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나의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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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


나는 아이 돌봄 이로 그 집에 처음 들어섰다. 으리으리한 거실, 고급스러운 가구들, 창밖으로 펼쳐진 정원이 한눈에도 '잘 사는 집'임을 알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화려함 속에는 늘 공허함이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일 때문에 집에 없는 때가 많았고, 아이는 늘 혼자였다.


결국 부부는 이혼을 했다. 아이는 아빠의 몫이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는 엄마를 찾지도 않았다. 어쩌면 이미 너무 익숙해진 엄마의 부재였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낯선 나에게 오히려 더 편안함을 느꼈다. 내 손을 잡고 잠이 들었고, 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었으며, 내가 읽어주는 동화책에 귀 기울였다. 어느새 아이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아이의 따뜻한 눈빛 속에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보았다.


그렇게 아이와 나, 그리고 아이의 아빠는 한 집에 살게 되었다. 아빠는 퇴근 후 집에 오면 아이의 미소를 보고 편안해했고, 나에게도 점차 마음을 열었다. 그의 눈빛 속에는 고마움과 더불어 새로운 감정들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몇 년 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부부가 되었다. 거창한 프러포즈도, 화려한 결혼식도 없었지만, 그 어떤 것보다 단단하고 깊은 신뢰가 우리를 묶어주었다.


남들은 내가 '인생역전을 했다느니, '크게 변했다느니 수군거렸다. 나 또한 그들의 시선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나는 그저 내가 맡은 일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아이에게는 늘 진심을 다해 엄마의 역할을 했고, 집은 늘 깨끗하게 정리했으며, 나의 삶에는 숨길 것도, 꾸밀 것도 없었다. 내가 늘 하던 대로, 그 시간에 그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이에 대하여 나의 본질에 충실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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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나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침대 위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내 모습은 여전히 평온하다.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늘 나의 모습에 충실하며 살아갈 것이다. 꾸밈없이, 진심을 다해,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그것이 나 자신에게 가장 진실한 삶의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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