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숲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걷고 있는 당신. 당신 앞에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났다. 두 길 모두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왼쪽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있다.
안 핀 놈은 있어도 한 번만 핀 놈은 없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세상에는 들킨 자와 들키지 않은 자뿐이다.
지 버릇 개 못 준다.
오른쪽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있다.
시간이 약이다.
개과천선.
부부싸움 칼로 물 베기.
신은 감내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준다.
자, 당신이라면 어느 쪽 문구가 적힌 길로 가겠는가. 오로지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우리는 살면서 양쪽의 표지판에 적힌 말들을 한 번 이상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자신이 놓인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우린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믿기도 한다. 양쪽 길에 적힌 문구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나 그 어느 쪽 하나 틀린 말이 없다. 모두 맞는 말이다.
나 또한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난 뒤로는 왼쪽의 길을 가고 있었다. 나를 배신한 남편과 평생을 함께 살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도 나를 잃는 고통을 똑같이 주고 싶었고 평생 후회하며 찌질하게 살기를 바랐다. 나를 버린 그를 이젠 내가 버리고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내고 싶었다. 남편이 죽도록 후회하며 살도록. 한번 깨진 믿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부부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신뢰가 깨진 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그때의 난 ‘시간이 약이다’란 말조차 믿을 수가 없었다. 시간으로도 절대 안 되는 일이 있었다.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고통은 내가 겪은 그 어떤 고통보다 가장 강력했다. 오히려 처음에는 너무 놀라 아픈 줄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고통은 또렷해졌고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그때의 나는 영혼도 육체도 죽어가고 있었다. 치매의 걸린 노인도 자신의 이름은 잊어도 남편의 외도는 잊지 못한다는 말처럼 죽어서도 잊히지 않을 고통 같았다. 그래서 자살 시도까지 하며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적도 있던 나였다. 신은 감내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준다는 데 아무래도 날 과대평가한 것 같았다. 신을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수년이 흐른 지금, 거짓말 같게도 나는 그때의 그 고통을 잊은 채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제는 남편, 아이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선수들을 응원했다. 그 전날에는 둘째가 세 살 정도 되었을 때, 동영상을 보며 모두 웃고 그때를 추억하였다. 그땐 내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한참 힘들어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시절 영상 속엔 힘들어하는 나보다 놀다가 소파에 기대어 선 채 잠이 든 둘째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물론 나는 그때 웃고 있지는 않고 그 소파 옆에 힘들게 기대어 누워있었지만, 지금은 영상을 보면서도 기운 없이 누워있는 나보다는 놀다가 잠든 아이에게 시선이 더 갔다. 사실 아이가 놀다가 서서 잠든 것은 기억하면서도 그때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상을 보고서야 ‘아, 맞다. 내가 매일 저렇게 누워만 있었지’라고 깨달을 정도였다. 내 기억도 그때 있었던 수만 가지 일들 중 예쁘고 감사한 기억들만 남겨두려 애썼다. 그 노력의 결과였다.
처음엔 무척이나 애를 써야만 했다. 내가 믿고 싶지 않은 말들은 듣지 않으려 의도적으로 노력했고 순간적으로라도 그런 마음이 들 때면 “퉤 퉤 퉤”를 외치며 의식적으로 없는 것으로 돌려놓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자연스레 힘들이지 않고도 힘든 기억들은 옅어지고 좋은 기억들이 그 자리를 채워나갔다. 그럴 때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노력을 하는 남편이나 나 자신, 그리고 그 어떠한 순간에도 행복한 미소만 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나는 그와 함께 이 위기를 시련을 극복하기로 마음먹은 다음부터는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은 일체 끊어내려 노력하였다. 과거의 시간에만 머문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때의 고통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앞으로의 내가 행복해질리는 만무하다. 나는 변하지 않은 과거는 끊어내고 최대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려 애썼다. 지금 이 순간 노력하는 남편의 모습을 그대로 봐주었고 ‘죄는 네가 지었으니 네가 다 해’라는 마음도 버렸다. 나도 노력을 했다. 아니, 어쩌면 부정을 저지른 남편보다 그를 용서하려는 내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 사실이 처음엔 불편하고 화도 났지만, 이건 내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일이라 생각하니 나중엔 억울한 마음마저 사라져 버렸다.
‘안 핀 놈은 있어도 한 번만 핀 놈은 없다던데.. 이 남자 또 같은 잘못을 저지르면 어쩌지?’ 하고 의심이 들 때마다 ‘그건 그때의 일이다!’ 하고 미리 겁먹고 걱정하지 않으려 했다. 아무 생각도 없게 하는 데는 몸을 피곤하게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일에 몰두한 덕분에 나는 직장에서 빠른 승진을 하게 되었고 잠시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작은 노력들도 가능하다. 나는 정말 게으르고 운동을 싫어하는데 그런 나에게도 걷는 것은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남편에게 화가 나 소리를 치고 싶을 때도, 잘하는 것 같다가 또다시 연락 없이 늦은 남편의 변명이 거짓말 같게 느껴지는 날에도 무작정 나와 걸었다. 걷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의외로 쉽게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빨리 깨닫게 되었다.
