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생존에 대하여

by 파선

존재의 동일성을 묻는 일은 결국 또 다른 차원으로 이어진다.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우리는 그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그 지점에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인간의 폭력성이다.

나는 가끔 사람들이 왜 불편함을 조금도 감수하지 않으려 하는지 의문이 든다.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면 당연히 기꺼이 감수해야 할 작은 불편마저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편의를 앞세워 외면한다. 그런데 그 ‘편의’라는 것이 과연 진짜 편의인지조차 모르겠다. 그것은 목적도, 의미도 없는 단순한 고집일 뿐인데, 왜 거기에 집착하는 걸까.

예전에 병원에서 피를 뽑고 난 뒤 어지러워 비틀거리며 의자에 앉으려 했던 적이 있다. 다리가 멀쩡한 사람들이 줄줄이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일어나거나 도와주지 않았다. 나는 복도 끝으로 가서 물을 마시려다 결국 쓰러져 실신했다. 사람이 눈앞에서 쓰러지려 하는데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려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단지 자기 기분을 지키거나, 사소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그 삶은 과연 의미 있는 걸까. 삶의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종종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이 단순히 죽지 않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가를 고민하곤 한다. 고통스럽지 않게 하루를 살아내는 것, 배고프면 음식을 먹고 생명을 이어가는 것. 이것이 전부일까. 아니면 그 속에서 더 큰 의미를 만들어가야 하는 걸까.

게다가 살아 있다는 것은 곧 다른 생명을 취해야만 한다는 사실과도 연결된다. 생존이 불가피한 폭력을 전제로 한다면, 단순히 생명을 이어간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조건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 불가피성을 어떻게 감당하고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느냐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라 느낀다.

그리고 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다는 건 결국 다른 생명을 취하는 행위와 연결된다. 단순히 배가 고프거나 아프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먹는 일조차 수동적인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른 생명을 끝내는 일에 가깝다. 그렇기에 인간은 근본적으로 폭력적이다. 나는 가끔 인간이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어졌다.


이 사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채식이나 그보다 더한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은 존중할 만한 실천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그런 방식을 끝까지 유지할 수 없었다. 식물 역시 생명이고 그것을 취하는 순간 또 다른 생명을 끝내는 자리에 서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섭취를 거부할 수도 없다. 결국 나는 살아 있는 한 다른 생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끝내 스스로를 폭력적인 존재로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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