벅차오르는 노스탤지아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말했다.
"내 영화는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하지만, 그것을 흘러내리게 하는 것은 존 윌리엄스의 음악이다"
존 윌리엄스는 1952년 데뷔 이래 뛰어난 영화음악을 창조해 내면서 스타워즈 시리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등 명작들의 탄생에 일조한 거장 중의 거장이다. 그는 아카데미에 무려 52번이나 노미네이트 됐으며, <지붕 위의 바이올린>, <죠스>, <스타워즈>, <E.T.>, <쉰들러 리스트>로 총 5번 수상하게 된다. 특히 아무리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존 윌리엄스의 음악을 안 들어봤을 사람은 없을 텐데, 그 이유는 바로...
20세기 폭스의 타이틀 음악을 편곡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존 윌리엄스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작곡가이다. 2020년 엔니오 모리꼬네의 별세 이후로는 영화음악감독 중 최고령이기도.
또 다른 대표 영화음악감독, 한스 짐머의 음악은 처음에는 잔잔하게 곡을 끌고 가다가 점점 웅장해지는 스타일이다. 반면 존 윌리엄스는 시작부터 웅장함을 부각하는 곡들이 많다. 하지만 그의 곡은 언제나 웅장한 건 아니다. 아카데미상을 탔던 <쉰들러 리스트>의 경우는 처연함을 부각하는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고, <뮌헨>에서도 처연한 음악을 넣었다. 그리고 존 윌리엄스의 최대 장점은 바로 벅차오르는 것이다. 한스 짐머의 곡 중에서는 어두운 느낌이 많아 벅차오르는 감정은 인셉션 ost 중 <time> 말고는 없다시피 한데,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대부분 웅장하면서도 메이저 코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쥬라기 공원>의 음악을 듣게 되면 영화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가슴이 뛰고 눈물까지 나게 하지 않는가. 존 윌리엄스의 음악을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때문.
쥬라기 공원의 공연 영상을 찾아보자, 연주자들이 연주하면서 씩 웃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첼로를 8년간 배운 경력이 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에서 존 윌리엄스의 곡을 연주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안 웃고는 못 배긴다. 관객들보다 세 배, 네 배는 더 벅차오르기 때문.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 워즈>의 메인 타이틀 음악이다. 시작부터 오케스트라의 모든 파트를 다 때려 박아서 웅장함을 절정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음악의 메인 주제가 시작될 때, 그 멜로디를 현악이 아닌 관악이 연주하게 하여 웅장함을 더욱 부각한다. 또한 북과 팀파니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가슴이 두근두근 뛰게 한다. 멜로디를 연주하는 관악의 경우에는 특별한 구간을 제외하면 음을 나누지 않고 모두 같은 음을 연주하게 한다. 이는 멜로디를 각인시킴과 동시에 더욱 벅차오르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비교적 어두운 쪽에 속하는 스타워즈의 Imperial March에도 나타나게 된다.
단조를 사용했기 때문에 장조를 사용한 곡들만큼 벅차오르지는 않지만,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여기서도 멜로디는 관악이 연주하고 현악은 받쳐주는 사운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곡 자체가 그냥 멋짐 뿜뿜이다.
1982년 <레이더스>부터 역사에 남을 오락영화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의 사운드트랙 또한 매우 비슷한 느낌이다. 다만 비슷한 느낌이라는 생각만 들고 자가복제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곡의 구성이나 무게감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스타워즈의 음악보다 가볍고, 스네어 드럼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긴박감까지 연출해 낸다. 무엇보다도, 스타워즈 음악을 들을 땐 머릿속에 스타워즈의 장면들이, 인디아나 존스를 들을 땐 머릿속에 인디아나 존스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1982년 개봉한 또 다른 스필버그의 영화인 <E.T.> 또한 비슷한 느낌이지만, 현악으로 깔아놓는 반주가 자잘 자잘 들어가고 박자가 훨씬 빨라지면서 귀여움을 훨씬 부각시킨다. 또한 곡들 중간중간에 메인 테마를 잠깐씩 노출시키면서 음악을 더욱 두근거리게 한다. 이러한 음악들은 적재적소에 사용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3년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음악은 앞의 곡들과는 다르게 매우 처연하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흐르는 음악이 바로 영화의 메인 테마인데, 영화에서 나온 버전들과는 다르게 피아노 한 대만으로 세션을 구성했다. 이런 테마는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된 후 더욱 풍성한 사운드가 된다.
피아노 버전에서 들었던 그 메인 테마가 끝나고 나면 분위기는 그대로 이어 가되 다른 멜로디를 진행시키고 후반부에는 다시 메인 테마의 멜로디로 돌아오는, 클래식에서 자주 쓰이는 A - B - A'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음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비롯한 많은 장면에 등장하게 되는데, 음악만 들었을 땐 처연하지만, 장면과 같이 봤을 땐 벅차오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쉰들러 리스트는 내가 이렇게까지 영화를 사랑하게 된 것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음악도 한몫 단단히 했다. 너무나 훌륭한 영화만큼 음악도 대단하기 때문. 아마 아직까지는 나의 인생 영화 중 가장 사랑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쓰며 곡들을 하나하나 다시 들어 봤는데, 존 윌리엄스의 곡에서 느껴지는 그 벅차오름은 노스탤지아가 아닐까 싶다. 어릴 적 저 영화를 봤을 때로 돌아가고 싶은 감정이 느껴지게 된다. 특히 E.T. 는 어린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영화를 볼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그런 감정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E.T. 가 보고 싶은 밤이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도 존 윌리엄스가 작업한 영화들을 보시게 되면 이 글을 떠올리시면서 음악을 주의 깊게 한번 들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