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숨결이 닿는 곳

by 이로

새벽 3시 48분.

자다가 빗소린가 싶어서 깼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였다.

요즘 나, 좀 이상한 생각에 꽂혔다.

다들 "행복하게 살자!" "오늘을 즐기자!"라고 외치는데 난 자꾸 죽음을 생각한다.

뭐, 음침한 건 아니고. 우리가 죽을 때 과연 혼자 죽는 걸까? 이런 류의 생각들.

며칠 전, 폰으로 숏츠를 보는데, 어떤 사람이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말이 가장 잔인한 위로라고 하는 거다. '어차피 한 번뿐인데, 뭘 그렇게 애쓰냐'는 식으로 들렸다는 거지.

그 말을 듣는데, 묘하게 띵했다. 진짜 그럴까? 싶어서.

오히려 그렇기에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반발심 같은 게 생겼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의 시작: 사라지는 풍경들

가끔 길을 걷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푸른 하늘, 저 멀리 보이는 산,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작년 여름, 제주도에 갔을 때였다.

함덕 해변에서 바라본 쪽빛 바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파도는 부서지며 하얀 포말을 만들었다.

사진을 찍고, 발끝에 닿는 시원한 바닷물에 마냥 행복해했다.

아직도 그 풍경은 내 눈앞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밤에는 성산일출봉 근처에서 쏟아지는 별똥별을 봤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데,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때 느꼈던 경이로움, 감탄. 그런 기억들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건 아닐까?

좀 아깝잖아.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필름이 통째로 사라지는 기분이다.


의미를 잃는 물건들: 꽤나 억울한 일

생각해 보면 참 억울하다.

내 책상 한편에 놓인 스마트 폰. 2년 할부 노예 계약을 맺어가며 손에 넣었을 때의 뿌듯함이란.

투명 케이스를 씌우고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그 폰으로 밤새 앱을 다운로드하고, 써보고, 지우고. 내 취향을 저격하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이 작은 기기가 내 삶의 많은 순간을 함께했다.

그리고 서랍 깊숙이 넣어둔, 초등학교 어버이날 때 엄마에게 써 준 손 편지.

삐뚤빼뚤한 글씨로 '엄마 사랑해요'라고 적혀 있었다.

그 편지를 읽던 내 눈가에 살짝 이슬이 맺혔던 순간,

그 편지를 받고 날 꼭 안아줬던 엄마의 그 따뜻한 온기. 지금도 생생하다.

생일날 케이크 위에 꽂혔던 반짝이는 불꽃들.

매년 맞는 생일이라 덤덤하려 했는데, 식구들이 깜짝 파티를 준비해 줬을 때 터져 나온 웃음과 벅참.

그 물건들이 아무리 멀쩡히 남아있다 한들, 그걸 보고 기뻐했던 '나'라는 주체가 사라지면,

그 물건들의 의미도 같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왠지 좀 허무하다. 내 추억이, 내 감정이, 그냥 휙 하고 사라져 버리는 기분이다.

넷플릭스 찜 목록처럼 사라지는 건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감정들: 허무한가?

그리고 가장 사랑했던 그 사람은?

연애할 때 생각했던 사랑의 말들. 그 사람과 나눴던 모든 비밀들.

늦은 밤까지 이어지던 전화 통화. 서로의 눈빛 속에서 읽어냈던 수많은 감정들.

얼마 전, 몇 년간 듣던 플레이리스트를 통째로 지워버렸다.

한 곡 한 곡 들을 때마다 그때의 감정, 그때의 장소가 떠올랐다.

삭제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수십 번 망설였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을 정말 지워도 괜찮을까?

결국 '삭제'를 눌렀다. 꽉 채워진 플레이리스트가 내 삶처럼 버겁게 느껴졌을 때였다.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을 담을 공간도, 마음도 없었다. 이제는 비워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텅 비어버린 목록을 보며 묘한 해방감과 동시에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 벅찼던 순간들, 아팠던 순간들, 이젠 노래로도 다시 느낄 수 없게 된 거다.

플레이리스트가 사라지는 것처럼 이 모든 것들이 과연 영원할까?

아니, 언젠가 내가 사라지면 이 기억들도 함께 사라지겠지. 그게 너무 아쉽고 아깝다.

내 모든 감정과 역사가 함께 소멸하는 느낌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단순히 나 한 명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나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거대한 세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거다.

내가 존재했기에 의미를 가졌던 모든 것들이,

마치 내가 심어둔 나무처럼 함께 시들어 버리는 거다.


역설적인 깨달음: 그래서 더 소중한 오늘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어차피 사라질 것들인데, 굳이 애써야 할까? 하는 회의감이 잠깐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이내 다르게 생각해 본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한 건 아닐까?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언젠가 사라질 걸 알기에,

오늘 나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 지구 멸망해도 사과나무 심는다는 그 할아버지처럼?


마지막 숨결을 위한 채움: 나의 세계

어쩌면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더 뜨겁게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려주는 신호등이 아닐까?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어떻게 채워나갈지는 결국 우리에게 달린 문제다.

어쩌면 나는 마지막 숨결이 닿는 그 순간, 눈앞에 스쳐 지나갈 영상들을 상상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제주도의 쪽빛 바다, 엄마품의 온기, 그리고 지워버렸지만 내 마음 한편에 여전히 남아있을 사람들과의 모든 순간들.

그 모든 것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아쉬움 속에서도,

'그래,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었어' 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기를.

후회는 남겠지만, 그래도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이 더 많았던, 그런 풍경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애써 웃고, 맛있는 걸 찾아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차피 모든 건 끝이 있겠지만, 그 끝이 오기 전까지는 최대한 많은 조각들을 모으고 싶다.

내 세계를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채워 넣고 싶다.

내 마지막 숨결이 닿는 그 순간,

'아, 그래도 꽤 괜찮은 세계를 만들었었네' 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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