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의 진실

#29

by 이로

2521년, 지구는 더 이상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니었다.

'새녘'호가 차가운 대기를 뚫고 궤도를 이탈할 당시, 지구는 거대한 잿빛에 덮인 임종 직전의 노인과 같았다.

인류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야만 했던 이유는 단 하나의 사건이 아닌,

수 세기에 걸쳐 쌓여온 재앙의 퇴적물이 임계점을 넘었기 때문이었다.


1. 대기의 질식과 광합성의 종말

가장 먼저 찾아온 재앙은 산소의 고갈이었다.

수백 년간 이어진 무분별한 탄소 배출과 대양의 산성화는 지구 산소의 70%를 생성하던 해양 플랑크톤을 절멸시켰다.

설상가상으로 아마존을 비롯한 거대 밀림들은 대화재와 가뭄으로 인해 '탄소 흡수원'에서 '탄소 배출원'으로 변질되었다.

2500년대에 들어서자, 지표면의 산소 농도는 인간이 보조 장치 없이 호흡할 수 없는 수준인 12%까지 추락했다.

부유층은 거대한 돔 시티 안에서 인공 산소를 마시며 연명했지만, 가난한 자들은 매일 아침 길가에 버려진 '질식사한 시체'들을 치우며 하루를 시작했다.

파란 하늘은 역사책 속의 전설이 되었고, 지구의 하늘은 황산염 입자와 미세먼지가 뒤섞인 영원한 납빛 구름으로 뒤덮였다.


2. 열사병에 걸린 행성

기온 상승은 통제 불능의 상태였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는 완전히 사라졌고, 그 자리에 갇혀 있던 고대 메탄 가스층이 분출되면서 지구는 거대한 온실이 되었다.

적도 부근의 국가들은 '살 수 없는 땅'으로 선포되었다.

낮 기온이 60°C를 웃도는 환경에서 단 몇 분의 노출만으로도 인간의 단백질은 변성되기 시작했다.

해수면 상승은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해안 도시들을 모두 수몰시켰다.

뉴욕, 런던, 서울, 도쿄는 물밑으로 가라앉았고, 인류는 내륙의 고산 지대로 밀려나 서로의 자원을 뺏기 위해 끝없는 전쟁을 벌였다.

땅은 산성화되어 어떤 작물도 자라지 않았고, 인류는 이끼와 합성 단백질만으로 연명하는 처참한 신세가 되었다.

3. 지구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인류 연방은, 단순히 당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행성 심폐소생술’을 위한 최후의 도박을 결행했다.

'새녘'호의 임무는 죽어가는 어머니 지구를 살릴 '씨앗'을 찾아 돌아오는 것이었다.

외계 행성 '가이아'에 지구의 생태계를 복구할 수 있는 특수한 유기물질과 청정 에너원이 존재한다는 관측 결과를 토대로 '리턴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새녘'호의 임무는 명확했다.

가이아에 도착해 그곳의 자원을 우주선에 가득 싣고, 다시 지구로 돌아와 대기를 정화하고 얼어붙은 광합성의 불씨를 되살리는 것. 즉, 새녘호는 '수혈 차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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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돌아오지 않으려는 자들, 돌아가야만 하는 함장

문제는 항해 10년 차에 발생했다.

지구의 참혹한 환경을 목격하며 자라온 선원들에게 "다시 그 지옥으로 돌아가야 한다"라는 임무는 가혹했다. "왜 우리가 그 죽어가는 행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자원을 날라야 하나?

차라리 가이아에 정착해 우리끼리 새 문명을 세우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절망과 허무주의가 선원들을 덮쳤다. 그들은 지구에 남겨진 가족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 치부했고, 복귀 임무를 거부하며 무기력증에 빠졌다.

함장 김진석은 이대로라면 가이아에 도착하기도 전에 모두가 우울증으로 자멸하거나, 도착하더라도 아무도 돌아가려 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5. 2531년 5월, 김진석 함장의 비밀 로그

"인류는 본능적으로 자기 생존을 우선시한다. '지구 구원'이라는 거창한 명분은 그들에게 더 이상 동력이 되지 않는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그들이 가장 증오하는 존재를 만들어야 한다. 증오심은 그 결과와 관계없이 하루하루를 지탱하게 해 줄 동력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존재가 '지구를 버리고 우리끼리 살자'고 주장하게 만들어야 한다."

함장은 보급관 최두식을 끌어들였다. 나는 이 연극의 유일한 공모자, 보급관 최두식을 불렀다. 그는 내 계획을 듣고 내 뺨을 때렸다. "미쳤습니까, 함장님?" 나는 피 섞인 침을 뱉으며 웃었다. "좋아, 보급관. 바로 그 분노야. 그걸 선원들에게 전해."


6. 2531년 12월 20일, 김진석 함장의 비밀 로그

계획은 적중했다. 최두식은 선원들에게 "함장이 우리를 죽음의 구덩이로 몰아넣고 있다"라고 메시지를 퍼뜨렸다. 나는 일부러 기강을 잔인하게 잡았다. 사소한 잘못에도 태형을 내렸고, 식사량을 줄였다.

선원들의 우울증은 순식간에 나를 향한 '증오'로 치환되었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사내들이 최두식이 지시한 '비밀 집회'를 위해 움직인다. 그들의 심장 박동수가 올라갔다. 생존 본능이 깨어난 것이다.


7. 최두식 보급관의 고백: 조작된 반란

함장은 나, 최두식에게 지시했다. "보급관, 자네는 선원들의 편에 서서 나를 몰아내게. 그리고 선원들에게 '우리는 지구로 돌아가지 않는다! 가이아는 우리의 것이다!'라고 선포하게."

