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그를 남자로서의 '욕망'과 '명예'를 꺾어버린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얼마 전 신랑과의 대화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면 "좀 더 참고 다녀봐라."라고 말해 주겠다고.
이 말에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처럼 한 남자를 똑똑하게 만들지는 못 할지언정 난 그의 삶을 후회하게 만든 게 아닐까... 하는.
큰 아이가 5살 때 그는 다니던 외국계 제약회사를 그만두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니던 첫 직장이었다.
회사는 한국기업이었는데 합병을 하며 외국계 제약회사가 되었고 영어를 곧잘 했던 그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어 본사 마케팅 업무로 부서가 옮겨졌다.
두 회사가 합병을 하며 원래 외국계 회사였던 직원들이 마케팅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기본적으로 영어는 다들 잘하고 대학도 소위 말하는 스카이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신랑이 능력을 인정받아 그런 팀에서 일한다는 게 나는 꽤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본사로 이동하며 새로운 환경과 분위기에 적응해야 했고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업무도 배워야 했기에 그에게는 꽤나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다. 12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오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합병 후 1년 정도 지났을까... 회사에서 명예퇴직 신청자를 받는다고 했다.
본사 마케팅팀으로 옮기기 전에도 사직서를 몇 번이나 쓰고 끝내 제출하지를 못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했던 그였다.
나는 그에게 '참고 다녀'라는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전부터 항상 그랬다. '힘들면 그만둬'라고.
무엇을 해서라도 그가 가족을 막여 살리라는 믿음도 있었지만 한번 사는 인생인데 큰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싶게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대학 졸업 전에 취업을 해서 쉼 없이 달려와 세 아이의 아빠가 된 그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해볼 기회도 있었으면 싶었다.
그는 정말로 명예퇴직 신청을 했고 회사를 그만뒀다. 쌍둥이가 돌 즈음, 큰아이가 5살이었다.
사실, 아내인 나의 입장으로서 '진실한 속내'는 그냥 다녔으면 하는 맘이었다.
(요즘 안정적인 직장이 어디 있다만..) 그래도 그만하면 안정적인 직장에,
"남편 무슨 일 해요?"하고 누가 물어본다면 "외국계 제약회사" 다녀요.라고 말하기도 좋았고,
월급도 제때 잘 나오고 연봉도 꽤나 괜찮았다.
이런 와이프로서의 속마음 끝끝내 숨긴 채 그에게 표현을 하지 않았다.
마음속은 커다란 걱정이 앞섰지만 그를 '한 인간, 한 남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의 내 마음을 전달했다.
우리가 양양에 살게 된, 그 시작점은 바로 그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우리는 귀촌을 하기 더 어려웠을 것이므로.
그렇게 그만둔 회사였는데 그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다른 삶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나 보다.
그가 가지 않았던 삶.
그만두지 않았다면, 외국계 제약회사 마케터로서 입지를 다졌을 테고몇 군데 회사를 점프하여 지금쯤은 안정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으며 외국 출장을 다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두지 않았다면, 여전히 서울에서 다른 사람이 누리는 만큼 우리도 누리고 즐기며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언제나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가지 못한 길, 가지 않았던 길을 돌아보며 그 삶의 여정을 궁금해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돌아보니 내 삶도 마찬가지였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와서 30이 넘는 나이에 취업이 어려워 한동안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간절히 원했던 워킹홀리데이였고 그곳에서의 삶이 충분히 만족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단지 어려움이 있었을 뿐이다. 그 어려움의 극복과정 속에서의 내 태도가 삶을 풍요롭게도, 좌절하게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소설에 나오는 엘름 부인이 이런 말을 한다.
"후회하는 일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하나라도 다른 선택을 해보겠니?"
귀촌 후 3년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는 중'이고 마음이 불안할 때도 있다. 신랑이 과거의 자신에게 '좀 더 참고 다녀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도 때론 '불안'하고 '걱정'이 되기 때문이리라. 귀촌 후 우리는 도시와는 철저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원하고 바라던 일이었기에 삶의 과정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서울에서의 모든 생활터전을 내려놓고 양양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기에 어쩌면 불안이란 감정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40대가 되어 그리는 새로운 삶의 나침반이 자리를 잡으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자리를 잡는 중의 '불안'을 멀리 떼어놓고 본다면, 이렇게 눈부신 날들 속에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는 좀 더 마음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나는 좀 더 사람 냄새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중이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과 자연에 의해 나도, 그도 나날이 여물어간다. 이곳에서의 삶이 참으로 값지고 소중하다.
그가 말한다. "하지만 난 여기서 서핑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너무 행복해. 가보지 못한 삶이었기에 과거의 나에게 '좀 더 참고 다녀봐'라고 말해보고 싶은 거지, 지금 이 삶에 후회는 없어. 남편이 너무 철없나? ㅎㅎ"
양양에서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가 서핑을 만난 것이라고 하는 남편. 남자로서의 큰 욕망과 명예는 지워졌을지라도(사실 지워졌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우리가 누리는 작은 것에 '함께'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는 그가 있어서 행복하다.
그와 함께 그리는 양양에서의 삶이 어떤 그림을 그릴지 나도 궁금하다.
이제 엘름 부인의 물음에 대답을 할 차례다.
"후회하는 일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하나라도 다른 선택을 해보겠니?"
"아니오. 그때도, 지금도 같은 선택을 할래요. 후회되신 살아야만 배울 수 있는 삶을 살래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