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밑의 손님

#026

by 이로

나는 1년째 혼자 사는 여자 자취생이다.

이 방은 아주 좁고 허름하다. 누군가를 초대한 적도 없었다.

특히 남자가 이 문턱을 넘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랜만에 큰맘을 먹고 대청소를 시작했다.

무거운 소파를 낑낑대며 옆으로 밀어냈다.

쌓인 먼지 사이로 검고 매끄러운 가죽 구두가 보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누군가 몰래 내 집에 들어왔던 걸까?

내가 잠든 사이 누군가 이 좁은 방에 머물렀던 걸까?

소름이 돋아 팔에 닭살이 돋았다.

나는 당장 경찰에 신고하려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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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구두 안쪽에서 삐져나온 작은 종이 조각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손을 덜덜 떨며 그 종이를 펼쳤다. 거기에는 정갈한 내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 밤에는 왼쪽 구두를 숨길 차례. 그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천히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 속의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입꼬리를 올리자, 거울 속의 나는 조금 더 기괴하게 입을 벌려 웃었다.

나는 가구 배치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밤이 되면 내 안의 '그'가 나와서 모든 것을 다시 어지럽힐 테니까.

나는 구두를 원래 있던 소파 밑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벽장에 숨겨둔,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남자의 나머지 옷가지들을 확인하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내일은 넥타이를 숨겨야지."


나는 소파를 제자리로 밀어 놓았다. 그리고 방구석에 놓인 낡은 침대 아래로 손을 뻗었다.

거기에는 작은 철제 상자가 숨겨져 있었다.

상자 안에는 소파 밑에서 발견한 구두의 주인들이 남긴 물건이 가득했다.

먼저 낡은 은색 안경이 보였다. 지난달 복도에서 마주쳤던 옆집 남자의 것이다.

그날 이후 그는 보이지 않는다.

그 옆에는 가죽 지갑이 있었다. 지갑 안에는 택배 기사의 신분증이 그대로 꽂혀 있었다.

상자 가장 깊은 곳에는 피 묻은 단추 몇 개가 굴러다녔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침대 위에 나열했다.

마치 아주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러웠다.

물건들의 주인은 모두 이 방을 거쳐 갔다.

다만 다시는 그 문을 열고 나가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벽장을 열었다.

벽장 안에는 커다란 비닐 봉투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봉투마다 사람 형체의 덩어리들이 묵직하게 담겨 있었다.

"이제 짝을 맞춰줄게."

나는 소파 밑에서 꺼낸 왼쪽 구두를 벽장 안, 발목만 남은 봉투 앞에 가지런히 놓아주었다.

이제야 방 안이 완벽하게 정리된 기분이었다.


벽장 속 봉투를 정리하던 그때였다. 고요한 방안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쾅, 쾅, 쾅!

"계세요? 집주인입니다. 수돗물이 밑에 층으로 샌다고 해서요!"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얼어붙은 채 벽장 문을 닫았다.

하지만 봉투 하나가 문틈에 끼어 닫히지 않았다.

그 안에서 차가운 손가락 하나가 삐져나와 있었다.

"잠시만요! 지금 옷을 갈아입고 있어서요!"

나는 비명을 지르듯 대답했다.

필사적으로 봉투를 발로 밀어 넣었다.

겨우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걸었다.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인자하게만 보이던 집주인 할아버지가 공구함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묘한 미소를 지었다.

"학생, 안색이 안 좋네. 방 청소하느라 힘들었나 봐?"

그는 나를 밀치듯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시선은 곧장 벽장으로 향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벽장 밑으로 봉투에서 흘러나온 검은 액체가 조금씩 번지고 있었다.

"어이쿠, 저기 벽장 밑에 뭐가 샜네. 내가 좀 봐줄까?"

할아버지가 벽장 손잡이를 잡으려 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내 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학생, 걱정 마. 나도 소파 밑에 구두 숨기는 거 좋아하거든."

할아버지는 공구함 대신 자기 주머니에서 피 묻은 열쇠 꾸러미를 꺼내 보였다.

할아버지는 내 손에 묻은 검은 얼룩을 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벽장 문을 열었다.

쏟아져 나온 비닐 봉투들을 보며 그는 혀를 찼다.

"학생, 매듭이 너무 엉성해. 이러면 냄새가 금방 새어 나간다니까."

할아버지는 공구함에서 두꺼운 공업용 테이프를 꺼냈다.

그는 마치 평생 이 일을 해온 사람처럼 능숙하게 봉투를 밀봉하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옆에 놓인 걸레를 들고 바닥의 핏자국을 닦아냈다.

"이 방, 전 세입자도 참 깔끔했지. 그런데 그 친구도 소파 밑에 뭘 자꾸 흘리고 다니더라고."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나는 문득 1년 전 이 방을 계약할 때 집주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전 세입자가 갑자기 고향으로 내려가서 짐을 다 두고 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함께 묵직한 봉투들을 들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할아버지의 낡은 트럭 짐칸에는 이미 비슷한 크기의 봉투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봉투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학생 덕분에 이번 달은 수확이 좋네. 같이 교외로 드라이브나 갈까?"

