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침, 눈을 떴다.
창밖으로 스며든 빛이 내 눈꺼풀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 빛은 어디서 온 걸까? 대부분은 ‘태양이지, 뭐.’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겠지.
너무 당연해서 질문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하지만 나는 그 ‘당연함’ 너머까지를 상상하게 된다.
이 빛이 태양에서 온 것이라 해도, 그 태양은 또 어디에서 에너지를 얻어 우리에게 빛을 보내는 걸까?
아니면, 태양계 너머, 상상조차 어려운 저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서 온 빛이라면 어떨까?
나는 알 길이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빛은 엄청 긴 시간을 여행했음에 틀림없다.
‘와, 너 진짜 오래 걸렸겠다.’
시간 여행자의 시선
가끔 나이가 든다는 걸 실감한다.
예전에는 밤새 놀아도 멀쩡했는데, 이젠 ‘불금’만 외쳐도 다음 날 아침이 녹록지 않다.
새로운 거 배우는 속도도 예전 같지 않은 것 같고. 이럴 땐 문득 서글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예전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이해 못 했던 감정들을 헤아리게 되는 순간들도 많아졌다. 마치 흐릿했던 시야가 서서히 선명해지는 것 같달까.
어쩌면 이 빛도, 나처럼 오랜 시간 속에서 많은 걸 겪고 깨달으며 여기까지 온 건 아닐까?
‘너도 참 우여곡절 많았겠다.’
빛의 속도가 초속 30만 킬로미터라니,
우리에게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인지하는 ‘지금’의 시간 개념 속에서다.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이 오는 데 약 8분 20초가 걸린단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보는 태양은 사실 8분 20초 전의 태양인 셈이다.
상상해 봐라. 8분 20초 전의 모습을 지금 보고 있다는 게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왠지 모르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엿보는 기분마저 든다.
‘와, 나 지금 실시간으로 과거 보고 있는 거야?’ 소름 돋는다.
250만 년의 메시지
그렇다면 태양계 너머에서 온 빛은 어떨까?
우리 은하의 지름이 약 10만 광년이라고 한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다.
이 사실만으로도 벌써 머리가 지끈거리지 않나? 저
멀리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온 빛이라면 무려 250만 년이라는 시간을 여행했을 거다.
250만 년이라니. 인류가 진화해 온 시간보다 훨씬 더 길다.
그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
빙하기가 몇 번이나 오고 갔고, 수많은 생명체가 태어나고 사라졌겠지. 공룡은 이미 화석이 되었고, 우리 조상들은 아직 돌멩이로 도구를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역사의 흐름을 뚫고, 지금 이 순간 내 눈꺼풀 위에 닿은 이 빛. 생각만 해도 경이롭다.
‘빛아, 너 진짜 대단하다.’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저 멀리 우주의 어떤 행성에서, 과거의 누군가가 장난 삼아 켜 놓은 작은 불빛이 오랜 시간을 거쳐 내게로 오고 있는 중이라고.
어쩌면 그 빛은 어떤 문명이 남긴 마지막 흔적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우연히 발생한 별빛일 수도 있겠지. 누가 보든 말든,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빛.
그 기나긴 시간의 여행자에게 나는 왠지 모르게 고맙다.
‘왠지 너한테 사연이 많을 것 같아.’
나의 빛은 어디로
이 빛은 나에게 존재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내뿜는 빛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물리적인 빛이 아니더라도, 내 말과 행동, 내가 가진 생각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분명 어딘가로 퍼져나갈 거다.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건넨 따뜻한 한 마디, 작은 미소, 혹은 조용히 내린 결정 하나하나가
어쩌면 멀리, 아주 먼 미래의 어떤 사람에게 가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던진 돌멩이 하나가 강물에 파동을 일으키듯,
내가 오늘 세상에 뿌린 빛이 분명 어딘가에 영향을 미칠 거다.
비록 나는 그 끝을 알 수 없지만, 언젠가 머나먼 시간이 흘러 그 누구에게 작은 행복이 될 거다.
어쩌면 내가 뿌린 빛이 누군가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는 한 줄기 희망이 될 수도 있고,
복잡한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아무것도 아닌 듯 사소한 순간에 작은 웃음꽃을 피우게 할 수도 있다.
‘내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겠네?’
빛을 잇는 여행자
우리는 모두 시간의 여행자다.
과거의 빛을 받아 현재를 살고, 미래를 향해 빛을 내보내는 존재들이다.
어쩌면 이 빛은 아주 오래전, 인류의 조상들이 희미한 불꽃을 피워 올리며 희망을 이야기하던
그 순간부터 시작된 빛일지도 모른다.
그 빛이 이어지고 이어져 나에게까지 닿았고, 이제는 내가 그 빛을 이어받아 다음 세대,
혹은 아주 먼 미래의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할 차례다.
그러니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내가 내뿜는 빛이 긍정적이고 따뜻한 에너지를 담고 있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어둠의 빛을 내뿜지 않도록 말이다.
비록 나의 빛이 우주의 광활함에 비하면 너무나 작고 미약할지라도,
그 빛이 모이고 모여 더 큰 빛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믿는다.
오늘 내가 마주한 이 빛이 어디서 왔는지는 여전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빛이 품고 있는 시간과 이야기, 그리고 희망을 느낀다.
그리고 그 빛을 통해 나 또한 누군가에게 작은 행복이 될 수 있음을 조용히 되뇌어 본다.
이 빛처럼, 나도 묵묵히 나의 길을 걷는 시간의 여행자가 되고 싶다.
어쩌면 그 끝에서, 나의 빛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반짝임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