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친절

#025

by 이로

침대 밑에는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가장 아끼던 낡은 붉은 상자가 사라졌다.

어제 분명 베개 옆에 두었다.

잠들기 전까지 손으로 쓰다듬으며 그 촉감을 확인했다.

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뻗은 손에는 서늘한 바닥의 냉기만 만져졌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온 집안을 미친 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소파 방석을 전부 들어내고, 싱크대 밑을 기어다녔다.

냉장고 위 먼지 쌓인 구석까지 확인했다.

옷장 안의 모든 옷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눈 앞을 가렸다.

그 상자는 내 인생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것이 없으면 내 완벽한 미래는 영원히 사라진다.

거실 한복판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입술이 바르르 떨리고 손끝이 차가워졌다.


그때, 도어락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내가 쇼핑백을 여러 개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왔다.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여보, 아직 안 자고 있었어?"

아내가 다가오자 달콤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의 오른손 약지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화려한 보석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나는 불길한 예감에 숨이 턱 막혔다.

"내 침대 옆에 있던 붉은 상자, 네가 건드렸어?"

최대한 차분하게 물으려 했지만, 목소리는 힘없이 갈라졌다.

아내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활짝 웃었다.

"아, 그 낡고 지저분한 상자? 안 그래도 당신 물건 정리 좀 하려 했어.

오늘 아침에 고물상 할아버지한테 팔아버렸어.

안에 종이 뭉치만 가득하길래 그냥 쓰레기인 줄 알았지.

근데 그 상자 자체가 골동품이라며? 덕분에 이 반지 샀어. 예쁘지?"

"다녀올게, 여보!"

문이 닫히는 육중한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날카로운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엔진 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현관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닫힌 문만 바라보았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슬프게 우는 남편 연기를 하는 것.

그리고 고물상 할아버지가 그 붉은 상자를 태워버렸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초인종 소리가 고요한 집안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계세요? 여기 이 집 맞죠?"


현관문을 열자 땀에 젖은 고물상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붉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나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아이구, 젊은 양반. 아까 부인이 이걸 버리고 갔는데, 내가 열어보니까 아주 귀한 종이가 들어있더라고. 보험 증서 맞지? 큰일 날 뻔했어."

나는 낚아채듯 상자를 뺏어 들었다.

안에는 아내의 이름이 적힌 사망 보험 증서가 그대로 있었다.

이제 됐다. 아내는 죽을 것이고, 내 손에는 이 증서가 있다.

완벽한 승리였다. 할아버지에게 만 원짜리 몇 장을 쥐여주며 서둘러 보내려 했다.


"그런데 젊은 양반, 하나 더 있어."

할아버지가 낡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그것은 조금 전 내가 받은 증서와 똑같이 생긴, 또 다른 보험 증서였다.

"상자 이중 바닥에 종이가 한 장 더 붙어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떼어왔지."

나는 그 종이를 받아서 들었다. 그리고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 증서의 피보험자는 아내가 아니었다. 바로 내 이름이었다.

그리고 보험금을 받는 수혜자의 이름에는 아내의 이름이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증서 하단에 적힌 가입 날짜는 어제였다.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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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부인이 아까 내 차로 이 상자를 옮기면서 그러더군. 남편이 곧 잠들 테니 깨우지 말고, 이 편지를 전해달라고."

할아버지가 건넨 작은 쪽지에는 아내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여보, 당신 차 브레이크 고장 났더라. 위험하니까 내 차 타고 나가. 내 차 브레이크는 오늘 아침에 새로 수리했어. 당신 보험금은 내가 잘 쓸게. 잘 자.'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소리는 사고 현장이 아니라, 우리 집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젯밤, 아내는 잠들지 않았다.

나는 아내가 깊이 잠든 줄 알았다.

고른 숨소리를 확인하고 살금살금 침대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내가 방문을 닫는 순간, 아내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아내는 이미 일주일 전부터 내 수상한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서재에서 몰래 검색하던 '브레이크 파손 방법'과 '사망 보험금 청구 절차' 기록을 모두 복구해 읽었기 때문이다.


내가 주차장에서 기름때를 묻히며 차를 만지는 동안, 아내는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거실에 숨겨둔 붉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 속에는 나만 알고 있다고 믿었던 보험 증서가 들어 있었다.

아내는 빙긋 웃으며 펜을 들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똑같은 양식의 종이에 내 이름을 적어 넣었다. 수혜자 칸에는 자신의 이름을 아주 정성스럽게 썼다.

"여보, 당신은 참 허술해."

아내는 내가 아끼는 그 붉은 상자를 고물상 할아버지에게 넘기기로 계획했다.

내가 당황해서 집안을 뒤지는 동안, 그녀는 유유히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화장할 생각이었다.

내가 아내의 컵에 약을 타려 고민할 때, 아내는 이미 내 영양제 통에 치명적인 약을 채워 넣었다. 내가 그녀의 차를 고장 낼 때, 그녀는 내 차의 블랙박스 영상을 클라우드로 전송하고 있었다.


"당신은 죽어서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게 될 거야."

아내는 어둠 속에서 내 베개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것이 내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받는 마지막 친절이었다는 것을,

나는 오늘 아침까지도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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