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
중학교 시절, 나는 친구들의 놀림감이었다.
아침마다 교실에서는 친구들끼리 힘자랑을 하며 큰소리를 치곤 했다.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할 때면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다리가 불편한 내가 그들과 같은 선 위에 설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놀림을 받는 것이 싫었다.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권투도장을 찾았다.
그 도장의 관장님은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경력의 소유자였다. 처음 도장에 들어섰을 때의 긴장감을 지금도 기억한다. 다른 권투 선수들과 함께 운동을 한다는 것이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매일 학교가 끝나면 권투도장으로 향했다.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치고, 줄넘기를 하며 기초체력을 쌓았다. 처음에는 제대로 주먹도 쥐지 못했지만, 점차 요령을 터득해갔다. 땀에 흠뻑 젖어 집에 돌아가는 길이 힘들면서도 뿌듯했다.
2달 정도 지나자 관장님이 스파링을 시키셨다. 상대는 나보다 어린 중학교 후배였지만 현역 권투선수였다. 내 마음은 두근거렸다. 드디어 실전을 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그 후배의 손동작은 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빨랐고, 몸놀림도 민첩했다. 나는 느린 손동작과 둔한 몸놀림으로 겨우 버텨내고 있을 뿐이었다. 글러브가 내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했을 때, 정말로 별들이 반짝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만화나 영화에서나 보던 그 표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을 권투와 함께 보냈다.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지는 않았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다.
3학년이 되면서 권투도장을 그만두었다. 고등학교 입시 준비도 해야 했고, 어느 정도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학교에는 유독 나를 괴롭히는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기회만 되면 나를 놀리고 괴롭혔다. 참고 또 참았지만, 3학년 말이 되어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날, 드디어 폭발했다.
그 친구와 한판 붙었다. 1년간 권투도장에서 쌓아온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내 주먹으로 칠판을 부수고, 의자를 들고 던지고, 그 친구의 얼굴을 가격했다.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와 억울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 일 이후 그 친구는 다시는 나를 놀리지 않았다. 아니, 놀릴 수 없었다. 나도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그 친구와 같은 학교가 되었지만, 더 이상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나는 조용히 학교만 다니는 학생이 되었다. 굳이 싸울 이유도, 과시할 이유도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권투가 나에게 준 것은 단순한 격투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용기였고, 자신감이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비록 권투선수만큼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 경험을 통해 나는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은 옳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고,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다.
글러브 속에 담았던 그 용기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 같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그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