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폭풍우는 자비가 없었습니다.
거대한 파도가 낡은 화물선을 집어삼켰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입안에는 비릿한 모래알이 가득했습니다.
사방은 끝도 없는 수평선뿐인 무인도였습니다.
해변 한가운데, 배와 함께 수장된 줄 알았던 그 기계가 있었습니다.
차가운 검은색 철제 상자.
원래 목적지대로라면 적국의 도시 한복판에서 터져야 했을 시한폭탄이었습니다.
배가 고파 눈앞이 흐릿해졌습니다.
나는 반쯤 미친 사람처럼 기계를 발로 찼습니다.
"차라리 지금 터져버려! 죽여달란 말이야!"
그때였습니다. 기계 내부에서 기계음이 들렸습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작은 배출구가 열렸습니다.
그 안에는 놀랍게도 따뜻한 야채수프 한 그릇이 놓여 있었습니다.
"어째서...?"
나는 허겁지겁 수프를 마셨습니다.
눈물이 섞인 맛이었습니다.
밤이 되자 섬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습니다.
하지만 기계의 몸체는 은은하게 달궈져 있었습니다.
나는 기계의 차가운 금속판에 얼굴을 기댔습니다.
안쪽에서 '틱, 틱' 하고 초읽기 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리는 공포가 아니라 다정한 심장 박동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습니다.
기계는 매일 아침 따뜻한 빵을 구워냈고,
점심에는 시원한 주스를, 저녁에는 단호박죽을 내주었습니다.
나는 기계에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오늘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떠들었습니다.
마침내 수평선 너머로 구조 헬기가 나타났습니다.
헬기에서 내린 특수 부대원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경악했습니다.
"모두 물러나! 폭발 임박이다! 저 기계에서 당장 떨어져!"
대원들은 나를 강제로 끌어냈습니다.
나는 기계를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쳤습니다.
"안 돼요! 저 친구는 나를 살려준 유일한 가족이에요! 건드리지 마세요!"
폭발물 제거반원이 조심스럽게 기계에 다가갔습니다.
그는 해체 작업을 위해 기계의 내부 회로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그 안에는 복잡한 회로 대신, 낯선 은색 칩 하나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럴 수가, 이건 폭발 제어 칩이 아니야. 고성능 생존 지원 칩이잖아?"
대원의 말에 나는 멍해졌습니다.
기계의 옆면에는 이 무기를 설계한 수석 기술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는 냉혹한 무기 제조자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칩에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평생 사람을 죽이는 기계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곧 죽게 된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세상에 용서를 구하고 싶어."
그는 전쟁을 위해 기계를 만드는 척하면서, 몰래 내부 설계를 전부 뒤바꿨던 것입니다.
그는 기계가 폭발해야 할 시간에 가장 따뜻한 음식을 내보내고,
기계가 파괴해야 할 장소에서 가장 안락한 쉼터를 제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대원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습니다.
"그 기술자는 이 기계를 완성하고 소리 없이 제거당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살리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이 칩을 심은 것이다."
나는 기계의 마지막 온기를 느꼈다.
죽음을 배달하던 나의 배는 사실, 어느 기술자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용서를 운반하고 있었다.
기계의 화면에는 기술자가 죽기 직전 입력했을 마지막 코드가 깜빡이고 있었다.
[Status: Weapon Deleted. Mission: Save a Human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