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2 : 소설은 쓰다 샛길로 가버려 1탄
1. 간호문학상에 도전 후 포기
서른으로 가기 전에 도전한 간호문학상 소설 부문에서 가작으로 뽑혔다. 이번엔 소설 심사평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난 줏대가 없는 팔랑귀를 가졌는지, 다른 사람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털썩 내려앉았다. 보통 사람도 아니고 알아주는 심사위원이었으니 그 말의 무게는 내게 백배 천배로 다가왔다. 끄적거리던 손놀림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소설 부문은 아쉽게도 그 양이나 질에 있어 지난해 수준에 비해 다소 뒤진다는 느낌이었다. 소재가 괜찮다 싶으면 구성이 엉성하고 주제의식이 좋으면 그것을 형상화하기 위한 표현력이 많이 모자랐다. 전반적으로 소설적 긴장감이나 매력 있는 캐릭터 보여주기에도 아쉬움이 많았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유언 수집에 모든 것을 쏟아붓던 주인공의 자기 유언 남기기를 다룬 ‘지상에서 남기는 마지막 한 마디’가 장황한 설명, 구성의 단조로움에도 불구하고 가작에 오른 것은 어느 노숙자의 죽음을 다룬 ‘내게 주어진 의미’가 수기 수준의 서술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제22회 간호문학상 심사평-
처음엔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나이의 무게를 던지고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그런데 심사평을 보고 알았다. 내 글이 형편없었다는 것을. ‘내게 주어진 의미’가 수기 수준의 서술에 머물렀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아주 엉터리 같다는 말로 곱씹어보는 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황금 같은 오프(쉬는 날)인 시간을 바쳐 글을 쓰면서, 나도 알았다. 긴 줄거리를 쓰는데 탄탄하지 못한 기획이 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20대 후반의 난 계획 세우기를 좋아했는데 글에선 그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 점이 내 실책이었다. 주제, 주인공, 주변 인물,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줄거리 등등. 기둥을 잘 박지 않고 그냥 머릿속 생각을 옮겨 썼다는 것을. 중간에 어떤 변화를 주고 싶으면 다 바뀌어야 했다. 나중에는 뭘 쓰고 싶었는지 처음 기억은 손 흔들며 헤어진 지 오래였다. 너무 잘 알았기에 포기란 단어를 쉽게 끄집어낼 수 있었다.
지상에서 남기는 마지막 한마디
글쓴이: 작가
“마지막으로 하실 말이 없습니까?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동안의 인생이 후회되지 않습니까? 고통이 느껴지나요? 마지막 한마디를 해주십시오!”
벌써 여러 날 플래쉬와 발자국 소리가 요란한 기자들이 들락거려 질문을 퍼붓고 있다. 병원 측이 아무리 제지해도 그들은 그것을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한 듯싶다.
그래, 나는 원인불명의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최첨단의 의학으로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는 희귀한 병으로 죽어가는 나는 의사들의 실험 대상일 뿐이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마음속 깊이 죽음을 갈구했는가를. 그래서 지금은 기쁘다는 사실을. (중략)
한때 죽음 앞에서 허우적거렸던 적이 있었다. 서른이 되기 전의 나는 사람들은 죽을 때 무슨 말을 할까 궁금했다. 지상에서 남기는 마지막 유언이 거대한 의미로 다가왔다. 나는 어떠한 말을 남길까. 내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 이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며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장례식장은 어떨까 싶었다. 또 나는 젊은 나이로 죽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 당시에 만났던 보험 설계사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였으니까.
"암보험을 80세 만기로 가져가세요. 비싸지만 정액이라 나이가 들어도 오르지 않아요. 이게 훨씬 유리해요."
"80세 만기를 60세로 변경해주세요!"
"지금 나이로는 80세까지 예상 수명인데, 왜요?"
"그냥, 오래 살 것 같지 않아요."
"…."
중년이 되고 나서도 어릴 때부터 감정을 억누른 댓가인지 죽음 앞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아 난처함과 직면해야 했다. 오랜 투병 생활을 하던 아빠의 죽음에서도 눈물이 안 나와 장례식장에서 고생을 했다. 오히려 긴 병에서 벗어나서 훨훨 날아갈 것처럼 기쁠 거라고 여겨, 웃음이 나왔다. 언니들과 웃으며 대화하다가 친한 조문객들에게 엄숙한 충고를 들었다.
지금도 장례식장에 가면 눈물을 쏟는 사람들과 대조적이다. 일반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하면 내가 '비정상'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머릿속에서 스치는 순수한 혼이 되어 공기처럼 자유로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덜 슬프게 여길지도.
추후에 이런 글로 글을 써 봐야겠다. '다른 감정의 인간들'이란 키워드로.
1998년 일기장에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목록이 작성되어 있다. 버킷리스트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으로 파랗게 젊은 20대 중반이었다.
내가 앞으로 해야 할 50가지
작성자: 작가
1. 내년에 애인을 사귄다.
8. 소설책을 꾸준히 읽고 소설가가 된다.
43. 소설가로서 10년 후에 이름을 떨친다.
47. 북한에 내 책을 보낸다.
48. 소설가로서 대학 강단에 선다.
50. 모든 이들에게 꿈을 심어준다.
두서없이 썼지만 내가 이루고자 하는 소망들이다.
- 1998년 12월 5일 -
이때 결심한 것처럼 이루고자 하는 소망들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냉혹한 심사평에 차라리 오기가 생겨 눈에서 레이저가 나왔더라면? 그랬다면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쯤 소설책 작가로 탄생하지 않았을까! '만약'고문에 또 빠진다. 소설가를 꿈꾸는 초보 작가들이 분명 고개를 끄덕이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소설가가 되길 원한다면 무너지는 나와는 다르게 버티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