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것들

by 이로

내가 너를 얼마나 알겠니.

스물여덟, 회사에서 막내 소리는 떼어냈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 조언을 해줄 만한 연배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녀석, 눈만 마주치면 나한테 질문을 던진다.

오늘 점심은 뭐 먹을지부터 시작해서, 자기 팀장은 왜 그러는 건지, 주말에 뭐 할지까지.

궁금한 게 많은 건지, 아니면 그냥 나를 붙잡고 싶은 건지 헷갈린다.

가끔은 그 눈빛에서 묘한 호기심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다.

걔는 신입이었다. 나랑은 딱 네 살 차이. 하지만 그 네 살 차이가 어떨 땐 십 년처럼 느껴졌다.

내가 처음 회사에 왔을 때 저렇게 해맑았나? 아마 그랬겠지. 망각은 축복이라 했던가.

그땐 나도 세상이 처음인 듯 두리번거렸을 것이다.

녀석의 해맑은 웃음을 볼 때마다, 내 안의 잊었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뭐랄까, 꼭 오래된 서랍에서 빛바랜 사진을 꺼내 보는 느낌이랄까.


지혜와 바보 사이

녀석은 종종 내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선배님, 제 생각에 이번 프로젝트는 이렇게 가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왜 다들 제 말을 안 듣죠?"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야, 그건 네가 아직 짬이 없어서 그래. 세상은 원래 그래.'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한다. 대신 빙그레 웃으며

"음,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아직 네가 모르는 부분도 있을 거야."라고 얼버무린다.

혹시라도 내 답에 실망할까 봐, 혹은 내 속마음을 들킬까 봐 나도 모르게 말을 아꼈다.

어떤 때는 녀석이 뱉는 말에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선배님, 저는 오히려 이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해왔던 방식이 아니라, 아예 새로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뻔한 길만 걷던 내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거다. 그러면 나는 또 한참을 생각한다.

'어? 얘 생각보다 똑똑한데? 아니면 그냥 운이 좋은 건가? 아니면 내가 바보였나?'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녀석이 날 어떤 눈으로 볼까 궁금해졌다.

혹시 내가 답답하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의외로 괜찮은 선배라고 생각할까?

정말이지, 네가 얼마나 지혜로운지, 네가 얼마나 바보 같은지 나도 모르겠다.

어떨 때는 너무 순수해서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같다가도,

또 어떨 때는 너무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내 뒤통수를 치는 것 같다.

그냥 나는 네가 혼자서 무언가를 깨닫고, 또 실수하는 걸 옆에서 지켜볼 뿐이다.

그 옆에 서서 너의 다음 행동을, 너의 다음 질문을, 왠지 모르게 기다리게 된다.


그냥, 지켜보기

어느 날이었다.

녀석이 회식 자리에서 술에 잔뜩 취해 주정을 부렸다.

평소엔 그렇게 똘똘한 척하더니, 술만 들어가면 그렇게 어린애가 없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붙잡고 겨우 택시에 태웠다.

축 늘어진 녀석을 부축하며, 왠지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허술한 면도 있구나.

다음 날, 녀석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나를 찾아왔다.

"선배님… 어제 제가 뭐 큰 실수라도…."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야, 다 괜찮아. 어제 너 웃겼다. 노래방에서 마이크 안 놓는 모습 보고 깜짝 놀랐네."

녀석은 그제야 안도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 끝에, 녀석의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고마움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나는 녀석이 실수하는 것을 볼 때면, 이상하게도 나 자신을 보는 것 같다.

나도 저랬지. 아니, 어쩌면 더 심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나를 말없이 지켜봐 주던 선배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대단한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

그저 내가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을 묵묵히 봐주었을 뿐이다.

그들의 시선이 나를 키웠다.

이제 내가 그런 시선을 녀석에게 주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녀석도 언젠가 나를 그렇게 기억할까.

아니,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냥 이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충분할까?


스스로를 자르지만 않는다면

나는 네가 자라는 것을 본다.

눈에 보이는 키가 아니라, 생각의 키, 마음의 키가 자라는 것을 말이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서툴렀던 네가, 이제는 제법 혼자서도 일을 처리하고,

때로는 나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네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던질 때마다, 나도 덩달아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걸 느낀다.

마치 너와 내가 함께 성장하는 기분이랄까.

물론, 여전히 너는 실수투성이다.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쟤는 왜 저럴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모든 시행착오가 너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네가 너무 다그쳐 스스로를 부러뜨리지만 않는다면, 너는 분명 더 단단해지고 더 크게 자랄 것이다.


나는 가끔 너를 보며 생각한다.

'이 녀석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혹은 '나는 과연 너에게 좋은 선배일까?'

답은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네가 스스로를 자르지만 않는다면, 계속해서 네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네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네가 방황하면 묵묵히 기다려줄 것이다.

그게 내가 너를 아는 방식이고, 또 나 자신을 알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그리고 가끔은 문득,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진다.

단순한 선배일까, 아니면 그 이상일까.

나도 모르게 너를 신경 쓰고, 너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이게 뭘까 싶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아니, 어쩌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고.

그 미묘한 궁금증이, 우리 사이의 공기를 채운다.

마치 새벽녘 안개처럼, 은은하게 번져가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