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운동과 담 쌓았던 중년남의 웨이트 트레이닝 1년 후기
“아니, 아랫것들 시키시지 왜 영감이 직접 뛰어다니시오?”
조선 시대, 테니스 시범을 보였던 미국 영사에게 어느 양반께서 하셨던 질문을 가슴에 품고 평생 운동과 담쌓고 살았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던 아이는 소풍과 체육 시간을 싫어했고 운동회는 형벌이었다. 특히 필수 코스인 달리기는, 마려운 오줌을 꾹 참고 죽어라 달려도 신기하게 열 명 중 15등을 차지했다. 다음 팀에 섞여 숨넘어갈 듯 헐떡이며.
“아니 불(不), 땀 한(汗).” 영화 “넘버 3”의 대사처럼, 나는 좀처럼 땀 흘리기 싫어하는 불한당(不汗黨)이었다. 3대 운동, 즉 숟가락 운동, 숨쉬기 운동, 그리고 걸을 수만 있다면 그 이상 운동해야 할 이유를 못 찾았고, 차라리 그 시간에 글 한 줄 읽고 쓰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믿었다. 자라면서 키도 훤칠하고 완전 멸치 체격은 아니었던 것이 오히려 운동할 동기부여를 앗아갔다. (타고난 예쁨과 잘남은, 나태와 오만의 자양분이 되기 쉽다.)
그렇게 마흔 중반도 넘어서야 운동을 제대로 배우기로 했다. 큰맘 먹고 동네 체육관에 개인 교습(PT)을 신청했다. 얌전히 잘 있던 애먼 쇳덩이를 부여잡고 코치 앞에서 들었다 놨다 무의미해 보이는 에너지 낭비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쓰면서 말이다. “내 땀 내 힘” 즉, 내 땀을 흘리고 내 힘을 쓰는 이 ‘삽질’을 “아랫것들”이 아닌, 내 손발로 하기 시작하며 세상이 달라졌다. 왜? 내가 달라졌으니까.
길 가는 사람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삐쩍 마른 ‘멸치’와 뚱뚱한 ‘돼지’로만 보였는데, 멸치들 중에도 ‘근멸(근육 멸치)’, 돼지들 중에도 ‘근돼(근육 돼지)’를 구별할 줄 알게 됐고 그들을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직원 채용 면접할 때도 이전엔 없었던 “어떤 운동을 하시는지?”가 주요 질문에 포함됐다.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달라진 건 안구만이 아니었다. 평생 거기 있던 줄도 몰랐던 근육들이 내게 인사를 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를 때 무릎이 아픈 건, 무릎 관절 문제가 아니었다. 그 뼈를 잡은 근육이 약해서였다. 예전엔 계단을 오르면 허벅지만 힘들었는데, 어느샌가 엉덩이가 튀어나와 돕기 시작했다. 엉덩이 바로 위에 있는 척추 기립근도 허리뼈를 S자 모양으로 잡아주며 전체적인 무게중심을 잡아 허벅지의 부하를 줄여줬다. 평생 놀기만 숨기만 했던 근육들이 정신 차리고 너도나도 도와주니 무릎 연골이 갈릴 이유가 없었다. 허벅지뿐 아니라 엉덩이와 종아리에 스프링을 장착한 듯, 산에 오를 때도, 달릴 때도 뒤에서 밀어주는 지원군이 생겨 버렸다.
왜 섹시 남녀는 가슴과 엉덩이가 튀어나와 있는지도 알게 됐다. 엉덩이 근육이 깨어나자, 평생 의자에 앉아 완전 납작했던 엉덩이가 볼록해지기 시작했고, 등과 어깨 근육이 살아나자 팽팽하게 당겨주며 자연스레 가슴이 펴졌다. 평생 느슨하게 늙어가던 근육들을 깨워 일을 시키니, 그동안 허물어져 가던 뼈의 구조마저 제대로 잡아주기 시작하더란 말이다. 흑백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키며, 등줄기가 아픈 건 거북목, 목디스크, 척추관 협착증 때문이고, 이건 퇴행성이니 달리 치료방법이 없다던 정형외과 의사의 진단은 절반만 맞았다. 그것은 단지 ‘골격’의 관점이었고, 우리는 ‘근육’이 있다는 것을 그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 다소 어긋난 뼈들을 잡아주는 ‘근육’을 강화해 뼈 위치를 바로잡아주는 ‘근력 강화’가 훌륭한 대안일 수 있다는 것.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꼭두각시고, 근육이 꼭두각시를 움직이는 ‘실’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근육 없이 뼈만으로는 어떤 움직임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을 느슨하게 풀면 구부정한 자세가, 바짝 당기면 빳빳한 자세가 되듯이, 탄력 있고 강한 근육이 골격의 자세를 바로잡아준다는 것. 더불어 충분한 근력은 곧 완전히 충전된 배터리라는 것. 예전엔 귀찮았던 일들이 어느새 할만한 일들이 되더라는 것. 힘들다고 느꼈던 것들이 어느새 점차 별것 아니라고 느껴지더라는 것. 수도꼭지만 돌렸을 뿐인데 세찬 물줄기가 쏟아지는 것처럼, 내 몸을 살짝 쥐어짰을 뿐인데 내 안에 이처럼 넘치는 에너지가 저수지처럼 고여있다가 분출하더라는 것을.
그렇게 운동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아직 내 배에는 빨래판 복근도 없고, 가슴도 소위 ‘갑빠’ 보다는 ‘유방’에 가까우며, 어느 한 곳 내세울 만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 3대 운동은 이제 “숨쉬기 운동” 등이 아닌 “스쿼트,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며, 아직은 3대 300kg도 들지 못하는 헬린이(헬스 어린이)지만, 어제보다 한 번만이라도 더 들어 올리려 이를 악문다. 이 나이에 대단한 근육남을 꿈꾸지는 않는다. 다만, 더 늦기 전에 잠자던 ‘근육’들을 깨워 그 녀석들이 서로 도와 조금 더 활기찬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습관을 지니게 됐다는 것만으로 내겐 소중한 1년이었다.
경험자로서 한 마디만 더. 반드시 최소 3개월 이상은 전문가에게 배우시라. 운동기구들이 별것 아닌 것 같고 유튜브 영상 보면서 얼마든지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미세한 위치 또는 각도 차이로 인해 운동이 될 수도, 다칠 수도 있는 데다, 각자 체형이 다르기에 자신에게 맞는 자세가 따로 있으며, 부정확한 자세로는 가슴 운동이 등 운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안전하게 좀 더 강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는 근력운동에 도전하는 분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2025-01-06 쇠질을 하다 예상치 않게 이렇게 되었다. https://brunch.co.kr/@31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