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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woo May 01. 2023

역사, 위기, 후회_1

역사적 사고와 논술_Archive

1.

월요일부터 금요일, 1교시부터 8교시. 그 격자의 몇 칸이었다. 그 이상의 의미로는 다가오지 않았다.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다, 하게 되었다 등의 떨림 혹은 설렘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던 듯 하다. 만일 신이 존재하고 나에게 운명을 부여했더라면, ‘역사’와는 관련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2.

 해야 하니까 하던 공부였다. 다만 운이 좋았을 뿐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내가 여느 내 또래와 비교했을 때 강점을 가진 부분인 ‘꾸준함’과 ‘성실함’이 평가 목표 달성에 이점을 가졌기에, 그런 우연의 일치로 좋은 성적을 받았다. ‘역사’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에 다가가기 위해 ‘꾸준함’과 ‘성실함’이 가장 중요하다는 오해가 시작된 순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3.

 여느 10대의 학생이 그렇듯, ‘잘하는 것’과 ‘하고싶은 것’을 혼동했다. 역사적 사실(事實) -그때의 나에게 사실은 오로지 사실(事實) 뿐이었으며, 그 사실을 서술한 유일한 책은 교과서였을 것이다.-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외우는 것을 또래에 비해 잘했던 나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역사라고 판단하였다.


4.

 대학에 오기 전에도, 이런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 있음은 얼핏 알고 있었던 듯 하다. 교과서에서 한 겹 씩 사실을 파헤친다면 실체적 사실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교과서를 벗어난 책들은 실체적 진실이 아닌, 어딘가 부족한, 혹은 사실이 아닐 수 있는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5.

 그럼에도 나는 이를 외면했다. 지난 시간에 대한 실체적 사실이 밝혀지고 자리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 아닌, 그 결과를 ‘아는 것’이 역사인 줄 여전히 알고 있었다. 돌아보면, 이 공부에 대한 열의보다도, 어쩔 수 없는 고등학생 신분에 더 집중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6. 

 역사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깊이 탐구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까지 외면했지만, 이제는 실체적 진실의 오해에 대해 마주할 순간이 찾아왔다. 대학에 입학해 첫 전공 시간에 접한 Historical Fact(史實)과 Fact(事實)의 차이를 배우며 이 생각은 점점 더 명확해졌다. 이때까지 생각한 역사의 본질은 Fact에 대한 끝없는 탐구였다면, 이 시기를 기점으로, 사실(事實)의 필연적인 공백과 해석 가능성으로 인해,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음을 배우게 되었고 생각의 틀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7.

 사실(史實)에 대한 학문적 중요성과 이에 대한 고찰은, 역사를 삶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정확하게는, 사적(史的) 방법론의 일상적 해석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사실(史實)의 추론 역사적 상상의 차이에서 그 해석은 기인한다. 상상에 대한 경계, 그곳에서 합리성이 발현할 수 있다.


8.

 역사(歷史)는 그 단어 자체로 ‘지난날’에 대한 학문이다. 시간의 흐름은 단편적이기에, 과거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난날에 있었던 그 사건은 시류(時流)속에 온전히 남아있다. 한 지점에 머물러있는 사건을, 오랜 시간 뒤에 바라보는 것을 우리는 ‘역사’라 부른다.


9.

 즉, 한 사건은 그 시점에 머물러있다. ‘이 사건은 그 때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시간 속에 새겨져 지울 수 없다. 시간 속에 새겨진 그 사건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근거 역시, 마찬가지로 시간 속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사건의 근거는 역사가가 ‘창조’하는 것이 아닌, ‘발견’한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10.

 시간 속에 사건이 새겨져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건의 총체적이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 사건의 근거조차 쉬이 접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史實)이 작동해야 한다. 


11.

 공백을 매워야 한다. 그러나 합리적이어야만 한다. 역사는 소설이 아니다. 허구적일수는 있어도, 사람이 남긴 발자취이기에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항상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상상을 경계해야 한다. 사건과 사건 사이, 혹은 사건과 그 시간의 공백을 채워나가는 데 있어서 상상력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을 터인데, 이 개념을 처음 접했을 당시엔 나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다.


12.

 상상에 대한 경계. 이 말은 상상에 따른 합리화를 경계하라는 말로 내 삶에 적용할 수 있었다. 임의의 역사 속 사건 A와 B 사이에 있음직한 C를 추론하는 과정을 떠올려 본다면, 직관의 작동으로 C를 상상하고 그를 A와 B를 통해 합리화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지양함과 동시에 A와 B, 나아가 D, F의 다른 근거로부터 C를 추론해야 한다는 것을 내 삶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근거 혹은 Data를 바탕으로 한 의사결정과 결론 도출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었다.


13.

 공백을 메우는 데 사용되던 방법론이 일상에 적용되기 시작하자, 다른 방향의 시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4.

 월가의 저명한 투자자이자 헤지펀드 Bridge Water의 대표인 Ray Dailo의 책을 읽었다. 역사와는 전혀 관계 없어보이는, 최첨단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50년 가까이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그의 책에서, 다른 방향의 시간에 대한 역사적 시선을 접할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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