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건축 (신전편)-6화

아크로폴리스 안의 또 다른 신전, 에렉테이온

by 향지소피아

1. 파르테논 옆에 서 있는 신전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면 대부분의 시선은 먼저 파르테논으로 향한다. 거대한 도리아식 기둥과 장엄한 규모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옆에는 조금 더 조용하고, 조금 더 복잡한 형태의 신전이 하나 서 있다. 바로 에렉테이온(Erechtheion)이다.


이 신전은 파르테논처럼 단순한 직사각형 구조가 아니다. 건물은 여러 방향으로 꺾이며 비대칭적인 모습을 보인다. 처음 보면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여러 건물이 이어 붙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복잡한 구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곳은 단 하나의 신을 위한 신전이 아니라 여러 신화와 기억이 겹쳐진 장소였기 때문이다.


에렉테이온은 아테나, 포세이돈, 그리고 전설적인 왕 에렉테우스를 함께 기리는 신전이었다. 하나의 건물 안에 서로 다른 신화와 성소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2. 신화가 남아 있는 자리


아테네의 이름이 탄생한 장소도 바로 이곳이다.


신화에 따르면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이 도시의 수호권을 두고 경쟁했다. 포세이돈은 삼지창으로 바위를 내리쳐 바닷물을 솟게 했고, 아테나는 올리브 나무를 선물했다. 시민들은 올리브를 선택했고 도시는 아테나의 이름을 따르게 되었다.


그 전설의 흔적이 바로 이 신전 주변에 남아 있다. 바위 위에 남은 삼지창의 자국, 그리고 신성한 올리브나무의 자리. 에렉테이온은 단순히 신을 모신 건물이 아니라 신화가 실제 공간 속에 새겨진 장소였다.


그래서 이 신전의 구조는 다른 그리스 신전처럼 완벽한 대칭을 따르지 않는다. 신화적 장소를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건축은 오히려 그 지형과 흔적에 맞추어 굴곡지게 설계되었다. 건축이 신화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신화가 건축의 형태를 결정한 셈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향지소피아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철학박사과정에서 미학을 전공했으며, 소설쓰는 작가입니다. 아이들과 독서 논술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여, 세계여행관련 글을지속적으로 발행할 예정입니다.

1,165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8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작가의 이전글여행과 건축(신전편)-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