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의 사람들

#031-1

by 이로

그 마을은 지도에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 작은 산골짜기에 매달려 있었다. 한때는 다랑논의 벼 이삭이 황금색 물결을 이루었을 평화로운 곳이었겠지만, 전쟁의 포화가 쏟아진 자리는 처참했다.

전선의 산자락은 단 한 순간도 고요한 적이 없었다. 밤공기는 포성으로 진동했고, 대호는 어두운 참호 속에 누워 정체 모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귀신처럼 목덜미를 휘감으며 '너는 살아서 이 산에서 내려가지 못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는 공포였다.

대호의 소대원들은 만난 지 불과 몇 달 되지 않은 사이였다. 하지만 낙동강 전선에서부터 이 이름 없는 고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뙤약볕과 빗줄기, 그리고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서로의 공포를 느끼며 버텼다. 그들의 소원은 오직 하나, 고향집 마루에 앉아 어머니가 차려준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알고 있었다. 설령 돌아간다 해도,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영혼의 일부는 영영 되찾지 못할 것임을.

어느 비 내리는 아침, 대호의 소대는 기습받은 산골 마을 근처에 매복했다. 초가집들은 잿더미가 되어 연기를 뿜고 있었고, 쏟아지는 빗줄기는 학살의 비명을 지워버리려는 듯 처절하게 내리쳤다. 화약 냄새와 부패한 악취가 목구멍까지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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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반쯤 무너진 외양간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호는 숨을 멈추고 총구를 겨누었다. 모퉁이를 돌아 나갔을 때, 그곳에는 적군도 민간인도 아닌, 비에 젖은 강아지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하얀 진돗개였다. 녀석은 곧 죽음이 닥칠 것처럼 떨고 있었다. 대호는 총을 내리고 주머니에서 아껴둔 건빵 한 조각을 내밀었다.

"이리 오너라. 괜찮다, 얘야."

그것이 '백구'와의 첫 만남이었다. 대호는 부대로 돌아가는 길에 녀석을 품에 안고 산에서 내려왔다. 선임하사가 "그놈은 또 왜 달고 오느냐"며 혀를 찼지만, 대호는 녀석을 어깨에 메고 부대까지 걸었다. 그날 밤, 대호의 군화 위에서 잠든 백구를 보며 소대원들은 오랜만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백구는 대호의 그림자가 되었다. 대호는 녀석의 목에 낡은 가죽 끈을 매고 자신의 여분 군번줄을 달아주었다. 백구는 훌륭한 파수꾼이었다.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적의 움직임을 가장 먼저 알아챘다. 녀석 덕분에 소대는 여러 차례 기습의 위기에서 벗어났고, 백구는 어느덧 소대의 마스코트이자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대호는 틈날 때마다 고향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어머니, 이곳에서 하얀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났어요. 이름은 백구라 지었습니다. 제 군번줄을 달아주었으니, 녀석도 이제 어엿한 국군입니다. 백구는 귀가 밝아 위험이 닥치면 미리 알려줘요. 녀석을 보고 있으면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시래깃국 생각이 납니다. 제 생일이 되면 밤하늘의 별을 보며 어머니를 생각할게요. 전쟁이 끝나면 녀석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겠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자비가 없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저녁, 예상치 못한 박격포탄이 소대 진지에 떨어졌다. 대호는 본능적으로 옆에 있던 백구를 자신의 몸 아래로 밀어 넣었다. 굉음과 함께 녀석을 지켜낸 대신 자신의 가슴을 내주었다.

백구는 대호의 식어가는 머리를 코로 건드리며 낑낑거렸다. 녀석은 피로 물든 땅 위에서 가장 친한 친구 곁을 지키며 밤새 울었다. 전쟁은 계속되었지만, 대호의 시간은 그곳에서 멈추었다.

대호의 유해가 고향으로 돌아오던 날, 백구는 태극기가 덮인 관 옆을 떠나지 않았다. 전쟁터를 누비던 활기찬 모습은 사라지고, 녀석의 눈에는 깊은 슬픔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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