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폴리스 안의 또 다른 신전, 에렉테이온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면 대부분의 시선은 먼저 파르테논으로 향한다. 거대한 도리아식 기둥과 장엄한 규모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옆에는 조금 더 조용하고, 조금 더 복잡한 형태의 신전이 하나 서 있다. 바로 에렉테이온(Erechtheion)이다.
이 신전은 파르테논처럼 단순한 직사각형 구조가 아니다. 건물은 여러 방향으로 꺾이며 비대칭적인 모습을 보인다. 처음 보면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여러 건물이 이어 붙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복잡한 구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곳은 단 하나의 신을 위한 신전이 아니라 여러 신화와 기억이 겹쳐진 장소였기 때문이다.
에렉테이온은 아테나, 포세이돈, 그리고 전설적인 왕 에렉테우스를 함께 기리는 신전이었다. 하나의 건물 안에 서로 다른 신화와 성소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테네의 이름이 탄생한 장소도 바로 이곳이다.
신화에 따르면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이 도시의 수호권을 두고 경쟁했다. 포세이돈은 삼지창으로 바위를 내리쳐 바닷물을 솟게 했고, 아테나는 올리브 나무를 선물했다. 시민들은 올리브를 선택했고 도시는 아테나의 이름을 따르게 되었다.
그 전설의 흔적이 바로 이 신전 주변에 남아 있다. 바위 위에 남은 삼지창의 자국, 그리고 신성한 올리브나무의 자리. 에렉테이온은 단순히 신을 모신 건물이 아니라 신화가 실제 공간 속에 새겨진 장소였다.
그래서 이 신전의 구조는 다른 그리스 신전처럼 완벽한 대칭을 따르지 않는다. 신화적 장소를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건축은 오히려 그 지형과 흔적에 맞추어 굴곡지게 설계되었다. 건축이 신화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신화가 건축의 형태를 결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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