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끝자락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순간
부산에 있는 본가에 내려가면 할머니가 꼭 부탁하는 게 있다. 조심스레 자신의 방으로 손짓하는 할머니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서랍에서 꺼낸 펜과 메모장을 들고 서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건네는 한 마디.
“이것 좀 써도(줘).”
글을 쓰는 게 서툰 할머니는 은행이나 병원에 갔을 때 간호사나 은행원들에게 보여줄 이름과 주소 그리고 전화번호를 호주머니에 항상 넣어두고 다닌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역정을 낸다.
“올 때마다 써달라고 하노! 또 잃어버렸나?”
투덜거리던 나는 마지못해 할머니의 이름 넉자를 큼지막하게 써내려 간다.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 넉 자를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당신이 그간 살아온 억척스러운 삶, 자식들을 위해 뼈 빠지게 희생한 삶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되려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그 자랑스러움 뒤편. 분명 당신이 배우지 못해, 쓰지 못해 서글픈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을 테다.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을 보며 펜과 종이를 들고 내 앞에 작아져있는 할머니 생각이 너무 많이 났다.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손주 앞에서 쩔쩔매던 영란 할머니. 푸쉬킨의 시를 외우며 세상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더 나은 세상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던 인순 할머니. 한평생 가수의 꿈을 안고 살아가다 도전 팔복리 가수왕 지원서를 스스로 쓰게 된 춘심 할머니. 여자라는 이유로 분한 삶을 살아 자신의 이름이 부끄러웠지만 글을 배우고 스스로의 이름이 자랑스러워진 분한 할머니. 마지막으로 반짝거리던 꿈을 흐르는 시간에 흘려보낸 세상의 수많은 가시나들.
할머니는 나에게 ‘이것 좀 써도’라고 말할 때 무슨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이제는 그 말을 하는 것 마저 너무 당연해져 무뎌져 버린 걸까?
그렇다면 할머니는 써달라는 말을 언제 처음 꺼냈을까? 누구에게 처음 꺼냈을까?
혹은 그 말을 하기 전까지 터져 나오는 부끄러움을 꾹꾹 눌러 담기 위해 참아냈던 순간이 있었을까?
할머니도 뭔가를 배우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을까?
눈앞에 닥친 삶의 더미를 뼈 빠지게 치우느라 그런 욕망이 자신의 헛된 욕심이라 생각하며 함께 치워버리진 않았을까? 그 마음들이 점점 무뎌져 사는 대로 살아가다 죽음을 기다리게 되는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삶의 끝자락,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속 할머니들은 이제껏 살아온 삶의 방식을 뒤로한 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한다. 그리고 지금이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고 노래한다. 공연을 보면서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글쓰기가, 글로 자신의 기억을 간직하는 일이 이토록 아름다운 일일 수 있는지, 펜을 잡고 소리 내서 글을 읽는 즐거움이 생의 빛깔을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지 되새기게 된다.
우리 할머니는 가끔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것은 글로 써내려 가지 못한 당신의 마음이자 한 편의 아름다운 시였겠지.
다음에 본가에 내려갔을 때 할머니가 "이것 좀 써도"라고 말하면
"써줄 테니까 우리 같이 시도 한 편 써보자." 해야지.
황조교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hwangjogyo_mus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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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예매하기┃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4017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