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인류는 탄생 이래로 줄곧 삶의 경이로움을 만끽하기보다는 그것을 '분석'하는 데 골몰해 왔다. 특히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학파가 대립한다. 첫째,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뿐"이라는 허무주의파. 논리적이지만 재미는 없다. 둘째, "천국은 안 믿지만, 그래도 착하게 살면 좋은 데 가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막연한 낙관파. 가장 짜증 나는 부류이자 대한민국 인구의 80%를 차지한다. 마지막으로, 영혼의 무게를 달아 천국과 지옥으로 보낸다는 엄격한 심판파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엔 그들이 정답을 맞혔다.
김철수 사장은 정신을 차려보니 낡은 구청 민원실 같은 곳에 앉아 있었다. 여름철 에어컨 점검이 안 된 듯 공기는 눅눅했고,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며 신경을 긁었다. 의자는 예비군 훈련장 수준으로 딱딱한 플라스틱이었다. 옆자리에는 웬 노인이 버스를 기다리듯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었고, 한쪽에는 고등학생 하나가 엎드려 자고 있었다.
잠시 후, "김철수 씨, 들어오세요"라는 건조한 목소리가 들렸고, 그에게 갱지로 된 두꺼운 책자가 건네졌다. 촌스러운 바탕체로 적힌 제목은 [사후 세계 이용 가이드: 연옥 편]이었다. 하단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여러분의 죽음은 저희에게 소중한 자산입니다. 6,666페이지의 만족도 설문조사를 빠짐없이 작성해 주세요. 불성실한 답변 시 영원한 감사가 이어집니다.’
'뭐, 나 정도면 괜찮겠지.' 김 사장은 합리화했다. 그는 역사상 최악의 악인은 아니었으니까. 사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나쁜 놈 4위였다. 1위부터 3위는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나 보던 독재자들과 학살자들이니 생략한다. 김 사장은 그 전설적인 라인업 바로 다음 자리를 당당히 차지한 '현대판 악인'의 정수였다.
그가 청문회장 문을 열자, 정장에 변호사 가발을 쓴 해골이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김 사장님. 당신의 법정 대리인을 맡은 '골(骨) 변호사'입니다. 지옥에서 막 올라왔지요."
"지옥요? 내가 왜 지옥 변호사를 만납니까? 나 강남에 교회도 세우고 장학금도 냈어요!" 김 사장이 펄쩍 뛰었다.
"사장님, 그 장학금으로 대학 간 학생이 사장님 회사 계약직으로 들어와서 부당해고 당한 건 기억 안 나시나 보군. 여하튼, 요즘 지옥과 천국 모두 수용 인원 초과라 난리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법령이 생겼습니다. 각 진영 대리인은 '왜 이 영혼을 우리 쪽으로 받으면 안 되는지'를 증명해야 합니다. 서로 폭탄 돌리기를 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유능한 변호사는 전부 지옥에 있거든요. 제가 사장님을 어떻게든 천국으로 밀어내 보겠습니다.“
청문회장은 천장이 없이 시커먼 우주가 내다보이는 기괴한 구조였다. 판사석에는 돋보기를 쓴 쭈글쭈글한 노인이 앉아 있었고, 반대편 피고석에는 소복을 입은 '천사' 대리인이 앉아 있었다.
청문회가 시작되자 천사 측의 기소가 시작되었다. 목소리는 가냘팠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 같았다.
"죄목 12번: 80년대 군 시절, 후임의 편지를 가로채 읽고 쓰레기통에 버려 한 남자의 첫사랑을 파괴한 죄. 죄목 89번: 아파트 입주자 대표 시절, 경비원 휴게실에 에어컨 설치하는 것을 '전기료 낭비'라며 부결시킨 죄. 죄목 214번: 거래처 접대 자리에서 폭탄주를 강요하고, 상대가 구토하자 '기세가 없다'라며 계약을 파기한 죄. 사장은 처음엔 뜨끔해서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기소 내용이 500번대를 넘어가고, 세 시간이 흐르자, 점차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놈의 플라스틱 의자가 문제였다. 엉덩이뼈가 의자를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이때 해골 변호사가 서류 뭉치를 흔들며 반격에 나섰다.
"존경하는 판사님! 제 의뢰인이 경비실 에어컨을 막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아파트 전기 사용량이 줄어 지구 온난화 속도가 0.0000001초 늦춰졌다! 이건 환경 보호라는 거대한 선행 아닌가? 또한, 계약을 파기 당한 거래처 사장은 그 충격으로 사업을 접고 귀농하여 유기농 채소의 대가가 되었다. 수많은 시민의 건강을 지킨 셈이다!"
천사가 쇳소리를 내며 반박했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다! 동기가 이기적인데 결과가 우연히 좋았다고 선행이라니? 이건 명백한 지옥행이다. 천국에 이런 오염된 영혼을 들일 순 없다!"
두 대리인은 이제 김 사장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그들은 '이기적 행동의 결과적 선함'과 '의무론적 도덕관'에 대해 끝없는 철학 토론을 벌였다. 김 사장은 미칠 지경이었다. 배는 고프고, 목은 타고, 무엇보다 저 지겨운 변명과 논쟁을 영원히 들어야 한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저기요! 판사님! 그냥 빨리 판결해 주세요! 나 그냥 감옥 갈게요!"
잠들었던 판사가 눈을 비비며 김 사장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수만 년의 지루함이 박제된 듯한 무표정이었다.
"김 사장님, 성미도 급하시군. 우리는 아직 사장님의 유치원 시절 잘못도 다 안 끝냈습니다. 그리고 저 두 변호사가 사장님의 인생을 소재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할 주제가 대략 8억 개 정도 남았단 말입니다."
