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촌놈들의 세상
어린 시절 함께 자란 깨댕이 친구들을 소개하고 싶다.
먼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장의사였던 친구는 지금 목사님이 되었다. 집안의 강력한 반대를 뚫고 믿음의 길을 걸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우리 집 뒤에 살았던 깨댕이 친구는 해양경찰이 되어 지금도 바다를 지키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사랑했던 그 친구답게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뽁아리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는 제조업 회사의 공장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어린 시절 배가 나와서 복어 같다고 불렸던 그 친구가 이제는 많은 직원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다.
나와 같이 다리가 불편한 중고차 대표 친구는 우리 친구들 중에 제일 돈을 많이 벌고 있다. 금은세공부터 시작해서 비디오 가게, 중고차까지 다양한 사업에 도전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젊을 때 힘이 좋아서 만나면 맨날 힘자랑을 하던 친구는 지금은 힘이 없어져서 집에서 쉬고 있다.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친구다.
멀리서 살지만 직장인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친구는 지금 그 회사의 중역이 되었다.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결과였다.
그리고 나는 장애인을 가르치는 교사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 7명은 20대에 '칠 각 폐'라는 모임을 조직했다. 일명 '칠우회', 7명의 우정회였다. 젊은 시절 우정을 다지고 서로 도우며 살자는 취지였다.
20대 중후반, 회비가 어느 정도 모였을 때였다. 친구들끼리 대도시로 한번 놀러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시골 바닷가 촌놈들이 광주광역시에 원정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7명은 무작정 광주로 향했다. 찬란한 불빛 아래 술집이 즐비한 번화가에 도착했을 때,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골에서는 볼 수 없던 화려한 광경이었다.
"와, 진짜 대도시네!"
우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 보이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7명이나 되는 일행이 들어가니 옆에서 놀아줄 아가씨가 부족했다. 그래서 우리끼리 열심히 놀았다.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며 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덧 새벽이 되었다.
드디어 계산할 시간. 그런데 계산서를 받아보고는 모두가 경악했다. 술값이 우리 회비의 80%나 나온 것이다. 숙소도 잡아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는데, 이게 웬일인가.
알고 보니 술집 사장이 아가씨도 없는데 아가씨가 있는 것으로 계산해서 술값을 받은 것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순진한 촌놈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당했던 것이다.
"이게 뭐야? 아가씨도 안 왔는데?"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미 서비스는 제공된 것으로..."
술집 사장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항의해 봤자 소용없을 것 같았다.
결국 회비를 거의 탕진하고 말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역시 대도시는 무서운 곳이구나!'
남은 돈으로는 제대로 된 숙소도 잡을 수 없었다.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일 이후 우리의 '칠 각 폐'는 서서히 흐지부지되기 시작했다. 30대 초반이 되면서 모임도 뜸해지고, 각자 바쁜 생활에 쫓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때 광주에서 당한 거 기억나?"
"아직도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
"그래도 재미있었잖아. 그런 경험도 추억이지."
이제 우리는 모두 50대 후반이 되었다. 목사, 해양경찰, 공장장, 사업가, 회사 중역, 교사...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비록 '칠 각 폐'라는 모임은 사라졌지만, 우리의 우정은 여전하다. 가끔 만나서 술 한 잔 하며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때 광주에서 당한 일은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추억이다. 순진한 촌놈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당한 해프닝이지만, 그 또한 우리 청춘의 한 페이지였다.
언제 다시 7명이 모두 모일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또 광주 이야기부터 시작할 것 같다. 그리고 웃으며 말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 재미있게 살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