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서아, 『키오스크 학교』
현재 참여 중인 독서모임의 3월 책이라 미리 읽어보았는데, 내 예상대로 나와 잘 맞지 않는 책이었다.
나는 한국 현대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다. 영미문학을 좋아해서 읽을 게 한가득이라 뒷전으로 미뤄놓는 것도 있지만, 한국 현대 소설과 감정선이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나한테는 감정이 너무 풍부하고 넘쳐흐르는 느낌이다. 아니면 상황을 너무나 극단적으로 만들어서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들거나, 과하게 사회 비판에 집중한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요즘 현대 문학이 다 이런 느낌이라 현대 문학 자체를 피하기는 한다)
그런데 이 책이 나한테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현대 문학의 모든 특징을 담아놓은 작품으로 느껴졌다. 감정은 넘쳐흐르다 못해 펑펑 쏟아져 나오는데 어조는 시종일관 차갑고 비판적이어서 감정을 어찌 하지를 못한다. 상황은 극단적인데 감정 이입이 되지 않고 인위적이라는 느낌만 든다.
인간적이라는 말과 감정이 갖는 의미를 탐구하고자 하지만 인간에게도 기계에게도 집중하지 못해서 애매모호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금속의 차가움을 여실히 드러내거나, 심장의 뜨거움을 쏟아부었다면 나았을 것 같은데 두 개를 애매하게 섞어버려서 미적지근한 이야기가 탄생해버린 느낌.
읽는 내내 인물들의 상반된 태도와 갑작스런 전개, 갈피를 잡기 어려운 문체까지 모든 게 나한테는 힘겨웠던 책이다. 상상력은 좋지만 나는 굳이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2. 줄리언 반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 작가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재밌게 읽었고, 영화도 잘 봤던 터라 기대하며 2월 소전독서단 도서로 골랐다.
책은 사실 큰 줄거리가 없다. 에세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반스의 노년과 일상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반스의 문장과 그 안에 담긴 사유가 참 좋아서 계속해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된다. 잔잔하지만 열정적이고, 고요하지만 활기차다. 진솔한 문체 덕에 반스의 깊은 사유는 깊이 와닿는다.
하지만 이 책이 소설이라는 점 때문에 그 모든 장점이 흐려진다. 에세이였다면 정말 훌륭하고 아름다운 작품인데, 소설이라서 아쉬운 점들이 많다. 자전적 소설이라지만 에세이와 분간이 가지 않는 흐릿한 경계, 기억 되짚기와 노년의 삶 외에는 큰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 산문의 연속은 소설로서는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작가로서의 반스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을 만큼 조밀하게 연결된 문장들과 일상의 세밀하고 세심한 배치가 돋보이지만, 소설로서 이 작품의 매력은 그 때문에 반감되는 게 아쉬운 책이다.
*읽는사람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3. 리즈 무어, 『숲의 신』
유명해서 읽어보고 싶던 책인데 최근에 교환독서를 같이 한 분이 다정하게도 나눔을 해주어서 읽게 됐다. 페이지터너라는 평에 걸맞게도 두껍지만 술술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이 책은 반라 집안의 두 아이가 실종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첫째 아이인 베어는 과거에, 둘째 아이인 바버라는 현재에 실종된 상태이다. 이 집안이 소유한 땅 반라 보호구역과 그곳에 위치한 에머슨 캠프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초반부에는 사건 설명이 길고, 과거와 현재 그 사이, 인물들의 초점을 오가며 전개되다보니 몰입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하지만 책의 1/5을 넘기는 순간 몰입도가 확 올라가며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흥미진진해졌다.
신선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답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부하고 지루하지는 않다. 오히려 익숙한 것들을 꽤나 새로운 방식으로 섞어놓아 익숙하지만 새로운 스릴러를 맛볼 수 있었디.
두 사건의 결말로 향하면서는 약간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한 사건의 끝맺음은 괜찮았다고 생각해서 만족스러웠다. 흥미진진하고 호흡이 긴 스릴러를 찾는다면 추천한다.