나는 경악했다. "하지만 함장님, 그러면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어떡합니까? 우리 임무는 복귀 아닙니까?"

함장이 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두식아, 지금 저들의 상태를 봐라. 의욕도 희망도 없다. 하지만 내가 '강제로 복귀시키려는 폭군'이 되면, 저들은 나를 이기기 위해, 그리고 가이아를 쟁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남을 거다. 그리고 가이아에 도착해 풍요를 맛보고 나면 그들에게 이렇게 속삭여라. '우리의 위대한 승리를 지구의 남은 동포들에게 과시하러 가자'고 말이지.“

나의 지옥은 그날 시작되었다. 나는 매일 밤 거울 앞에서 표정을 연습했다. 함장의 독재에 치를 떨며 구원을 바라는, 절망에 빠진 보급관의 얼굴을. 선원들 앞에서 함장의 멱살을 잡고 소리칠 때마다 내 심장은 비명을 질렀다.

내가 모욕하는 함장은 내 평생의 전우이자, 인류의 짐을 홀로 짊어진 김진석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를 더 잔인하게 몰아세울수록, 선원들의 눈에는 서릿발 같은 생기가 돌았다.

"함장이 숨긴 진실을 찾아야 합니다." 내 입을 통해 나가는 목소리는 정의로웠으나, 대본을 쓴 함장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어느 날 함장이 명령했다. "선원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채찍질하게." 나는 거부했지만, 함장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두식아, 간청이다. 그들이 나를 죽일 듯 미워해야만 이 배가 산다." 결국 나는 채찍을 들었다. 함장의 등에 붉은 선이 그어질 때마다 선원들은 환호했다. 그 환호성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비명이었다.

8. 2532년 2월 14일, 김진석 함장의 마지막 기록

오늘, 나는 자신을 폐위시켰다.

선원들이 깃발을 들고 함장실로 들이닥쳤다. 그들의 눈에는 예전의 허무함 대신, 혁명에 성공했다는 광기 어린 자부심이 가득했다. 나는 최두식의 손에 이끌려 끌려 나가며 웃었다.

"너희는 최두식에게 속고 있다!"

내가 비명을 지를수록 그들은 결속했다. 최두식은 선포했다. "이제부터 우리가 이 배의 주인이다! 함장이 숨긴 항로를 우리가 직접 개척한다!"

실제로 항로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운명을 바꿨다고 믿는다. 스스로 항해를 통제한다는 착각이 그들을 살게 할 것이다. 나라는 악마를 이겨낸 기억이 그들을 버티게 할 테니까.


9. 위대한 복귀의 시작

가이아 행성에 도착한 '새녘'호의 선원들은 자신들이 함장 김진석을 이겼다고 믿었다.

그들은 가이아의 풍요로운 자원을 채굴하며 활력을 되찾았다.

이제 최두식은 새로운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가이아를 정복했다. 이제 우리의 기술과 자원을 들고 지구로 돌아가, 우리를 탄압했던 구체제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자!"

선원들은 환호하며 지구로 향하는 귀환 항로에 몸을 실었다. 그들은 복수와 정복의 이름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결국 그것은 함장이 그토록 바랐던 '인류의 귀환'이자 '지구의 회생'이었다.

가이아의 물질과 대기를 가득 실은 채 지구로 향하는 우주선의 함장 석은 비어 있었다. 바닥에는 김진석 함장의 낡은 훈장이 떨어져 있었고, 그 뒷면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속여서라도 살려야 했다. 돌아가는 이유가 증오일지언정, 너희의 발걸음이 지구의 숨통을 틔울 것이기에.“

에필로그: 최두식의 마지막 고백

지구의 궤도가 눈으로 확인되기 시작한 날, 나는 함장이 생전에 남겼던 낡은 유성 펜으로 일지의 마지막 장을 채웠다.

사람들은 지금 축제 분위기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이아의 보물을 약탈해 지구를 ‘정복’하러 가는 위대한 혁명군이라 믿고 있다. 스피커에서는 승리의 찬가가 울려 퍼지며 선원들의 심장을 달구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거대한 함선이 싣고 가는 것은 정복의 무기가 아니라, 지구의 허파를 다시 숨 쉬게 할 고농축 산소와 정화된 씨앗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정복자가 아니라, 가장 비겁하고도 처절한 방식으로 고향에 수혈하러 가는 배달부들일 뿐이다.

가끔 홀로그램 영정 속에 갇힌 김진석 함장의 얼굴을 본다. 사람들은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지나가지만, 나는 그 차가운 유리창을 매일 밤 소매로 닦아낸다.

"함장님, 당신이 옳았습니다."

인간은 숭고한 희생이라는 단어보다, 찬란한 전리품이라는 거짓말에 더 쉽게 목숨을 걸더군요. 당신은 스스로 악마가 되어 인류를 천국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당신이 설계한 그 지독한 증오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진작에 우주 미아가 되어 서로가 공격하며 절멸했을 겁니다.

이제 곧 대기권 진입이다. 저 밑, 잿빛으로 죽어가던 대지에 푸른 안개가 다시 채워지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깨닫게 될까? 자신들이 그토록 증오했던 독재자가 사실은 지구의 마지막 숨구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영혼까지 불태웠다는 것을.

아니, 끝까지 몰라야 한다. 진실은 나 한 명으로 족하다.

사람들은 승리감에 도취해 지구를 살려낼 것이고, 나는 기꺼이 그들의 비웃음을 사며 당신의 비밀을 품고 무덤으로 갈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명령이었고, 내 마지막 충성이니까.

"함장님, 보고 계십니까? 우리가 돌아왔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러나 당신을 가장 미워하게 했던 그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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