이를 둔 탄탄대로 인생을 항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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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에게는 한 비밀이 있다. 절친인 직장 동료 매뉴나 아내인 안나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마틴이라는 소년과 만난다. 스티븐은 마틴에게 어떤 빚을 진 듯 보인다. 마틴은 그와의 약속에 늦게 나오기도 하고, 스티븐은 보상인지 비싼 시계를 선물하기도 한다. 가장 수상쩍은 건 어쩐지 기이한 마틴의 눈빛이고, 예의바른 듯 하면서도 은근히 스티븐을 괴롭힌다. 몰래 병원에 찾아와 그의 주변을 염탐하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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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은 마틴의 그런 태도를 불편해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를 집으로 초대한다. 자신이 마틴의 아버지를 실수로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을까 마틴을 동정하고 잘해주려 하는 듯 하다.

마틴은 스티븐에게서 아빠를 찾으려 한 건지 자신의 엄마와 커플을 맺어 주려 한다. 하지만 마틴이 원하는 것을 스티븐이 주려 하지 않자 마틴이 복수를 시작하는 듯 하다.


스티븐과 마틴은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두 힘이고, 이 둘 사이의 긴장은 이야기의 인물들을 변화시킨다. 스티븐은 아내에게 혹은 아들과 딸에게 부드러운 가장이었지만, 마틴의 등장으로 다른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한없이 부드러운 남편이고 아빠였다. 양육 문제는 물론 거의 모든 일을 아내와 의논하고,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어 처리했다. 아들의 긴 머리를 싫어하면서도 아이가 스스로 자를 때까지 기다려주기도 했다.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인간의 본성이 여실히 드러나기 마련인가 보다. 약자는 더욱 약해지고, 강자는 더욱 강해진다. 스티븐은 강자의 본성을 강화한다. 마틴에게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그의 앞에서 무릎 꿇거나 용서를 빌지 않는다. 대신에 그를 감금하고 협박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그리고, 밥이 곧 죽을 시점에서야 러시안 룰렛을 한다.


가족들 중 한 명을 죽여야 하는 이 끔찍한 상황은 그를 오히려 권력을 가진 존재로 만든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았든 두 아이와 아내 역시 살고 싶어서 그에게 잘 보이려 안간힘을 쓴다.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 해석될 수도 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는 힘의 균형은 커녕 복종 관계의 징후가 농후하다. 애나는 비교적 균등한 위치의 아내로 보였지만 자기 대신 아이 중 한 명을 죽이라고 하거나 러시안 룰렛에서는 그에게 잘 보이려 검은 드레스를 골라 입는 듯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또, 마틴의 발등에 키스를 하기도 한다. 스티븐의 딸인 킴은 엄마에게는 욕을 하고 무시하면서도 아빠에게는 잘 보이려 사탕발림을 늘어놓는다. 마틴의 엄마는 자신의 남편을 죽인 스티븐에게 죄를 묻고 따지는 대신 그의 손을 핥으며 유혹한다.


마틴이 한 복수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는 증거는 영화의 어디에도 없다. 그는 이를 두고 '공평하진 않아도 균형이 맞다.' '정의에 가깝다' 라고 말했다. 정의가 이루어지려면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데 스티븐은 떵떵거리며 행복하게 사는데다, 관용을 베푼답시고 자기를 위해주는 척을 하니 그 꼴이 사나웠나 보다.

그렇다면 마틴이 정의를 실천하고 있으니 그는 정의로운 인물일까. 애나가 말했듯 스티븐의 잘못을 왜 나머지 가족들이 져야 하는가. 마틴의 행태는 수컷 사이 상대를 굴복하려는 으르릉 거림이다. 그는 이를 설명하면서 스티븐의 팔을 물어뜯고, 역시 똑같이 자신의 팔을 물어 뜯는다. 그것이 그가 정한 공평함이라면 다른 수컷에게 무릎 꿇지 않음 역시 수컷에게는 올바른 도리이다. 밥이 마틴에게 굴복하지 않는 것을 이해한 것처럼.

그렇다면, 제물이 된 신성한 사슴은 당연히 가장 어린 수컷인 밥이 되어야 함이 마땅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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