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카톡 친구 목록을 위아래로 스크롤하다가 멈칫했다.
‘이 사람 누구지?’ 스치는 이름들 중 절반은 낯설었다.
어쩌다 친구가 된 건지, 무슨 경로로 내 주소록에 흘러들어 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
마치 한겨울 폭설처럼,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차단, 삭제.’ 기계적으로 이 과정을 반복했다.
처음엔 꽤 재밌었는데, 몇십 명을 지우고 나니 손가락 마디가 뻐근했다.
이거 운동도 아니고 말이야.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한심한 내 기억력에 새삼 감탄할 따름이다. 어떤 이들은 아예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애초에 누군지도 몰랐던 사람들인가 싶다가도,
혹시 내 머릿속 하드디스크가 포맷이라도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이름들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어렴풋이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짧은 대화의 조각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어떤 이들의 채팅창은 꽤 오래 비어 있었다.
마지막 대화가 언제였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은 그냥 모르는 사람들과 다를 게 뭔가?
주소록이라는 허상 속에 갇힌 유령들 같았다.
반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잘 지내?’ 단출한 안부 인사나 ‘밥 한번 먹자!’ 같은 빈말이 오가는 정도.
가끔은 서로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는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 얘가 아직 살아있구나. 나도 아직 살아있어.”
뭐 그런 건가? 굳이 만나지 않아도,
카톡 프로필 사진만으로도 근황을 짐작할 수 있는 사이.
오히려 그게 더 편안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지우고 나니,
친구 목록은 처음의 절반도 안 되는 숫자로 줄어 있었다.
왠지 모르게 후련했다. 하지만 동시에 씁쓸했다.
이렇게 남은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기뻐해야 할까?
아니면 이 정도라도 남아줘서 그들이 내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나이가 들수록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미니멀리즘처럼 관계도 미니멀하게 가져가라는 건가.
하지만 주소록에서 이름을 지운다고 관계가 정말 정리되는 건지 의문이었다.
단지 손가락 끝으로 몇 번 터치했을 뿐인데, 과거의 인연들이 깔끔하게 지워질 리 만무했다.
그래도 일단 정리하고 나니,
마치 어지러운 책상을 깨끗이 치운 기분은 들었다.
먼지 쌓인 책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굴러다니던 볼펜들을 필통에 넣은 것처럼 말이다.
왠지 모르게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안부 인사라도 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기대 없이, 그저 ‘잘 지내?’ 한마디라도 말이다.
특별히 뭘 해준 것도 없는데 여전히 관계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이
갑자기 고맙게 느껴지는 저녁이었다.
우리는 왜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맺고, 또 어떤 관계는 놓아버릴까?
그리고 우리가 지우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관계는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가끔은 이 복잡한 관계의 미로 속에서 잠시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