"그걸 다 듣고 있어야 한다고요? 언제까지요?"
판사가 기괴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무기한입니다. 사장님은 나갈 수 없습니다. 저 두 사람이 사장님의 지저분한 인생을 가장 고상한 언어로 포장하고 다시 발가벗기며 싸우는 과정을, 이 딱딱한 의자에 앉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들어야 합니다."
김 사장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해골 변호사는 다시 목소리를 높여 "사장님이 무단횡단을 한 것은 사실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적 저항이었다"라는 개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안 돼, 이건 내 인생 최악의 고문이야. 차라리 진짜 불지옥에 떨어지는 게 낫겠어!"
그 순간, 판사와 해골 변호사, 그리고 천사가 동시에 말을 멈추고 김 사장을 돌아보았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정도 없었다.
"김 사장님,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요?"
판사가 낮게 읊조렸다.
"여기가 바로 사장님의 지옥입니다.“
김 사장이 앉아 있는 의자는 이제 단순한 가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김 사장의 존재를 갉아먹는 고문 도구였다. 플라스틱 날은 꼬리뼈를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땀에 젖은 양복바지는 허벅지에 쩍쩍 달라붙어 피부를 짓물러 터지게 할 기세였다.
습기는 폐부 깊숙이 곰팡내를 불어넣었고, 천장의 형광등은 0.5초 간격으로 김 사장의 망막에 불규칙한 빛을 쏘아댔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건 소리였다.
"사장님, 집중해 주세요. 이제 제2,405번 죄목인 '회사 탕비실 믹스커피 횡령 및 비서에 대한 가스라이팅'의 철학적 소명 단계입니다."
해골 변호사의 목소리는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기분 나쁜 고주파를 내며 김 사장의 고막을 때렸다.
"존경하는 판사님! 피고가 비서에게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다'라고 말한 것은, 사실 인간 존재의 대체 가능성에 대한 사르트르 적 고찰을 실천한 것입니다! 이는 비서가 자신의 실존을 깨닫게 하려는 고도의 교육적 행위였으므로…"
"궤변이다!" 천사가 책상을 내리치며 외쳤다. "그건 단순한 권력 남용이며, 비서가 그날 밤 집에서 흘린 눈물 한 방울의 무게는 우주적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김 사장은 귀를 막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의자에 결박된 듯 몸은 굳어 있었고, 오직 청각과 촉각만이 예민해져 그들의 지루하고 끝도 없는 논쟁을 강제로 흡수해야 했다. 논쟁은 이미 김 사장이라는 인간을 넘어 '선의 본질'이니 '언어의 한계'니 하는 형이상학적인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었다.
"제발…, 제발 그만해! 내가 다 잘못했어! 그냥 뜨거운 불 구덩이에 던져달란 말이야! 차라리 살이 타는 게 낫지, 이딴 헛소리를 듣고 있느니 죽는 게 낫겠어!"
김 사장의 비명이 허공에 흩어졌다. 그러나 판사는 돋보기 너머로 무심하게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김 사장님, 당신은 아직 '영원'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모르는군요. 이제 고작 48시간 지났을 뿐입니다. 당신이 살아온 60년의 매 순간을 이런 식으로 해부하려면 앞으로 몇 억 년은 더 필요합니다."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지옥보다 더해."
김 사장이 절규하며 고개를 떨구었을 때, 돌연 주변의 소음이 멈췄다.
정적.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정적이 방 안을 채웠다. 김 사장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해골 변호사, 천사, 그리고 판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고 김 사장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더 이상 논쟁을 즐기는 이들의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굶주린 짐승이 먹잇감을 관찰하는 차가운 시선이었다.
"김 사장님."
판사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돋보기를 벗었다. 돋보기 뒤에 숨겨져 있던 그의 눈은 눈동자 없이 하얀 공백뿐이었다.
"당신은 아까부터 '차라리 지옥에 가겠다'라고 했지요? 하지만 생각해 봐요. 지옥이 왜 불타고 찢기는 곳이어야만 하나요? 진정한 고통은 육체의 소멸이 아니라, 자기가 저지른 추악한 삶의 조각들이 단 하나도 잊히지 않은 채, 타인의 입을 통해 영원히 난도질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입니다."
해골 변호사가 턱뼈를 달각거리며 김 사장의 귓가에 속삭였다. 차가운 입김에서 썩은 흙냄새가 났다.
"우리는 사장님이 지루해할 때마다 가장 즐겁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그 지루함에 못 이겨 썩어 들어갈 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바로 이 청문회장을 돌리는 연료거든요."
천사가 무표정하게 덧붙였다.
"자, 이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갑시다. 제2,406번 죄목: 명절 때 부하 직원에게 유통기한 임박한 스팸 세트를 주며 생색을 낸 사건. 이것이 자본주의적 효율성인가, 아니면 순수한 악의의 표출인가.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벽면의 시곗바늘이 뒤로 돌기 시작하더니 아예 사라져 버렸다. 김 사장은 깨달았다. 이제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그는 이제부터 영원히, 자신이 살아온 쓰레기 같은 순간들을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해부하는 저 괴물들의 만담을 들어야만 했다. 엉덩이의 통증은 가시지 않을 것이고, 형광등은 계속 깜빡일 것이며, 저 지겨운 목소리들은 쉼 없이 그의 고막을 파고들 것이다.
김 사장은 비명을 지르려 입을 벌렸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해골 변호사의 목소리가 다시 방안을 가득 채웠다.
"본 변호인은 이 스팸 세트 사건이 사실 '나눔의 미학'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적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바다."
김 사장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지옥의 막이 이제 막 올랐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