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내 눈앞에서 거대한 산 같은 파도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배는 장난감처럼 사정없이 흔들렸습니다.
하늘은 잉크를 뿌린 듯 검게 변했습니다.
번개가 칠 때마다 하얀 파도가 이빨을 드러냈습니다.
차가운 빗줄기가 얼굴을 때려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꽉 잡아! 놓치면 끝이야!"
형의 외침이 폭풍우 소리에 묻혔습니다.
우리는 젖은 밧줄을 생명줄처럼 움켜쥐었습니다.
배 안으로 들이친 물이 벌써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
금방이라도 배가 산산조각 날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떨었습니다.
이 끔찍한 바다 위에서 살아남기만을 기도했습니다.
그때, 멀리서 환한 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거칠었던 파도가 서서히 잦아들었습니다.
드디어 폭풍이 끝났습니다.
사방이 평화로운 정적에 잠겼습니다.
"자, 인제 그만 나와. 빨래 다 돌아갔단다."
엄마가 커다란 드럼세탁기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는 흠뻑 젖은 인형이 되어 빨래 바구니로 툭 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