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책 (6)

론다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by 향지소피아



론다로 들어가는 길


2024년 1월 론다로 향하고 있었다. 론다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작은 도시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원형적 배경이 된 곳이다. 스페인 론다의 협곡과 투우장은 그의 감각과 사유를 형성한 곳이기도 했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며 론다를 여러 차례 방문했고, 협곡과 다리, 그리고 내전 당시 사람들을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다는 이야기를 직접 보고 들었다.


버스가 론다로 들어가는 길에서, 협곡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헤밍웨이의 문장이었다.

바위산은 마치 하드보일드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문체를 연상시킨다.

언덕위의 흰집들이 인상적이다.

론다의 중심부를 통과하여 누에부 다리와 협곡 쪽으로 갈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내가 오래도록 기억해 온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야기보다도 헤밍웨이의 문체였다. 그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았고, 감정을 앞세우지도 않았다. 설명을 줄이고, 장식을 덜어낸 문장들. 만약 내가 화려한 우유체의 문장들로 가득한 소설들만 읽어왔다면, 감히 글을 쓸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한 문체를 접했기 때문에, 나는 두려움 없이 글을 쓸 수 있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말할 수 있다는 확신을, 그는 문장으로 보여주었다.



이 소설의 제목은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의 시에서 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 그대 자신을 위하여 울린다.” 헤밍웨이는 이 문장을 소설의 제목으로 가져왔다. 그것은 한 사람의 죽음이 결코 개인의 몫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인식, 전쟁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선택과 희생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영웅의 서사가 아니라, 연루됨의 이야기다.



헤밍웨이의 동상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20세기 문학의 방향을 바꾼 작가였다. 그는 화려한 수사나 감정의 과잉을 경계했고, 짧고 단정한 문장으로 인간의 핵심적인 순간을 포착했다. 기자로 출발한 이력은 그의 문장에 사실성과 속도를 부여했고, 전쟁과 여행, 사냥과 바다 같은 체험은 그의 작품을 관념이 아닌 삶의 기록으로 만들었다.


헤밍웨이 문체의 핵심은 흔히 ‘빙산 이론’으로 설명된다. 글로 드러난 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말하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큰 무게를 지닌다는 생각이다. 그는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행동과 침묵으로 보여 주었고, 독자는 그 빈자리를 스스로 채우며 이야기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이 절제는 차가움이 아니라 신뢰에 가깝다.


그의 작품 세계에는 전쟁과 폭력이 반복해서 등장하지만, 승리의 환호는 거의 없다. 『무기여 잘 있거라』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그는 전쟁을 영웅의 무대가 아니라 선택과 책임이 요구되는 윤리의 공간으로 그린다. 특히 개인의 죽음이 공동체와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은 그의 문학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헤밍웨이는 장소의 작가이기도 했다. 파리에서의 젊은 시절, 스페인 론다의 협곡과 투우장, 쿠바의 핀카 비히아는 각각 그의 감각과 사유를 형성한 공간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체험한 것을 즉각 쓰지 않고, 거리를 둔 뒤 기억을 숙성시켜 문장으로 옮겼다. 이 거리감이 그의 글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사랑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그의 절제는 두드러진다. 헤밍웨이는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고, 대신 함께 견디고 선택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로버트 조던이 마리아에게 남기는 말은 감정의 고백이 아니라 삶의 전이이며, 인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깊이 연루되어 있는지를 드러낸다.


헤밍웨이가 오늘날까지 읽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정직하고, 독자를 압도하지 않으며 오히려 쓰게 만든다. 설명을 덜어내고 본질에 다가가려는 태도는 글쓰기의 두려움을 낮춘다. 그래서 헤밍웨이는 위대한 작가이기 이전에, 많은 이들에게 글을 쓰도록 허락한 작가로 남아 있다.




투우장으로 사용되었지만 이제는 페쇄되었다.



남성 누드 조각상은 헤라클레스(Hércules, 헤라클레스)를 나타낸다. 론다는 고대부터 헤라클레스가 세운 도시라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 조각상은 바로 그 도시의 신화적 기원을 상징한다. 조각상 양옆에 있는 두 마리의 사자는 헤라클레스의 힘과 영웅성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상징이며, 그의 열두 과업 가운데 네메아의 사자를 제압한 이야기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조각상 위에 보이는 아치에는 보통 ‘HÉRCULES FUNDADOR’(건설자 헤라클레스)라는 문구가 함께 배치되는데, 이는 론다가 단순한 중세의 도시가 아니라 신화–로마–이슬람–기독교로 이어지는 긴 시간의 층위 위에 놓여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이 조각상은 장식물이기보다, 론다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자신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내는 상징적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론다(Ronda)의 중심 광장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시즌 장식물. 황금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원형 아치는 마치 도시의 입구이자 통과의 문처럼 서 있고, 위쪽에 달린 붉은 장식 공(크리스마스 오너먼트)들이 축제의 계절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장식 자체는 현대적인 임시 구조물이지만, 뒤편에 보이는 연한 베이지색의 전통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오래된 도시 위에 잠시 내려앉은 시간의 장식”처럼 보인다.

