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선호 사상에 대하여
모두가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운 없게도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년 뒤 남동생이 생겼고, 사랑을 기억하기 도전에 사랑을 잃었다.
그 이후는 흔하고도 뻔한 이야기다.
아무리 노력해도 공은 동생에게 돌아갔고,
아무리 억울해도 탓은 그녀에게 향했다.
결과적을 그녀는 결과적으로 어른이 되어, 가족과 반쯤 인연을 끊고 죽도록 노력해 자수성가한 뒤 멋진 남편과 어린 딸을 낳고 잘 먹고 잘살고 있다. 악역처럼 패가망신한 외가와는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이것이 소설이었다면, 엔딩쯤에 결혼하고 에필로그에 아이를 낳은 뒤 웃으며 육아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네이버나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하는 소설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녀는 첫째로 딸을 낳았지만,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둘째가 아들로 나오고서야 웃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나 내 어머니가 아니다. 난 외동이고, 어머니는 외가랑 연을 끊지 않았다. 돌아가신 외가네 할머니를 제외한다면 유일하게 남은 외가네 할아버지와는 아직도 연락을 유지하며 괜찮은 관계로 살고 있다.
남아 선호 사상이란, 말 그대로 남자아이를 여자 아이보다 우선시하고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사회적/문화적 사고방식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회에서 남자는 가문의 대를 잇고, 재산을 상속하며, 가정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 존재로 여겨졌다. 반대로 여아는 ‘시집가면 다른 집으로 가게 된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관심과 자원이 적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사고방식은 단순한 관습에 그치지 않고, 실제 가족 내에서 아이들의 대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출생 직후부터 부모나 친척들의 기대와 사랑이 남자아이에게 더 집중되는 일이 흔했고, 여자 아이는 이후 노력과 성취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사상은 당연하게도 수많은 가족을 파괴하고 수많은 인생들을 끝장냈다.
1980~90년대 한국에서는 의료 기술 발달과 산아 제한 정책이 맞물리면서, 태아 성별 확인 후 여아일 경우 낙태가 이루어지는 현상이 비교적 흔하게 나타났다. 그 결과 남아가 태어난 뒤 출생 성비가 왜곡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남녀 성비가 극단적으로 불균형을 이루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통계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권리와 인권, 사회적 관계와 가족 구조 전체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경제적 이유, 사회적 기대, 그리고 기술적 편리함이 맞물려 ‘원하지 않는 성별’이라는 이유로 생명을 선택적으로 지우는 악습이 생겨났던 것이다. 현재에 와서는 이 악습이 거의 사라졌지만, 이러한 현실은 남아 선호 사상이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여파는 단순히 출생 성비의 왜곡에 그치지 않았다. 남아가 과잉으로 태어나고 여아가 부족해지면서, 결혼 적령기 남성들이 배우자를 찾기 어려운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남녀 성비가 2:1에 가까워지기도 했고, 이는 장기적으로 신부 매매, 조혼, 여성에 대한 경제적/사회적 착취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여아 낙태와 여성 차별은 단순히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사회적 인식의 뿌리를 만들었다. ‘딸은 나중에 경제적 부담이 된다’ 거나 ‘아들은 가문을 잇는다’는 사고는 부모와 가족, 심지어 사회 전반에 깊이 자리 잡아, 여성의 권리와 선택을 제한했다.
경제적 발전과 의료 기술 발달이 반드시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아이를 적게 낳고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가능해진 사회에서조차, 기존의 문화적 편견과 사회적 기대가 맞물리면 '성별로 생명을 선택한다'라는 극단적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30년 만에 여아 선호 사상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러나 '여아 선호 사상'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분쟁이 있는데, 여아 선호 사상의 근거는 설문조사밖에는 없어서 그런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사실은, 설문조사는 완벽하게 솔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전 설문조사와 실제 선택이 다른 경우가 있었다는 연구 결과들도 대다수 존재한다. 즉, 말로만 여아를 선호한다고 말할 뿐, 실제로는 딱히 '여아 선호 사상'을 위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입양할 때 여아를 더 선호한다는 것도 실상을 보면 여아는 시집을 가기 때문에 집안의 혈통을 어지럽힐 걱정이 없고 키우기 편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애초에 남아 선호가 절정에 달했던 과거에도 입양할 때는 여아를 더 선호했다.
현실에서 “아들 낳고 싶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남아 선호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비칠까 봐, 일부러 딸을 낳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여아 선호 사상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으로 언급할 수 있고, 또 ‘변하는 세상에서 눈을 뜬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말로는 여아를 선호한다고 하지만 실제 선택과 행동은 꼭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남아 선호 사상이 가져오는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대를 잇기 위해 딸을 낙태하고 아들만 골라 낳은 결과, 남녀 비율이 뒤틀리면서 정작 아들의 혼인을 어렵게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대를 잇겠다면서, 오히려 그 연결고리를 끊는 셈이다. 실제로 2010년대 후반 중국에서는 여아가 남아보다 너무 적게 태어나면서 남성들이 결혼하기 어려운 상황이 현실화됐다.
