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모든 시계가 한꺼번에 숨을 멈췄다.
세상이 딱 0.1초 동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겼다.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눈을 조금 길게 깜빡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전 세계 모든 전자기기에서 정확히 0.1초의 시간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당황했다. 인터넷은 금세 괴담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정부는 단순한 기계적 결함일 뿐이라며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집단 착시일 뿐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뉴스도 계속 나왔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싶어 했다.
평범한 일상이 깨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세상은 다시 예전처럼 조용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진실은 전혀 달랐다.
관찰 기록 #247-E | 시뮬레이션 관리자 로그
"재부팅 완료. 소요 시간 0.1초."
우주인은 모니터 앞에 앉아 지구라는 이름의 낡은 프로그램을 다시 구동시켰다.
수천 년 동안 실행되어 온 이 시뮬레이션은 이제 곳곳에 오류가 쌓여 있었다.
시스템을 고치고 새로운 기능을 설치하는 것은 필수였다.
화면 속 인간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다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잠깐 멈췄다가 재생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완벽하다.
하지만 이번 업데이트에는 작은 변화를 추가했다. 실험적인 기능이다.
그들의 눈동자 색깔을 아주 조금 더 투명하고 푸르게 바꿔놓았다.
의식의 깊이를 0.03% 증가시키는 패치다.
우주인은 메모를 남긴다.
"시험체들은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것으로 예상됨. 다음 관찰까지 대기.
지구 시뮬레이션 버전 3.14.159로 업데이트 완료."
모니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일은 화성 시뮬레이션을 점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