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만화영화 중 '검정 고무신'이라는 제목의 만화가 있었다. 물론 요즘은 역사적으로 잊히고 있기는 하지만 화자의 경우에 일요일이면 텔레비전 채널에서 종종 보여주기도 했다. 그 안의 내용은 1960년대 후반 대한민국의 근현대를 다루고 있는 내용이고, 무엇보다 어려웠던 시절을 잘 반영해 주는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여기서 자세히 보면 가정에 보일러 대신 연탄을 사용해서 겨울을 지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2000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낯선 풍경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 연탄이라는 존재는 만화상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연탄은 자신을 태워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연소하는 과정에서 열을 일으켜 빛을 수반하기도 하고 다양한 일을 한다. 시를 쓰고 있는 화자 또한 자기 내면이 있는 부산물로 열을 일으켜 읽는 사람에게 따뜻하게 만든다.
평상시에도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고, 시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유독 다르게 막히는 기분이 들었고 더 이상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이럴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다른 시인의 글을 읽거나 따라 쓰며 뭉쳐있던 근육을 풀어주듯 조금씩 마사지해 주며 해소하면서 다시 글을 쓰거나 했다. 그러나 그날은 단단히 막혀 1시간 이상 부동자세로 앉아 가만히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천천히 해결하고자 또 다른 글을 읽게 되었고 마침내 마음속 굳어있던 것을 풀어주는 시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정지용 시인의 '시'다. '향수'라는 제목의 시인데 깊이 잠들어 있던 근육을 어루만져주었다.
향수(鄕愁)
정지용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게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든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여기서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구절이 어떻게 보면 시간이 정지하듯 느끼게 했고 잠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 말해 주는 표현이기도 했다. 우리는 각자 고향이 있다. 무슨 일 있더라도 잊을 수 없는 그곳, 고향이라는 이름은 돌아가고픈 '어머니의 품'이기도 한다. 본디 나는 원래 부산에서 태어나 20년 이상 살아가다 학업 및 취업 문제로 서울에 상경해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 서울이라는 곳에 올라왔을 때 너무나 즐거웠다. 드라마에서 보던 장소들 주변을 걷다 보면 자주는 아니지만 연예인을 마주치면 그때마다 잘 올라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정지용 시인의 구절처럼 고향을 잊을 수 없는 이유가 뭘까….
화자가 생각하기에 고향은 내가 먹고 자란 곳이고 단순히 태어난 곳은 아니다.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말하고 싶은 논지는 내가 지금까지 먹어왔던 음식을 말한다. 우리 어머니는 된장찌개를 매우 잘하신다. 제아무리 서울이라고 하더라도 화려한 음식 속에 어머니의 손맛을 따라갈 수 있는 곳은 없다. 마치 사골 육수를 끓인 것과 MSG를 넣은 것의 차이점처럼 말이다.
그러면 음식 말고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한번 정리를 해 보았다.
첫째는 고향의 향이 묻어나는 말 이다. 흔히 사투리 혹은 방언이라고 한다. 우리 어떤 음식을 먹고 나오면 그것에 대한 향이 거부하더라도 잔잔하게 흘러나와 남에게도 유추할 수 있게 만든다. 서두에도 말했듯 나는 부산 사람이다. 억센 말투, 직접적 표현들 이것은 서울 사람들에 비해 높은 말의 표현력을 만들어내고 잘못 말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들은 말이 "너 화났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악센트를 포함해 간접적이지 못하는 말 때문에 종종 듣는 말이다. 서울 사람들은 이것을 따라 하기 힘들다. 오죽하면 네이티브 스피크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겠는가 부드러운 말 표준어라는 말 사이 피어나는 고향의 향기는 타지의 사람에게 낯선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둘째는'정'이라는 이름의 정체성이다. 고향에서는 정이라는 말이 참으로 많이 들어왔다. 특히 '우리가 남이냐'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물론 현재 정치 상황으로 인해 부정적인 인식이 자라나기는 했지만 '정'이라는 문화에 제외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옛말에 옆집 식탁에 숟가락 개수도 알고 있다는 속담처럼 21세에 낯선 표현이기도 하다만 아직 지방이라는 곳 고향이라는 장소에는 남아 있고 지나가는 어르신 잦은 마주침에도 인사를 하고 말을 나누기도 한다. 물론 이것이 지나치면 '오지랖'이라는 말이 들려오기는 한다만 적정하게 선을 잘 지켜낸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함을 맛볼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사람 인 자의 한자처럼 서로 지탱하듯 말이다.
이렇듯 타지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점을 정리해 보았다. 글을 쓰는 한편, 문득 정지용 시인 또한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타향살이 속에서 고향에 대한 애정을 시로 풀어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아름답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알기에 참으로 불편하기도 하고 요즘 시대를 잘 반영하는 도시가 아닐지 생각이 든다.
'어두움이 강할수록 별이 빛나는 법'처럼 이러한 현실 속에 고향의 '의미'를 다시금 회상하게 만들고 그리워지는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