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야간산행 세트 메뉴

처음 오른 산에서 내려오다 중턱에서 해가 떨어졌다

by 단빛

초행길이었지만 정상에 이르기까지는 일사천리였다. 새 등산화는 발에 딱 맞는 데다, 접지력도 아주 좋았다. 때마침 불어온 가을바람은 미세먼지도 싹 쓸어가서 공기 또한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10월의 어느 멋진 날, 나는 안양 비산동에서부터 관악산 정상에 올라 파아란 하늘에 기댄 표지석 앞에서 사진도 찍고 63빌딩과 서울타워까지 보이는 조망을 마음껏 즐긴 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산은 집 앞인 안양 예술공원 쪽으로 내려와 보려 계획해 놓았던 터였다.


올라올 때는 지나쳤던 연주암 사찰도 빙 둘러보고, 길이 헷갈려 같은 길을 두세 번 왕복하며, 뜻하지 않은 곳에 국기봉이 보여 노을에 비친 셀카도 하나 더 찍다 보니, 응? 노을? 어라? 어느새 해가 땅속으로 거미처럼 스멀스멀 기어들고 있는 게 아닌가. 그제야 주위를 빙 둘러본 나는 첩첩산중에 홀로 갇혀 있음을 깨닫게 됐다. 아! 여느 때처럼 반바지 차림에 배낭엔 달랑 물병 세 개만 넣고 왔는데….


발걸음이 빨라졌다.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며 등산로를 따라가다 마음이 급했던지 길마저 잃었다. 길이든 아니든 더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두껍게 쌓인 낙엽에 발이 푹푹 빠졌다. 촘촘히 박힌 나무들을 양손으로 헤치며 나아갔다. 나뭇가지들이 정강이를 할퀴고 눈을 찔러도, 쌓인 낙엽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어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얼마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만, 익숙한 길이었고 아스팔트를 밟을 때까지 약간의 빛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태어나서 처음 내려오는 관악산 자락 이름 모를 계곡, 길까지 잃은 데다 암흑으로 덮이기 직전.


그렇게 바삐 내려오는데도 땀이 나기는커녕 찬바람은 젖었던 반바지와 셔츠를 말리며 온몸에는 한기가 돌기 시작했다. 분명 산 중턱에 있는데도, 그곳에선 저 멀리 도심의 불빛마저 보이지 않았다. 코앞이 낭떠러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을 애써 외면하며 나는 발을 푹푹 빠뜨리며 미끄러지듯 계속 내려오고 있었다. 이윽고 내가 서 있는 세상은 칠흑 담요로 완전히 덮였다. 서서히 닫히던 관 뚜껑이 마침내 실낱같이 스며드는 빛줄기마저 싹둑 끊어 버리며 철커덕 잠기는 느낌.


바로 그 순간!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암흑 가운데, 등 뒤에서부터 부드러운 빛이 내 앞으로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솜털처럼 따사로운 빛 알갱이들이 내 주위에 봄볕 보슬비처럼 잔잔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달빛이었다. 아! 지금껏 그토록 포근하고 사랑이 넘치는 달을 본 적이 없다. 해님이 화려하게 지휘하던 총천연색 무대의 막이 닫히자 달님의 차분하고 따스한 흑백 무대의 막이 열렸다.


돌아보면 운도 좋았다. 마침 보름을 앞둔 토실토실한 달이었던 데다 등장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달이 언제나 지는 해를 바로 뒤따라오지는 않으니. 제아무리 완벽한 보름달에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해도 구름이 가렸다면 아무 소용없었을 텐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까지.


등산로는 아직 못 찾았으나, 계곡 물길에 이른 듯했다. 널따랗게 움푹 파인 곳에 바위들만이 즐비했다. 오랜 가뭄에 물줄기가 없는 것도 내겐 고마운 일이었다. 바위들을 조심스레 디디며 계속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바위로만 된 너른 평지가 나왔다. 비가 왔다면 이곳에 물이 흘러서 이 물길을 따라 걸을 수도 없었겠지. 졸였던 마음이 다소 풀어진 터라, 그 한가운데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제야 아까 정신없이 내려오며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발바닥에 박힌 모래알을 뺄 여유가 생겼다.


서울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온 내 삶에, 인공(人工)이 완전히 배제된 곳에 잠시라도 놓였던 적이 과연 있었을까? 그 흔한 교회 십자가는커녕 전등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자동차 엔진 소리나 컴퓨터 팬 소음조차 없는, 심지어 같은 종족인 인간의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그런 곳에 홀로 동떨어져 있던 적이 있었을까? 그 순간, 그 장소만큼은 수 천 년 전의 산골이라 해도 믿을 만큼 나는 온전한 ‘자연(自然)’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적막과 고립, 암흑 가운데 포근히 나를 감싸는 달빛. 내 평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가장 이질적인 경험이 어찌 이리도 익숙하고 더 나아가 계속 그 자리에 머물고 싶다는 느낌으로 다가올까. 비좁은 창살 안에서 매일 아침 달걀이라는 부가가치를 생산해야만 하는 닭이 깊은 산속으로 탈출에 성공했다면 과연 이런 느낌일까.


하지만 순수한 대자연의 품에서 서늘함을 잊을 만큼의 포근함을 만끽하던 이 닭은, 등산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다시금 매연에 찌든 닭장에 스스로 처박히기 위해 일어났다. 나뭇가지 사이로 듬성듬성 새어 흐르는 달빛의 도움을 받아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드디어 저 앞에 푸른빛 가로등에 비친 아스팔트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대 관악수목원 후문이었다. 드디어 아스팔트 길로 걸어 내려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어떻게든 담을 넘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일요일 밤 관리자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옆에 세워진 안내문에는 “우회로로 하산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씌어 있었고 우회로 방향을 화살표로 가리켰다. 만일 내가 그 간단한 “우회로”라는 것이, 산을 한 번 더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 수목원 관리자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더라도 반드시 그 담을 넘었을 게다.


물만 먹고 산행한 지 네 시간이 넘었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그놈의 “우회로”로 가기 위해 다시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나무가 많아 달빛도 가려져 핸드폰 플래시를 초롱 삼아 풀린 다리를 애써 들어 한 발 앞으로 터억 터억 내디뎠다. 수목원에 사는 듯한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온전한 자연의 적막을 경험하고 온 직후라도, 이 닭은 인공(人工)의 소리가 그리울지언정 견공(犬公)의 소리는 유독 거슬렸다. 그렇게 마지막 언덕도 넘어, 드디어 그립던 닭장 행 아스팔트 길을 밟았던 때는 밤 여덟 시였다.


산행에 맛 들이며, 언젠간 야간산행도 해 보리라 생각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무섭지는 않을까? 위험하지는 않을까? 하며 헤드램프부터 준비해 보자며 미뤘었는데, 그날 관악산 산행을 하며 삶의 우연 혹은 내 생래적인 무모함은 내게 뜻밖의 야간산행 세트 메뉴까지 선사했다. 어쨌든 무사히 내려왔으니 종국엔 잘된 일이고, 내겐 잊지 못할 특별한 추억이 됐다.


2015-12-07 씀

2022-09-01 분량에 맞춰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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