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보일러를 틀기 시작하는 늦가을, 급히 구했던 단독주택 열 평짜리 월세방은 기대 이상이었다. 어느 유명 아파트보다도 단열이 좋아 포근했고 싱크대, 찬장, 신발장과 천장 조명마저 새로 한 것처럼 깔끔했다. 찬물 더운물 수압도 힘찼고 4층에 사시는 집주인 내외분도 좋으셨으며 층간소음도 거의 없었다. 여덟 계단만 오르면 되는 1.5층이라는 층높이는 당시 골초였던 내겐 석방 소식이었다. 더는 엘리베이터로 18층을 오르내리며 내 집 층수를 뇌까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 만족감에는 더는 아내가 없다는, 돌아온 싱글의 해방감도 한몫했을 게다.
같은 층엔 한 집이 더 있었다. 마치 ㄱ자의 모서리에 현관문이 바짝 모여있는 구조라서, 동시에 현관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면 입맞춤도 가능할 듯이 가까웠다. 하지만 그런 꿈조차 꾸지 않았던 것은, 내 큐피드 신이 지금껏 자애롭지 않았다는 경험치와 더불어, 이 집을 계약할 때 주인 어르신께서 하셨던 말씀 때문이었다. “옆집엔 수학학원 선생님이 살아요. 처자식도 있다는데, 학원하고 너무 멀다던가… 여기서 혼자 산다고….”
처음엔 몰랐다. 잘 자던 내가 왜 깼는지. 지진이 났나? 뭐가 터졌나? 얼마 후에야 알게 됐다. 약 1초 간격으로 두 번에서 네 번까지 반복되는 이 충격파는 마치 토르 신이 망치로 건물 전체를 “꽝!”하고 때리는 듯한 소리와 집안이 흔들리는 울림까지 더했다. 밤낮없이 말이다. 어디서 나는 걸까? 반지하 두 집 중 하나? 내 옆집? 아니면 윗집? 뭐가 불만일까? 혹시 4층 건물주님이 호기로운 토르 신이라서 모두 숨죽이고 있는 걸까? 이 굉음과 진동을 여기 세입자들은 어떻게 매일 잠자코 겪어왔을까? 깨어있을 때면 그 소리가 들린 직후 얼른 나가보곤 했지만, 반지하부터 위층까지 올라가 봐도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한동안 주말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달리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깊은 밤, 설거지 중 바로 그 천둥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현관문 옆 손바닥만 한 창밖으로 토르 신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는 바로 옆 현관문을 세게 쾅! 닫았다가 열고 다시 쾅! 닫기를 반복한 후에 닫았다. 나는 바로 나가서 옆집 문을 쾅쾅 두드렸다. 끼고 나갈 타노스 장갑은 없었지만, 마음만큼은 이미 분노한 타노스 신이었다.
잠시 후 빼꼼히 열린 문 사이로, 십 년은 연상으로 보이는 토르 신이 차마 문고리를 놓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었고 현관 바닥에는 빈 맥주캔 서너 개가 찌그러져 뒹굴고 있었다. 나는 새벽 두 시에 이렇게 세게 문을 닫으면 어떻게 하냐며 항의했다. 억울해하는 듯한 목소리로 돌아온 그의 대답은 내 예상 밖이었다. “여기 들어온 지 삼 년 됐는데, 처음부터 문이 고장나 있었어요. 문이 한 번에 닫히지를 않는다구요. 집주인은 고칠 생각도 안 하고.”
문을 찬찬히 둘러봤다. 경첩부터 해서 여기저기 살펴봐도 닳았거나 고장난 곳 없는 새것 같은 방화문이었다. “잠깐만요.” 나는 집에 있던 윤활유를 갖고 나와 ‘래치’(문이 닫히면서 쏙 들어갔다 나오는 엄지만 한 부속)와 그 입구에 살짝 뿌리고 휴지 한 칸을 뜯어 펴 발랐다. 그러자 문이 거짓말처럼 부드럽게 닫히는 게 아닌가! 토르 신의 복잡한 표정을 흘낏 보고는 집으로 들어왔고, 창문 너머 소리가 들렸다. 그 문이 여러 번 열리고 닫히는. 아주 매끄럽게. 조용히. 딸깍.
그의 지난날을 그려봤다. 무슨 사연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몰라도, 이삿날부터 문이 원활하게 안 닫히는 걸 보고 ‘고장났네’라고 확신했을 게다. 문을 훑어볼 마음도, 집주인께 고쳐달라는 말도, 수리공을 부를 여유도 없었던 그는 드나들 때마다 왠지 모를 본인의 불만과 원망을 주변에 이런 방식으로 알려왔을 게다. 무려 3년이 넘도록 말이다. 적잖은 세월 그 수학 선생의 민폐 또는 아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피해 또는 감내를 일소하는 열쇠는 뜻밖에 간단했다. 기름 몇 방울, 그리고 휴지 한 칸.
내 지난날도 돌이켜 봤다. 나도 지금껏 살아오며 이처럼 ‘그릇된 확신’을 견지한 적이 있지 않았을까? 오랜 세월 오판과 오해 가운데 점점 확증편향으로 치달은 적은 없었을까?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주변의 아픔 따위는 돌아볼 겨를도 없이, 당장 내가 아프고 불편하다며 소리 높이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원인은 내 ‘착각’이었고, 열쇠는 의외의 곳에 숨겨졌던 건 아닐까? 과연 이런 ‘성찰’이란 게 나 스스로 가능하기나 한 걸까?
뜬금없지만, 전처에게 보내고픈 한 마디가 떠올랐다.
‘미안했어, 고마웠고. 더 행복하시길…. 참! 나 담배 끊었다.’
뜻밖에, 이 글의 속편을 쓰게 됐다. (2023-03-19)
"내로남불 끝판왕" https://brunch.co.kr/@31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