할아버지가 운전대를 잡으며 물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신선한 '봉투'처럼 보였다.

트럭이 도시를 벗어나 깊은 산속으로 향할 때, 나는 할아버지의 가방 안에서 낯익은 물건을 발견했다.

그것은 내가 오늘 아침 소파 밑에서 찾았던 구두와 똑같은 디자인의 오른쪽 구두였다.

"할아버지, 그 구두는 어디서 났어요?"

내 질문에 할아버지는 백미러로 나를 보며 알 수 없는 듯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아, 이거? 어제 새로 들어오기로 한 학생이 신고 있던 거야. 학생도 곧 만날 수 있을 걸세. 소파 밑에서 말이야."

순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방에 왜 내 물건이 아닌 '남자의 물건'들이 가득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사냥꾼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할아버지가 놓아둔 거대한 덫 속에서, 먼저 잡힌 사냥감들의 유품을 정리하던 마지막 미끼였을 뿐이다.

트럭이 멈춘 곳은 인적이 끊긴 낡은 폐차장이었다.

할아버지는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사방은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나는 문을 열고 내리려 했지만, 문고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안쪽 손잡이가 아예 제거되어 있었다.

"할아버지, 문이 안 열려요!"

내가 창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트럭 뒤 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짐칸에 실려 있던 봉투들을 하나씩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봉투들이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가 내 쪽 창문으로 다가왔다.


그는 품 안에서 내가 아침에 보았던 그 오른쪽 구두를 꺼내 창문에 바짝 들이댔다.

"학생, 이 구두 주인 말이야. 아까 내가 거짓말을 좀 했어."

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이건 새로 올 학생 게 아니야. 1년 전에 이 방에서 사라진 '진짜' 주인 거지.

학생은 그동안 그 친구가 쓰던 침대, 그 친구가 쓰던 옷장을 쓰면서 본인이 집주인이라도 된 줄 알았나 봐?"

머릿속이 하얘졌다. 생각해보니 이 방에 올 때 내 짐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왜 내가 이 집에 원래 살던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을까.

할아버지가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트럭의 조수석 시트가 뒤로 확 젖혀졌다.

시트 아래 공간에서 수십 개의 정신과 약병이 쏟아져 나왔다.

약병에는 내 이름과 함께 '기억 상실 및 망상 장애'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학생은 매달 청소를 하고, 매달 사람을 죽였다고 착각하지.

그리고 매달 내가 치워준다는 사실도 잊어버려."

할아버지는 창문 틈으로 가스 호스를 밀어 넣었다.

"자, 이제 청소 끝낼 시간이야. 내일 아침에 다시 입주해야지? 기억을 다 비운 채로 말이야."

의식이 멀어지며 따스한 햇살이 창가를 비추며 눈이 부셨다.


"아, 허리야. 방이 왜 이렇게 지저분해?"

나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큰맘 먹고 대청소를 하는 날이다.

1년째 혼자 사는 이 자취방은 좁지만 아늑했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를 닦고, 책상을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구석에 놓인 무거운 소파를 힘겹게 밀어냈다.

그 순간, 먼지 더미 속에서 검고 매끄러운 물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낯선 남자의 구두 한 짝이었다.

"어? 이게 왜 여기 있지?"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구두를 집어 들었다.

처음 보는 물건인데 왠지 모르게 손에 착 감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현관문 밖에서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생, 자나? 오늘 새로 입주한 날인데 방은 좀 마음에 드나?"

집주인 할아버지였다.

나는 구두를 든 채 문을 열어 그를 반겼다.

할아버지는 내 손에 든 구두를 보더니 아주 만족스러운 듯 활짝 웃었다.

"아이고, 벌써 찾았네. 그거 아주 아끼는 물건이 될 게야. 자, 이제 청소 시작해야지?"

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아주 평온했다.

나는 구두를 소파 밑 가장 깊숙한 곳에 다시 밀어 넣었다.

내일이면 또다시 이 구두를 찾으며 즐거운 아침을 맞이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낡은 관리인실에 앉아 모니터를 응시했다.

화면 속에는 여자가 소파 밑에서 구두를 꺼내며 의아해하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장부에 오늘의 날짜와 함께 '365회차 입주 완료'라고 적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수십 개의 똑같은 검은 구두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구두들은 모두 왼쪽뿐이었다.

"매번 처음인 것처럼 좋아하니 다행이구먼."

할아버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창밖을 보았다.

복도에는 방금 막 이사를 온 듯한 또 다른 청년이 짐을 들고 서성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에게 다가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열쇠 꾸러미를 건넸다.

"학생, 이 방은 아주 특별해. 소파 밑에 전 주인이 두고 간 선물이 있을지도 모르거든."

청년이 방으로 들어가자, 할아버지는 조용히 복도의 CCTV 각도를 조절했다.

내일 아침이면 또 다른 방에서 "소파 밑에서 그것이 나왔다"는 비명이 들릴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다시 공구함을 들고 그 방 문을 두드릴 준비를 마쳤다.

모니터 속 주인공은 이제 막 창문을 닦으며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가스 호스의 흔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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