기분이 조금이라도 다운되려고 하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시청한다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클래식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음악이라 생각했는데 노랫말 가사가 없는 곡이 왜 이리도 좋은지 알게 되었다. 그때 수많은 명곡을 알게 되었다. 아니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시집이나 에세이집 같은 책을 읽거나 동네 카페에 가서 향이 좋은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카페에 오는 사람들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작은 일이던 큰 일이던 모든지 했다. 그리고 항상 좋은 생각, 방향, 감정을 유지하려 했다.
시간은 정말 약이었고,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갔다. 나이가 들수록 시계에 가속도가 붙는다더니 그 말이 꼭 맞았다. 그럼 시간은 내 편이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이 옅어지는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큰 소리 뻥뻥 치던 외아들 귀하게 큰 나의 남편은 한동안 쭈글 해 있다가 요새 다시 큰소리치는 장난기 많은 남편으로 돌아왔다. 예전 같으면 ‘저게 어디서!’란 생각부터 들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웃으며 ‘또 시작이네, 그분이 오셨나’ 정도로 웃고 넘기고 만다. 그 넓은 어깨가 축 쳐 저서 죄인같이 사는 남편도 오래보다 보면 꼴 보기 싫다. 다시 어깨를 당당하게 핀 채 거들먹거리는 그를 놀려먹는 게 차라리 나았다.
내가 신이었다면 자신의 형상을 본떠 만든 인간들을 고통 속에 밀어 넣지 않았을 텐데.. 란 생각이 바뀌기가 가장 어려웠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셨을까. 나 정말 착하게 살았는데.. 다른 이에게 눈길 한번 준 적 없이 내 생에 남편은 첫 남자였고, 첫사랑이자 끝 사랑이었을 텐데.. 그런 나에게 왜 이런 일이..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다 용서해도 여자 문제만은 안 된다 호기롭게 외치던 내게 하필이면 이런 일이 생겼고 이혼도 하지 못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이 시련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고통뿐이 없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은 마음 아프지만 생각보다 많다. 배우자의 외도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평생 우울하게 피해자처럼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런 일이 생긴 것도 억울한데 앞으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이 얼마나 분통 터지는 일일까. 배신은 당했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반성하는 배우자를 보며 한 번은 용서해주고 싶은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나도 잘하고 싶지만 그를 보면 자꾸 화가 난다.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같이 이야기하고 ‘맞아. 나도 그랬었어!’하고 공감하면서 사람 사는 거 별반 다르지 않구나. 이런 일을 겪었어도 다시 웃으며 살아낼 수 있구나 하고 작은 위로와 위안을 건네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겪은 시련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생각했다.
실로 나이만 먹고 생각이 어렸던 내가 올바른 부부관계에 대한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주기도 하였으니까. 자신이 어떠한 말을 믿고 길을 선택하든 그 모든 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달렸다. 어느 쪽 길을 간다고 해서 그게 지름길이거나 틀린 길이거나 하지 않는다. 양쪽 길 모두 옳다. 당신이 선택하였으니 당신이 원하는 삶이 열릴 것이다. 왼쪽의 길을 선택했다면 그렇게 믿으면 되는 것이다. 그럼 하루빨리 경제적 독립을 이루어 배우자와 헤어지는 것이 본인에게도 혹은 자녀가 있다면 아이들에게도 이로울 것이다. 그리고 나의 글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나와 같이 오른쪽 길을 선택하였다면 그렇게 믿으면 되는 것이다. 시간은 약이고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믿는 것이다. 배우자가 진실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면 함께 이겨내는 법을 찾아가면 될 것이다. 단번에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용서하기 위한 긴 여정을 함께 노력하며 나아가겠다는 다짐만 하면 된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은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
믿어서 이 꼴이 됐다고 화를 내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 맞다. 하지만 그래도 난 믿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믿으려 노력하는 것이고 믿을 뿐이다. 그러다 다시 바람피우면 어떡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오른쪽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갈림길에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아직도 자신의 마음을 정하지 않은 것이다. 분명하게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선택해라.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말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꾸준하게 걸어라.
왼쪽 길을 선택하든 오른쪽 길을 선택하든 그것은 나 스스로 내린 결정이어야 한다. 그리고 결정한 대로 믿고, 믿으면 그대로 현실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