론다의 타호 협곡(El Tajo)

마침내 협곡 앞에 섰을 때,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관광객들이 난간 앞에 나란히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동안, 이곳은 더 이상 관광지가 아니었다. 소설 속 문장들이 이곳으로 흘러들어와 있었다. 그날 이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전쟁 소설이 아니라, 어떤 장소를 지나온 뒤에야 다시 읽히는 책이 되었다.



실제로 론다에서는 스페인 내전 당시
사람들이 협곡 아래로 떨어뜨려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헤밍웨이는 이 사실을 미화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묻는다.

인간은 언제 그렇게 잔인해질 수 있는가.


그래서 그의 소설 속 죽음은 요란하지 않다.
총성보다 침묵이 길고,
영웅의 언어보다 바라보는 시간이 길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다리를 폭파하라는 임무를 받은 미국인 폭파 전문가 로버트 조던이 산속 게릴라들과 함께 보내는 며칠을 그린 소설이다. 그는 임무 수행을 위해 사람들과 연대하고, 상처 입은 여성 마리아와 사랑에 빠지지만, 전쟁은 개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다. 소설은 영웅적 전투보다 폭력 앞에서의 망설임과 선택, 그리고 집단이 얼마나 쉽게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 준다. 결국 조던은 후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남아 시간을 벌기로 결단하고, 헤밍웨이는 그 침묵의 순간을 통해 “어느 누구의 죽음도 타인의 것이 아니다”라는 질문을 독자 앞에 남긴다.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론다에서 촬영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제작된 이 영화는 미국의 산악 지형과 세트를 통해 소설의 상황을 재현했다. 화면 속에는 론다의 실제 협곡이나 누에보 다리는 등장하지 않지만, 다리와 협곡이 요구하는 긴장—넘어야 할 경계와 되돌릴 수 없는 낙차—는 유지된다. 론다는 영화의 촬영지에서는 지워졌지만, 서사의 원형으로서는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론다에서 집필하지는 않았다. 이 소설은 1938년부터 1940년 사이, 주로 쿠바 아바나 근교의 핀카 비히아에서 쓰였다. 그러나 론다는 집필 장소가 아니라, 이 소설의 감각과 장면이 형성된 체험의 장소였다.

헤밍웨이의 글쓰기는 현장에서 바로 쓰는 방식이 아니라, 거리를 둔 뒤 기억을 다시 불러오는 방식에 가까웠다. 그는 스페인에서 축적한 체험을 쿠바라는 물리적·정서적 거리 속에서 숙성시켜, 절제된 문장으로 옮겼다. 그래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쿠바에서 완성되었지만, 그 윤리적 깊이와 폭력의 감각은 론다의 협곡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론다의 협곡 앞에 서면, 책을 펼치지 않아도 문장들이 떠오르고, 헤밍웨이가 묻던 질문이 풍경 속에서 되살아난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타인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 폭력 앞에서 인간이 감당해야 할 윤리의 무게. 론다는 여행지라기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기억의 장소였다.





누에보 다리(Puente Nuevo)



누에보 다리(Puente Nuevo)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론다를 상징하는 구조물로, 도시를 가르는 타호 협곡 위에 놓여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한다. 18세기 후반, 한 차례 붕괴라는 비극을 겪은 뒤 약 40여 년의 공사 끝에 완성된 이 다리는 높이 약 100미터에 이르며, 단순한 교량을 넘어 절벽과 협곡을 하나의 풍경으로 완성시키는 건축물로 자리 잡았다. 아래로 펼쳐지는 깊이는 강보다 공기에 가까워, 다리는 언제나 긴장과 경외를 함께 불러일으킨다.


다리 중앙의 작은 방은 한때 감옥으로 사용되며 이동의 통로에 ‘머묾’과 ‘죽음’의 기억을 겹쳐 놓았다. 이 때문에 누에보 다리는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선택과 결단의 상징이 되었고, 헤밍웨이 같은 작가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람들은 이 다리를 건너며 자연스레 걸음을 늦추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이 무엇을 건너고 있는지를 묻게 된다.



누에보 다리(Puente Nuevo)


헤밍웨이는 론다의 타호 협곡(El Tajo), 누에보 다리(Puente Nuevo), 그리고 투우장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오후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에서

론다를 모델로 한 공간과 분위기를 반복해서 사용했다.

특히 절벽과 투우, 죽음과 용기, 명예와 침묵이라는 주제는 론다의 지형과 거의 겹친다.

깊게 갈라진 협곡, 절벽 위에 붙은 하얀 집들, 난간 앞에 멈춰 서서 바라보게 만드는 구조 이 모든 것이 바로 헤밍웨이가 “스페인적 비극의 미학”을 체감했던 장소, 론다의 핵심 풍경이다



론다를 떠난 뒤에도 나는 종종 그 협곡을 떠올린다. 그리고 헤밍웨이의 문장을 다시 읽는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그 문장은 더 이상 책 속에만 있지 않다. 론다의 협곡 아래, 말없이 쌓인 시간과 함께 남아 있다.

여행은 책을 다시 읽게 하고, 책은 여행을 오래 지속시킨다. 론다는 그 둘이 만나는 드문 장소였다.

그래서 나는 확신한다. 어떤 여행지는 한 번 가면 끝나지만, 어떤 여행지는 책으로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론다는 후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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