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빈 페이지

by 이로

요즘 ‘나’라는 인간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매일 무언가를 읽고, 보고, 듣는다.

활자 속에서 세상을 만나고, 스크린 속에서 삶의 단편들을 엿본다.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몸을 흔들거나, 가사 한 줄에 마음을 뺏기기도 한다.

그렇게 매일매일, 내가 읽은 책, 내가 본 영화, 내가 들었던 음악.

이게 다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나를 설명하는 데이터’ 같은 게 존재할까?


책장에서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낼 때가 있다.

낡은 종이 냄새를 맡으며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 책을 처음 읽었던 ‘나’가 떠오른다.

어떤 마음으로 글자를 따라갔고, 어떤 부분에 밑줄을 그었는지 생생하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분명 달랐지만, 그 책은 나를 이루는 한 조각이었다.

마치 퍼즐 조각처럼, 하나하나 맞춰가다 보면 '나'라는 그림이 완성될 것만 같다.


영화도 비슷하다.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다시 보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의 대사에 공감하고, 그들의 슬픔에 눈물 흘리고, 기쁨에 함께 웃는다.

영화 속 세상이 잠시나마 내 세상이 되는 경험.

그렇게 영화는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내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한몫한다.

밤잠 설쳤던 기억마저도 나를 설명하는 한 부분이겠지.


음악은 또 어떻고.

특정 계절에 들었던 노래는 그 계절을 떠올리게 하고,

특정 사람과 함께 들었던 음악은 그 사람을 추억하게 한다.

슬플 때 들었던 발라드는 감정을 증폭시키고,

신나는 댄스곡은 찌뿌둥한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음악은 내 기분을 좌우하고, 내가 미처 몰랐던 내면의 감정들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이 모든 문화적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데이터가 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책 목록만 봐도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즐겨 보는 영화 장르나, 즐겨 듣는 음악 취향을 통해서도

내 성격이나 가치관을 짐작할 수 있을 거다.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고 소비하는 행위는 결국 나의 관심사,

나의 취향, 나의 정체성을 반영하니까. 마치 MBTI처럼.


하지만 그것만으로 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엔 솔직히 좀 허접한 소설도 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보고 깔깔거리는 영화도 있고,

‘감성팔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르는 음악도 즐겨 듣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모습과, 내밀한 나의 모습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내가 대외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나'와 실제의 '나'는 다를 수도 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가? 뭐, 나는 양쪽 다인 듯.

이쯤 되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참 복잡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명확한 정의로 규정하기 어려운,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유기체니까.

마치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르며, 매 순간 새로운 물로 채워지는 존재.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사랑한 사람들, 나를 사랑한 사람들.

이 관계들이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나'라는 존재를 인식한다.

누군가의 아들, 딸, 친구, 연인, 동료… 이 모든 역할이 모여

나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를 가르쳐 준 선생님, 힘든 시기에 곁을 지켜준 친구들, 아낌없는 사랑을 준 가족들.

그들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영향을 주었다.

때로는 격려로, 때로는 따끔한 충고로 나를 성장시켰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찔하다, 정말.


특히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나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의 나는 세상 그 무엇보다 행복하고, 용감하며, 너그러운 사람이 된다.

동시에 질투심에 눈이 멀고, 이기적이며, 나약한 모습도 드러낸다.

사랑은 나를 가장 찬란하게도, 가장 초라하게도 만든다.

나를 사랑한 사람들은 또 어떤가.

그들은 내가 미처 몰랐던 나의 장점들을 발견해 주고,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며 나를 빛나게 한다.

괜히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이 모든 관계 속에서 형성된 나의 모습들.

외향적인 ‘나’, 내향적인 ‘나’, 유머러스한 ‘나’, 진지한 ‘나’,

때론 차갑고, 때론 따뜻한 ‘나’. 이 다양한 가면들이 모여

‘나’라는 인격을 만든다고 볼 수 있다.


관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변모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합하면 내가 거기에 있을까?

내가 읽은 책들, 내가 본 영화들, 내가 들었던 음악들.

그리고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 내가 사랑한 사람들, 나를 사랑한 사람들.

이 모든 경험과 관계의 총합이 곧 ‘나’일까?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나의 기억, 나의 경험, 나의 관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마치 긴긴 역사를 가진 박물관처럼,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유물들이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을 지워야 거기에 내가 있을까?

만약 내가 읽었던 모든 책을 잊고, 봤던 모든 영화를 기억하지 못하고,

들었던 모든 음악을 지워버린다면?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상실한다면?

그때도 ‘나’라는 존재는 남아있을까?

왠지 모르게 섬뜩하면서도, 동시에 해방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모든 외부적인 요소들을 걷어냈을 때, 과연 내 안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순수한 ‘나’의 본질은 무엇일까? 아무런 정보도, 아무런 관계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이것은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듯 나 자신을 파고드는 질문이다.

한 겹 한 겹 벗겨내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텅 빈 속만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하지만 동시에, 그 텅 빈 공간이야말로 어떤 것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진정한 ‘나’의 시작점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

결론은 아직 내릴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답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라는 존재는 단순히 외부의 정보나 관계의 총합으로 설명될 수 없는, 훨씬 더 복잡하고 심오한 무엇이라는 것.

동시에, 외부의 모든 것들을 흡수하고 반영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존재라는 것.

오늘도 나는 내가 읽을 새로운 책을 고르고, 볼 영화를 탐색하며, 들을 음악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기존의 관계들을 다져간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나’를 만들어가고,

또 ‘나’를 지워가며 진정한 나를 찾아 헤맬 것이다.

어쩌면 이 과정 자체가 ‘나’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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