4. 샐리 루니, 『인터메초』
요즘 화제인 책인데 교환독서를 같이 한 분이 마침 두 권이 생겼다며 한 권을 선물해주어서 고맙게도 읽게 된 책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피터와 아이번 두 형제의 일상을 그려낸 책인데 내용이 엄청 깊거나 많지는 않다. 그런데 인물들이 모두 다 좀 이상하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게 모두에게서 느껴지는 책이라 보면서 인물들한테 질릴 것만 같다. (특히 피터)
그렇지만 또 페이지는 술술 넘어간다. 인물들이 왜 저럴까 싶다가도 다음이 궁금해져서 책장을 넘기고, 또 넘기게 된다. 공감이 가지는 않지만 심리 묘사가 꽤나 좋아서 그런 것 같다. 주요 인물들의 심리가 자세히 나와서 이해가 가지 않는 인물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좋았다.
외국 독자들이 읽으면서 모두에게 테라피가 필요하다며 테라피를 그토록 외쳤다는데, 나도 함께 테라피를 외치게 됐다. 인물들이 참 이상한데 또 정이 가고, 필요 이상으로 분량이 길다 싶다가도 또 쳐낼 부분이 없다고 느껴지는, 참 묘한 책이다.
5.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
펀딩 마지막 날에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타서 사게 된 책인데, 강렬한 핑크색과 화려한 금박 무늬의 표지부터 눈길을 사로잡아서 기대하던 책이다.
이 책은 몇 년 전 교양 강의에서 언뜻 제목을 들은 후로 읽어보고 싶었다. 엘렌 식수가 누구인지도,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이 무엇인지도 어렴풋하게만 알던 때이지만 좋은 책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렌 식수는 이 책에서 아주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글을 쏟아낸다. 치명적일 만큼 아름답고, 강렬하게 파괴한다. 하지만 식수의 파괴는 폐허만을 남기지는 않는다. 식수는 여성들의 몸을 존중하고 여성의 글쓰기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남성들이 세운 팔루스로고스 중심의 세계를 파괴한다. 한쪽을 억압함으로써 생겨난 세계를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메두사는 그 아름다움이 치명적 약점이 되어버린 괴물, 남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괴물로만 여겨져왔다. 하지만 식수에게 메두사는 여성의 해방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남성들이 두려워해왔던 여성의 해방을,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워서 어둠 속에 가두고 싶었던 여성들의 자유를 상징한다.
식수는 여성들을 억압하고 가둬왔던 남성 중심적 세계를 깨부수고 여성만의 글쓰기로, 여성만의 행위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여성이라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여성의 몸은 영혼의 감옥이 아니라 영혼의 산실이라고 말한다. 여성이기에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것을 남성의 시선으로만 보지 않는 것,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식수의 글은 언제나 가슴 한 곳이 아릿할 만큼 아름다워서,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눈부시게 빛나서 좋다. 이 책은 보통의 편집처럼 한 쪽을 쓰고 다음 쪽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한 문장을 쓰는 데에 양 페이지를 다 쓰는데, 이 독특함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여성의 글쓰기를 시각화한 것 같아 인상 깊었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든 없든 이 책은 정말 추천한다.
6. 미하엘 엔데,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그림책을 읽는 건 정말 오랜만인데, 귀엽고 몽글몽글하지만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엔데의 글을 같이 보니 마음이 따스해지고 좋았다.
이 책은 미하엘 엔데의 책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정보도 없이 샀는데, 역시 엔데답게 묵직하지만 동화다운 분위기가 돋보였다.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오필리아와 귀여운 그림자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엔데가 엮어낸 아름다운 서사와 헤헬만의 그림까지 이 책은 그냥 책 전체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모두에게 따스하고 친절했던 오필리아는 그 자체로 반짝이는 사람인 것 같다. 그 어떤 그림자일지라도 품어주고 같이 지낼 수 있는 그런 넉넉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그림도 너무너무 예쁘고 내용도 정말 좋으니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동화처럼 단순한 내용임에도 엔데 특유의 깨달음을 주는 결말이 있어서 가볍게 읽으면서도 깊은 생각을 하기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