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의 여정을 마친 그 순간,
그분의 손길을 따라 산 하나를 넘어
무사히 내려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난, 나도 모르게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가 되어 있었다.
어릴 적 내 사진 중 떠오르는 한 컷. 노란 반바지, 노란 멜빵, 노란 모자를 쓰고 풀밭에 다리를 앞으로 뻗고 앉아 부끄러운 듯 사진기를 바라보는 한 남자아이. 다리 위엔 스케치북이 놓여 있었고, 양손은 황급히 그것을 가리는 중이었다. 단체 소풍 중 그림 시간, 엄마가 들이민 사진기를 보며 노란 크레파스로 그렸던 밑그림을 손으로 가리며 부끄러워했던 녀석.
그토록 그림에 대한 열등감은 아주 뿌리 깊었다. 직선도 제대로 못 그린다는 생각에 교과서 밑줄 하나도 자를 대고 그렸고, 그게 다시 선 하나 못 그리는 원인이 되었다. 그렇게 그림과는 일찍이 헤어졌고 그만큼 문자에 더욱 집착했다. 문자는 그림보다 더 명료할 수도, 더 모호할 수도 있었고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쏟아진 글꼴들은 나의 졸필마저 세련되게 가릴 수 있었다. 달리는 버스 창밖에 지나가는 풍경보다는 간판이나 현수막의 오타가 먼저 눈에 띈 것은, 그림을 외면하는 만큼 문자에 대한 집착이라는 보상심리에 기인했을지 모른다.
거울 속 눈 밑 주름살이 성가실 즈음에서야 깨달았다. 알타미라 동굴 벽에는 글자가 아닌 그림이 있다는 것을. 그림은 인종과 국적과 관계없이 누구나 순간에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언어라는 것을. 실로 몇십 년 만에 연필을 깎아보고 싶어 찾아본 유튜브 영상이 참으로 섬세하여 눈여겨보니, 그분의 그림 온라인 강좌가 있었다.
연필 잡는 방법부터 가르치는 30강을 60일 안에 완주하면 되는 입문반을 시작했다. 첫째 날은 세로 직선, 둘째 날은 가로 직선, 셋째 날부터는 사선, 그다음엔 곡선, 원, 타원… 연필 깎을 때 코에 스미는 나무 향, HB와 6B 연필심으로 종이 위에서 스케이트 탈 때의 느낌, 동시에 새끼손가락이나 손날이 종이와 마찰하는 질감. 연필을 쥔 엄지와 검지 손톱이 하얘지고 붉어지며 달라지는 필압筆壓과 선의 농담濃淡. 연필 쥔 손과 손목을 기계처럼 고정하고 어깨 관절만을 굴리면 그려지는 원과 타원. 이 모든 관절과 근육을 움직이기 이전에 가다듬어야 할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 영상 속 예쁜 선생님의 손을 따라 함께 그리며 하루하루 그리 버겁지 않게 이 연필이 자라났을 어느 숲속 초록빛 내음을 맡으며 산을 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깜짝 놀랐다. A4용지 3장의 과제 중 겨우 첫 장을 완성했는데 온몸은 경직돼 있고 땀마저 흘리며 무려 한 시간이 흘렀던 것. 보통 2~30분이면 끝났던 하루치 과제를 며칠간 이어서야 완성하고 나니, 문득 하기 싫어지기도 했고, 그렇게 애써 그린 결과물이 너무 실망스러워 좌절감마저 느꼈다. 나중에야 그 순간이 바로 산의 가파른 정상이었음을 알게 됐지만, 당시엔 “안녕~!” 하며 경쾌하게 흔드는 선생님의 손마저 야속해 보이기까지 했다. 속상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가 보자며 진도를 이어 나갔다. “Done is better than perfect.” 완벽보다는 완성이 더 낫다지 않는가.
기우였다. 그 고비만 넘기니, 갑자기 쉬워졌다. 어느새 하산길이었던 것. 그렇게 얼마간 선생님 뒤를 따라가다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내 눈앞 종이에 너무나 아름다운 아담과 이브가 창조된 것이었다. 평생 사람을 그리라면 “졸라맨” 밖에 못 그렸던 내 손이 처음으로 실로 사람다운 아담과 이브를 지면 위에 창조해 낸 것이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지난 60일은 내게 천지창조를 할 수 있는 창조주가 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첫날 수직선으로 비를 내렸고, 둘째 날 수평선으로 땅과 바다를 나눴으며, 원을 그리면서 해와 달과 별을… 어느새 나도 모르게 마지막 날 사람까지 창조할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그 작품은 창조주가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또 하나의 놀라운 경험.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산 나뭇잎들의 몽글몽글한 빛과 그림자가, 고층 아파트 창문의 불빛과 창틀의 그림자가 눈에 띄었다. 바라보는 내 눈은 어느새 그 윤곽선을 따라 그리고, 명부明部와 암부暗部를 나누기 시작했다. 분명 이전에도 봤던 산이고 아파트였지만,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빛 알갱이들이 태초부터 있었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본 세상은 더더욱 아름다웠다!
고화질 카메라를 손마다 쥔 이 시대에 손가락 까딱해서 사진을 찍으면 되지, 무슨 그림이냐는 생각을 나 또한 해 왔다. 하지만, 그 사진은 내 것, 내 세상이 아니었다. 텅 빈 백지 위에, 내가 보고 상상하는 무언가를 빚어가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즐거운 “창조 행위”인지를, 백내장으로 점점 더 흐려지는 눈으로도, 보이는 그대로 흐리멍덩한 그림을 그렸다던 화가 클로드 모네의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을지 이제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내 손을 이끌어 ‘창조자의 산’을 넘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선생님은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받으신 수강료의 절반을 장학금으로 다시 내게 돌려주셨다. 내겐 휴식과도 같은 시간이었고, 언젠가는 강사님의 색채 강의도 수강할 생각이다. 이처럼 나만의 진솔하고 유려한 글에 앞으로 나만의 아름다운 그림이 더해질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설렌다.
2024-11-08
관심 있는 이는 여기를 방문해 보시라. #휴쌤과그려요 https://drawwithhue.com
휴쌤 의 연필 깎는 방법 동영상 https://youtu.be/9DRmRB94vLM?si=LFaQE0tDwUqnE6D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