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달담’ 주부 독서클럽에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고 논제로 생각을 나눈다.
생각할 것이 많은 어려운 책이긴 하지만 그만큼 우리를 하나의 진정한 사람으로서 성숙시키는 책이기도 하다.
‘나는 부부간의 결합은 서로가 분리된 개체라는 점을 깨달으면서 풍요로운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생각이 참 많아졌다.
우리 부부는 양양에 와서 살면서 서로가 분리된 개체로 살아가려고(의식하지 않았지만) 하고 있다.
양양에 오기 전 서울에 살 때 신랑이 회사를 그만두고 자그마한 식당을 오픈했다.
당시 나는 오픈 초기에만 도와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발을 깊숙이 들여놓고 있었다.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남편과 나는 너무나 유기적으로 엮여 있었다.
분리된 개체라는 점을 인식하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아이 셋은 어려서 내 손을 필요로 했고, 가게도 막 오픈해서 일손이 달렸다.
바쁘고 정신없는 삶이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던 시절.
시간이 흘러가듯, 그렇게 내 삶도 흘러갔다.
남편의 일을 응원한다는 미명 아래 나는 언제나 내가 ‘희생’한다고 생각하고 희생을 자처했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독립된 개체로서의 내가 아닌 ‘맞춰주는 사람’ 으로서의 나로 살았기에 내면은 건강하지 못했다.
그의 입장도 그랬을 것이다. 세 아이의 아빠로서,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무게감이 컸을까. 그의 내면도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은 것을 함께했다. 하지만 결코, 좋은 시간이 아니었음을 서로가 서로에게 종속된 관계였음을, 되돌아보니 그랬다.
겉으로는 무엇이든 함께하고 서로 의지하는 사이좋은 부부인 것 같았지만, ‘진정으로 건강한 부부’는 아니었음을.
지금 여기, 양양.
우리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도시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와 삶.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호기와는 달리, 막상 닥친 현실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기분이었다. 아득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새로 직장을 구해야 했고, 새로운 일을 해야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우리는 유기적으로 얽혀있던 그와 나의 관계도 ‘독립적 개체’로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커서 가능했던 일이 리라.
운전면허가 있었지만 서울에서는 쓸 일이 전혀 없었다. 운전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그야말로 장롱면허의 소유자였다.
처음에 양양에 와서 대중교통을 이용해봤는데 1시간에 1번 다니는 버스를 타보고 안 되겠다 싶었다. 매번 신랑에게 픽업을 부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첫 운전연수 시간, 워낙 겁이 많은 나는 손이 벌벌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 하지만 이곳의 한적한 도로 사정은 나를 빠르게 운전에 익숙하게 했다. 그렇게 차를 운전하고 다닌 지 3년, 지금은 아이들을 태우고 양양 전 지역을 누비고 다닌다. (양양에서만 통용되는 운전실력이라 아쉽다. ^^;)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운전이지만 혼자 차를 끌고 여기저기 다닐 수 있었던 덕분에 독립된 개채로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신랑의 손을 빌리지 않고 다니기 시작했고 각자의 일을 찾으며 서로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유기적으로 엮여있던 끈은 서서히 풀려가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 신랑은 신랑대로 이곳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애썼다. 그 시간은 힘들고 고되었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나는 작은 민박을 운영하며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나를 인식하고 만나며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나의 이런 삶을 항상 응원하고 지지해준다.
남편도 연고 없는 양양에 와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수많은 일들을 했다. 젊은 나이에 아까운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시간들이 있기에 우리는 성장했다. 지금은 관광두레 pd로 일하며 본인이 잘하는 게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고 자신감 있게 일을 해내고 있다. 그도 그 나름대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한 사람으로 성장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간혹, 내가 글에서 신랑을 서핑 좋아하는 철없는 남편으로 묘사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사실 ‘서핑’으로 인해 그는 훨씬 넓고 유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었다.
서로의 일과 취미를 인정해주고 ‘각자의 자리’가 있음을 인정해주는 것. 우리가 독립된 개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의 자리를 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귀촌으로 얻은 귀한 보석 중 하나가 아닐까.
요즘 , 내 마음은 알게 모르게 ‘불안’이라는 감정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는 중이라 ‘불안’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과거와 비교해보면 훨씬 풍요롭다.
부유하다고는 (진정) 말할 수 없지만 삶에 있어서 필요한 것들을 사고 가족과 맛있는 것을 먹고 여행도 하고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것을 사주며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유독 귀촌을 했기에 느끼는 불안이 아닌, 서울에 사나 여기 사나 마찬가지로, 삶을 살아가고 결정을 하는데 느끼는 그런 불안일 것이다.
단지 매년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내년일을 준비하고, 내년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며 찾아오는 약간은 가라앉은 마음, 이 맘 때쯤이면 단풍이 떨어지고 어둠이 빨리 찾아오고 더없이 한적해지면 자연스럽게 내 마음에 새겨지는 그런 것일 게다.
‘독립된 개체’와 ‘불안’은 요즘 나의 머릿속을 맴도는 화두였다.
“신이 아가에게 삶을 주면서 말했다. “아가야, 선물이란다. 가지고 놀아라!” 그리고 인간은 삶을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쪽과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나뉜다. < 아무튼, 메모 >
삶은 고해다………(중략) 일단 받아들이게 되면 삶이 힘들다는 사실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
오늘도 책에서 많은 위안을 받는다. 두 책에서 얻은 두 문장은 상반된 표현 같아 보이지만 말하고 싶은 건 결국 하나일 것이다. 삶이 원래 힘들다는 바탕 아래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선물로 인식하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이 훨씬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귀촌의 삶의 살고 있는 내게 책에서 얻은 마지막 문구가 마음 깊이 남는다.
인생에 있어서 유일하고 진정한 안전이란 생의 불안정을 맛보는 데 있는 것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 >