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나무에게서 배운 자유

by 이로

아침 산책길.

늘 지나치던 공원 한 귀퉁이, 그곳엔 키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나무 한 그루가 묵묵히 서 있다. 굵은 가지들은 사방으로 뻗어 있고,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가을엔 붉게 물든 잎으로 눈을 즐겁게 해 줬다. 겨울에도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녀석.

매일 보는데도 볼 때마다 궁금증이 샘솟는다.

쟤는 왜 늘 같은 자리에 있을까?


새삼스러운 의문이고 바보 같은 질문일지도 모른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한다.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보낸다.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햇살을 맞고, 비바람을 견디며 살아간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저 나무는 얼마나 답답할까? 얼마나 온 세상을 보고 싶을까?

저 높은 가지 끝에 앉아 쉬어가는 새들을 보며 얼마나 새들이 부러울까?

훨훨 날아다니며 세상 구경하는 새들의 자유가, 제자리에서 꼼짝 못 하는 나무에게는 얼마나 큰 동경의 대상일까.


상상해 본다.

나무 입장에서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 봄에는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는 풍경을 가장 먼저 보겠지.

여름엔 아이들이 그늘 아래서 재잘거리고, 연인들이 손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가을엔 낙엽 지고, 겨울엔 하얀 눈이 세상을 덮는 장면을 고스란히 담아낼 것이다.

계절 변화와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켜보는 존재.

어쩌면 나무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 녀석, 생각보다 눈치도 빠를지 모른다.


그러다가 문득, 나 자신을 본다.

나는 나무와 다르다. 움직일 수 있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으며,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다.

저 나무가 그토록 부러워할 자유를 나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때때로 저 나무처럼 ‘같은 자리에 묶여 있다’고 느낄까?

몸은 움직일 수 있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변화를 거부할 때,

나는 물리적으로는 움직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저 나무와 다를 바 없는 ‘같은 자리’에 갇혀 있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무는 자의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지만, 나는 자의로 움직이지 않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누가 더 답답한 건지 헷갈린다.

이럴 거면 차라리 뿌리내리고 한 곳에 쭉 사는 게 나을지도.


가끔은 그런 생각에 빠져 우울해지기도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은 저만치 앞서 나가는 것 같은데,

나만 홀로 멈춰 서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 저 나무처럼,

뿌리 박힌 채 세상의 변화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저 나무가 부러워하는 자유를 가졌으면서, 왜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는 거야?"

질문은 언제나 나에게로 돌아온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무에게도 나름의 지혜가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대신, 나무는 한 자리에서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자신의 몸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품는다.

새들이 둥지를 틀고, 다람쥐가 열매를 숨기고, 사람들은 그 아래서 평화를 찾는다.

나무는 움직이지 않지만, 그 존재 자체로 주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움직임의 자유가 없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자리에 머무르며 더 큰 존재가 된다.

역시 ‘존버’의 미학은 나무가 원조다.


그러면 나는?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나는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가졌지만, 때로는 그 자유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나무처럼 한자리에 머무르며 깊이를 더할 수도 있다.

어떤 날은 새로운 곳으로 떠나 세상을 탐험하고 싶고,

어떤 날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싶다.

이 두 가지 욕망이 나를 설명하는 한 부분이 아닐까.

어쩌면 나에게도 '같은 자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다 볼 필요도 없고, 모든 것을 다 경험할 필요도 없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깊이를 더하는 것.

나만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그 안에서 나만의 숲을 일구는 것.

그것이 내가 찾아야 할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나무는 수천 년을 같은 자리에서 살아간다.

그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까.

나무에게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한 곳에 응축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나무처럼 살 수는 없지만, 나무에게서 배울 수는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 이 순간에 충실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는 것.

가끔 삶이 버겁고,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느낄 때, 나는 다시 공원의 나무를 찾아갈 것이다.

그 묵묵한 존재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나 자신을 돌아볼 것이다.

나무는 나에게 '멈춰 서는 용기'와 '자리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 준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지만, 가끔은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게 답일 때도 있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때로는 새처럼 날아오르고 싶고, 때로는 나무처럼 굳건히 서 있고 싶다.

이 모든 바람들이 모여 나라는 존재를 이루고, 나만의 길을 만들어간다.

결국, 내가 서 있는 그 어떤 자리에서든, 나는 나다운 방식으로 존재하고 성장할 것이다.

저 나무처럼, 묵묵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나 역시 나만의 방식으로 굳건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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