낙태와 출산율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다.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많다면 인구 감소 문제는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보다 많아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기간이 제한돼 있으며, 폐경이 보통 50대 초반에 찾아와 더 이상 임신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여성의 결혼 적령기는 20~30대에 집중된다.
결혼 적령기 남성이 자신과 같은 연령대 혹은 약간 어린 여성과만 결혼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남성 인구가 여성보다 많으면 일부 남성은 자연스럽게 결혼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결혼 적령기 남성이 4,000명이고 여성이 3,000명이라면, 약 1,000명은 결혼 기회를 얻지 못하며 이는 장기적으로 출산율 감소와 인구 감소로 이어진다. 다만 현실에서는 성비 불균형만으로 모든 남성이 결혼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대든 남성 하위 10% 정도는 결혼 시장에서 도태되며, 성비가 극단적이지 않은 한 결혼 경쟁, 결혼 기피, 결혼 포기 현상이 인구 감소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극심한 성비 불균형이 심화되면, 여성의 선택권이 상대적으로 강화되는 부작용도 나타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처럼, 공급이 부족하면 공급자가 우위에 서는 것과 같다. 남성의 비율이 여자보다 많아진다면 여성은 ‘슈퍼 갑’이 되고, 과거라면 쉽게 결혼할 수 있었던 외모, 경제력, 사회적 능력을 갖춘 남성조차 현재 결혼 시장에서는 도태되는 사례가 늘어난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 문제를 넘어, 장기적으로 출산율 감소와 인구 감소를 가속화한다.
문제는, 결혼이나 연애 시장에서 도태된 남성들이 좌절을 성적으로 해소하려 할 경우, 성폭행이나 성매매, 아동 성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성비 불균형이 심하면 여성의 경제적/사회적 가치가 높아지고, 남성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제력을 과시하게 된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성비 불균형으로 신붓감이 부족해지자, 부모들이 첫째 아들에게 더 많은 자산을 물려주어 연애/결혼 시장에서 살아남게 하려 했다.
또한, 남아 선호 사상으로 인해 신붓감이 부족한 사회에서 결혼 적령기를 지난 남성들은 국제결혼을 고려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노년층 부모들은 혼기를 놓친 아들이라도 외국 여성과 결혼하도록 압박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다문화 가정에서 언어, 문화, 종교, 식생활 차이로 인해 자녀들이 학교생활은 물론 사회 적응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어머니와 무관심한 교육 환경이 겹치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시 문해력이 부족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 수도 있다.
수년간의 연애 끝에 맺어진 국내 결혼 부부들도 크고 작은 이유로 갈등과 부부싸움을 겪는데, 언어, 문화, 종교 심지어 식습관까지 다른 외국 여성과 사랑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이 순탄할 리 없다.
결국 뿌리 깊은 사회적 사고방식이 세대를 넘어 수많은 피해를 낳는 것이다.
남아 선호 사상은 단순한 문화적 편견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세대를 거쳐 사회 구조와 개인의 삶을 크게 뒤흔든다.
이런 사회적 불균형은 개인의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남아 선호가 강하게 남아 있는 사회에서는 사랑보다 조건과 필요가 우선시되는 결혼이 많고, 혼기를 놓친 남성들은 결국 도태되어 아이나 결혼만을 위한 사랑 없는 국제결혼, 혹은 더 깊은 절망 끝에 범죄에까지 손을 벌리는 경우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성평등 의식을 강화하고,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며, 개인이 자신의 선택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사회 구조를 바꾸는 노력 같은 이야기는 당연하게 들릴 것이다. 내가 말하고픈 것은, 최소한 남아 선호 사상이 남긴 그림자를 직시하는 것이다. 겉핥기만으로 보는 것이 아닌, 누가 어떻게 상처를 받고, 그 상처가 또 다른 피해자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까지 바라보는 것이다.
누군가의 딸이 희생되었고, 그 희생이 살아남은 딸과 아들을 향한 왜곡된 기대와 압박으로 전가되고, 결국 그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흐름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 글은 "남아 선호 사상은 나쁘다"라는 단순한 선언을 하는 용도가 아니다.
그 사상이 세대를 돌며 피해자를 가해자로, 가해자를 또 다른 피해자로 바꾸는 고리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리려는것, 그리고 그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당연한 처방전이 아닌 문제의 뿌리와 그것이 드리운 긴 그림자를 끝까지 직시할 용기가 필요하다는것을 말하고 싶어 적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