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소수자다
소수자 차별을 없애는 것
우리 모두는 소수자다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다문화와 소수자에 대한 과제를 쓴 적이 있다.
제목은 "우리 모두는 소수자다"였다. 지금은 제목만 생각나고 과제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지만, 그때 했던 생각들이 다시 떠오른다. 소수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얼마 전만 해도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보도들이 있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한국인 동료나 고용주가 폭행하거나, 월급을 주지 않고 일만 시키거나, 인권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일들.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산업 재해를 당해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치료조차 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들. 이것은 명백한 인종차별이었다. 부인할 수 없는 시대였다.
한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을 차별한다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선택적 차별이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을 차별한다.
그런데 흔히 말하는 선진국,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온 백인들에게는 친절하게 한다. 왜일까.
왜 피부색이 짙은 사람과 하얀 피부색을 가진 백인을 다르게 대하는 것일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답은 간단하다.
그들을 소수자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수자 중에서도 위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소수자들이 많다. 다문화가정, 외국인 근로자, 탈북민, 이주민. 이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소수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나라에서 살아갈 때도 차별을 받을 때가 많다. 인종차별, 성차별. 우리도 다른 곳에서는 소수자가 된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 과제 제목을 "우리 모두는 소수자다"라고 지었던 것 같다.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는 소수자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다수자일지라도, 다른 나라에 가면 소수자가 된다.
장애가 없다고 해도 언젠가 사고나 노화로 장애를 가질 수 있다. 건강한 사람도 언젠가 환자가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수자를 존중해야 한다. 그것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다. 모든 나라가 소수자와 함께 살아가는 정책 기반을 형성해야 한다.
소수자 차별을 없애는 것을 자연스럽게 다문화 사회라는 표현으로 연결하여,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이 필요한 때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어딘가에서 소수자가 된다. 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다문화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