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오는 것 같다. 감사하고 또 죄송하게도 ‘이젠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느냐’는 독자님의 댓글도 뒤늦게 확인하였다.
사실 난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물론 사랑하는 남편과 두 딸아이도 함께 말이다. 2022년은 가족여행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다녔다. 아이들을 맡기고 단둘이 데이트도 곧잘 하였다. 2023년 새해에도 더욱더 사랑하자며 가족 간 사랑을 다지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난 내 일에 집중하며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내 삶에 중요한 것들이 많아지면서 이곳은 점점 잊혀 갔던 것 같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던 그때도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가장 두렵던 그 시절도 이젠 지나 매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뜬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 생겼다. 내가 그 누구의 무엇이 아닌 나 자신으로 살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매일이 설렌다.
하지만 매번 지금처럼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위기가 있었고 수많은 의심과 불안감 속에 잠들던 시간들이 있었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살은 아물어도 흉터는 남는 법이다. 바쁜 남편이 조금만 연락이 되지 않아도 나쁜 생각부터 떠오른다. 예전 같았으면 연락이 되지 않는 남편이 지금 나를 속이고 어느 호텔 또는 모텔 방 안에서 다른 여자와 뒹구는 상상부터 했다. 상상은 현실이 되어 내 숨통을 조여왔다. 뒤늦게 나의 전화나 메시지를 확인한 남편에게 전화가 오면 난 화부터 냈다. 그가 높은 직급의 상사와 이야기 중이어서 전화를 못 받는 상황이었든, 고객과의 상담으로 전화가 어려웠든, 갑자기 잡힌 회의에 들어가느라 휴대폰을 책상 위에 두고 왔든 그 어떤 이유든 상관없었다. 내 상상 속에서 그는 이미 다른 여자와 외도를 저지른 거니까.
위기는 그뿐만이 아니다. 다른 이유로 남편과 다투게 되는 날이면 모든 것을 그날의 일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었다. 언성 끝엔 늘 ‘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 할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바람피운 주제에..’, ‘네가 나에게 그럴 자격이나 있어? 바람피운 주제에..’ 다툼 끝엔 늘 결론은 남편은 나를 버리고, 나를 배신하고 바람피운 나쁜 사람이었다. 남편은 내가 결국 그 말을 내뱉고 나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언제까지 그럴 거냐며 화를 내는 것도 잠시 잠깐이었다. 몇 년이 흐른 뒤에 그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그냥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럼 나도 속으로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늘 다짐했다. 앞으로 화나는 그 어떠한 순간이 와도 그 말만큼은 하지 말아야지 수없이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남편은 직업 특성상 전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출장이 꾀 잦다. 그럴 때면 매번 의심의 꼬리가 나를 따라다닌다. 출장 간다고 해 놓고 다른 여자와 놀러 간 것은 아닌지, 지방으로 출장 간다고 해놓곤 사실 다른 여자랑 살림을 차린 건 아닌지 하는 못된 생각 말이다. 상상은 곧 현실이 된다. 그가 정말 그러했던 그러지 않았던 상관이 없어진다. 그가 그렇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내 기분이 그가 외도를 저지른 그 순간처럼 나빠지고 더럽혀진다. 그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나쁜 기운으로부터 날 구해내야 한다. 남편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방법은 없다.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할 뿐이다. 남편이 갑작스레 연락이 닿지 않으면 ‘전화받지 못할 상황에 있는가 보다’하고 무던히 넘기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 또한 바쁘게 일하다 보면 남편의 전화나 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말이다. 나쁜 생각이 들면 그때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 정말 엉뚱한 생각을 떠올린다거나 몸을 바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남편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집중하기보다는 갑자기 청소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 틀어놓곤 크게 따라 부른다거나 한다. 처음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습관이란 게 무섭듯 계속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쁜 생각은 멀리하고 꾀나 괜찮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애써 잊고 있었던 남편이 전화를 해서 연락을 받지 못한 일에 대한 사정을 설명한다. 그것도 지나다 보면 사정 설명 없이도 그냥 넘어가게 되는 날들도 꽤 있다.
남편과 다툼이 있는 날이면 그 다툼의 원인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와 나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같은 상황에서 왜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린 건지 말이다. 예전에 그가 이랬으니까, 나에게 그 어떠한 싫은 소리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다. 끝난 일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자. 그 일은 서로 덮어두고 넘어가기로 했는데, 남편이 화가 날 때마다, 둘이서 싸울 때마다 그날의 일을, 나의 잘못을 계속 꺼내어 이야기한다면 나는 참을 수 없을 거다. 결국 그런 싸움이 반복되다 보면 서로에게 생채기만 낼뿐 부부 관계에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럴 거면 차라리 이혼하자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나는 남편과 다시 잘 지내보기로 선택을 했다. 선택만 하면 끝이 아니라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 나의 선택이 올바른 선택일 수 있도록. 내가 하지 않은 선택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말이다. 부부가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위기가 여러 번 온다. 부부만의 일이든, 양가 부모님과 관련된 일이든, 자식에 대한 일이든, 경제적인 거든 무엇이든 말이다. 나는 남편의 외도 이후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은 다 다르다는 것.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절대 모두가 나와 같을 수 없으며, 나의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온전한 나의 소유는 바로 나 자신뿐이란 걸. 남편과 자식들이 나의 소유물이 아니기에 나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지만, 노력 없이 되는 것은 없다. 위기를 잘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또 노력하다 보면 위기가 위기가 아닌 순간이 온다. 같은 상황도 예전보다 덜 불안하고 화도 덜 나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그럴 수도 있지란 이해가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